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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TI : 결이 다른 누군가를 위하여

주눅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by 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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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욕조에 찬물 한줄기가 들어오는 느낌을 아는가?


누구나 한 번쯤은, 아니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여러 번. 어릴 적 엄마 손에 이끌려 대중탕을 드나들던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우리 엄마는 손이 악세서 어린 내 팔다리의 때를 밀면 다른 사람보다 많이 아팠다. 그래서 나는 엄마와 대중탕에 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중탕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그 보다 더 기분 나쁜 것이 있었다. 발을 넣는 것조차 아찔할 만큼 뜨거운 욕탕의 온도도 그리 달갑지 않았지만, 욕조 안의 온도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을 무렵, 어디선가 스멀스멀 흘러나오던 찬물의 기운이 나는 싫었다. 뜨거운 가운데 그 찬물의 기운이 살갗에 닿으면, 뭐랄까?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 싶어 진달까, 아니면 그냥 아무런 대책 없이 울고 싶은 기분이 된달까. 아무튼 그 애매하고 석연치 않은 기분이 나는 싫었다.


살다 보니 내가 그 뜨거운 욕조 안에 들어오는 찬물줄기 같은 사람일 줄이야.


십 수년 전 일이다. 그때 나는 이름 있는 아무개 단체에서 계약직 직원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원래 환경단체에서 일을 했는데, 가난한 가정집의 형제자매 같은 분위기의 회사 정서가 늘 불편하고 싫었다. 그래서 '계약직'이란 굴욕을 참고 메이저 단체에 들어가게 되었다. 좋긴 좋더라. 직원을 위해서 한 달에 한번 점심을 함께 먹는 정규 회식도 있었고, 내가 좋아하는 커피머신도 있었고, 직원끼리 친목을 도모하는 시간도 있었다. 그리고 그 친목도모 시간이 문제였다. 언젠가 한번, 우리는 애니어그램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서 성향체크를 한 적이 있었는데, 세상에나. 모두가 고만고만 비슷한 유형이 나온 반면, 나의 성격유형만이 극히 드물다는 4번 유형이 나올 줄이야. 그리고 파란은 이제부터였다. 내가 속한 팀의 팀장이 정색을 하며, 면담을 하더라. 나더러 운영이나 회계 대신 예술분야에서 일을 해보는 것이 어떠냐고. 결국, 나의 계약직 근무는 이년을 다 채우지 못하고 막을 내렸다.


빼도 박도 못하는 MBTI 성격유형 INFJ인 나.


지금도 MBTI는 성격유형의 표준처럼 통용되긴 하지만. 한 때 열풍이 불었던 시기가 있었다. 그것이 내 인생의 무슨 신념지표라도 되는 것인 양, 쪼그만 핸드폰 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무척이나 성실하게 체크해 나갔다. 뭐, 결론만 말하자면. 두 번을 테스트해서 두 번 모두 INFJ가 나왔다. 심지어는 신경정신과에 심리검사를 하러 가서도 전형적인 INFJ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뿐이 아니다. 우리 집 가족은 모두 다섯 명인데, 남동생과 엄마만 ENTP, ENFP이고, 나머지 세 식구는 모두 INFJ가 나왔다. 세상에 겨우 1% 라는 INFJ가 어쩌다 우리 집에만 다 모인 것일까. 모두가 알고 있듯이 그놈의 INFJ가 그리 만만하고 편한 성향이 절대 아니다. 세상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말아먹기 딱 좋은 타입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드는 성격유형이다. 오죽하면 엄마와 남동생이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은 탓'이라고 우스개 소리를 했을까.


알고 보면 주눅이 드는 일은 일상다반사, 당연한 일이었는지 모른다.


나에게 주눅이 드는 일은 언제나 뜨거운 욕조에 들어오는 차가운 물줄기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 일을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무척이나 자주 겪어왔다. 지금껏 내가 지껄인 이야기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을까, 얼마나 시시콜콜하고 얼마나 오래된 일들까지, 그 마음의 신경이 뻗어있는지. 그런데, 지금은 그런 나를 이해한다. 알고 보면 내가 그런 차가운 물줄기였다. 주눅이 어떻게 안들 수 있었을까. 그러나 그 상황을 뒤집어 보면 타인들의 불편함이 새삼 눈에 들어온다. 애니어그램 4번인 여자가 3번과 5번 성향의 사람들만 가득한 회계팀에서 일할 때, 주변 사람들이 겪게 될 이질감을 나는 잠시 생각해 본다. 겉으로 보기에 행동의 폭은 크지만, 웅크리고 안으로 들어가면 냉정하기 그지없는 INFJ의 성품을 맞춰가며 십 년 가까이 품어주던 직장의 동료들과 선배들이 가진 품성을 나는 생각해 본다. 나는 주눅이 드는 어색한 느낌이 싫었지만,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뭔가 톱니가 맞아 들어가지 않는 불편함을 묵묵히 감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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