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눅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시절은 내가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인이 된 직후로 되돌아간다. 나는 문예창작을 전공했다. 그렇다고 내가 현실적인 사고를 하는 인간은 못된지라, 취업준비를 하는 데 매우 서툴렀다. 때문에 당시 부동산회사를 운영하던 삼촌의 회사의 운영팀 과장으로 얹혀가게 되었다. 사장의 조카이니, 월급은 많고 할 일은 별로 없었다.
게다가 그놈의 주눅이 뭔지, 어떻게든 사람들 앞에서 쪼그라드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 나는 명품에 손을 댔다. 그렇다고 진짜 명품을 살 만큼의 주제는 되지 않고, 이른바 짝퉁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다.
남대문의 몇몇 가게, 백화점 로스제품을 가져다 파는 여의도의 아무개 아파트, 일주일에 한 번씩 트럭을 끌고 와서 짝퉁 명품을 파는 아저씨도 있었다. 나는 그들을 통해서 루이뷔통 우산과 보스턴백을 사서 들고 다녔고, 보그지에서 나올법한 구찌 사각 숄더백을 마구 굴려대며 사용했다. 짝퉁을 가지고 다니면 창피하지 않겠어? 모르고 하는 소리다. 그 무렵에는 우리나라에도 명품에 눈을 뜬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어지간한 부자가 아니면 명품을 보는 눈이 없었다. 루이비통의 그래픽 로고가 반대로 찍혀있어도 그 임자가 우기면 루이비통으로 믿어지는 시기였다.
작년, 내가 운영하다 말아먹은 테이크아웃카페에는 유난히 명품 가방을 멘 그녀들이 많았다. 요즈음은 짝퉁 기술도 무척 좋아져서, 무게를 달아보거나 돋보기를 가져다 놓고 감정을 하지 않으면 구별을 하지 못할 정도다. 그 가격도 상당하다. 품질이 좋은 미러급 명품은 실제 명품가격의 절반 정도 된다. 이른바, 짝퉁이라기보다는 준명품에 해당한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사실, 그녀들의 형편은 미러급 제품을 가지고 다니기에도 턱 없이 힘든 정도였다. 배우자나 반려자가 어느 정도 돈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하지만, 내 계산으로는 아무리 짱구를 굴려봐도, 그녀들은 그마저도 기대할 수 없다. 집안 형편이 내가 짐작한 대로 고만고만하지 않고서야, 그와 같은 박봉과 수고를 감내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아침저녁으로 북새통을 겪으며 출퇴근을 하고, 점심은 길 건너 국회의사당 구내식당을 이용하거나 도시락으로 겨우 때우고, 1,500원짜리 커피에도 발발 떠는 형편 말이다. 그것도 직원복지가 어느 정도 보장되는 정규직이 아니라, 시간제 계약직인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그녀들은 마치 패물을 장만하듯 돈을 모아서, 복잡하고 설명이 긴 과정을 거쳐서 저렴한 가격의 명품이나 명품에 준하는 가짜를 가지고 다닌다. 그녀들이 명품에 대해 그토록 성의를 보이는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일종의 전쟁터에 나갈 때 입는 갑옷으로 생각하면 된다. 형편이 고만고만한 사람들끼리 모이는 집단에서는 흔히 일어나는 분쟁이 있다. 자신의 형편도 그리 넉넉지 않으면서 서로를 얕잡아보거나 서열을 정하려는 의도들이 어디든 팽배하다. 바꾸어 말하면 자신의 남루함을 서로서로 상대에게 투사하여 함부로 대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집단의 규모가 체계적이어서 직급의 정리가 잘 이루어진 것도 아니고, 선후배 관계가 뚜렷한 것도 아니니, 결국에 자신이 자신을 지켜야 하는 처지인 것이다. 적어도 그녀들이 가지고 다니는 루이뷔통 백 하나, 구찌 지갑 하나면, 도토리 키재기 식의 신경전에서 심적으로 우위를 선점할 수 있다. 주변 동료들의 행동이나 어투도 한결 부드러워진다. 그러고 보면, 사치나 허영과는 동떨어진 용도로 명품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렇게 그녀들은 직장 안에서 일어나는 불필요한 자극을 피할 수 있고, 자신들의 에너지를 비축해서 퇴근 후, 가정에서의 삶을 살아간다. 그런 그녀들을 무엇으로 탓을 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