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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도 Nov 23. 2020

그들이 단톡 방에서 나간 이유

같은 상황 다른 해석 2

아이 간식을 사러 제과점에 갔다. 문을 열자 고소한 빵 냄새가 마스크를 뚫고 전해졌다.  두리번거리다가 제과점 유리 진열대 안,  찹쌀떡, 마카롱 세트가 줄지어 누워있는 걸 발견했다.

 '아 수능이  열흘 뒤네. 올해 수능 시험을 앞둔 이가 누가 있었지?'   동네 지인 아이 중에 한 명이 생각났다. 진열대 안 찹쌀떡을 째려보며 생각한다.

'이걸 전해주려면 지인한테 지금 연락해서 만나야 하는데. 지금 이 시점에 만나자고 하는 건 부담스러울까?'

관계의 구도를 그려본 뒤, 결국 난 찹쌀떡에서 시선을 거두고 휴대전화 화면을 연다. 그냥 톡으로 선물을 전해주는 게 적당한 사이라는 결론에서다. 초콜릿을 전송했다.




몇 년 전, 큰 아이가 수능을 치르던 해에 있었던 일이다.

큰아이 고등학교 같은 반 학부모들과의 단톡은 매년 열렸다. 반톡은 조용한 날이 거의 없었다. 반대표 엄마가 공지사항을 전달하면 줄이은 "감사합니다" 복사의 행렬이 이어졌다. 일찌감치 무음처리를 하고 어느 날 열어 보면 안 읽은 메시지가 수북하게 쌓여있곤 했다. 그러던 단톡 방은 수능을 앞두고 숙연할 정도로 조용했다. 마치 엄마들이  단톡 방 안에서 시험을 치르고 있는 것 같았다.


수능이 끝나고 학교 별로 합격자 발표를 한 즈음,

친구들하고 약속을 잡으려고 카톡 친구 목록을 죽 훑어 내려가는데 프로필 사진을 변경한 학부모가 눈에 띄었다. 그 학부모는 아이가 합격한 대학의 로고를 프로필 사진으로 올리고 그 뒷배경으로 그 대학 홈페이지에 아이 수험번호를 치면 나오는 합격 알림 화면을 캡처해  놓았다.  그 프로필 사진을 본 순간, 친구와 약속 잡는 걸 잠시 접고 서둘러 학부모 반 단톡 방에 들어가 봤다.  아니나 다를까. 단톡 방안에  몇몇 학부모들이 단톡 방을 나간 상태였다. 소통을 하려고 모여든 단톡 방을 나간 사람들. 지금은 소통이, 소통이 아닌 '울화통'이 될 수 있다는 표현일 수 있다.


단톡 방안에 누군가는 나가고 누군가는 남았다.

나가면서 '쾅'하고 문을 닫는 소리 대신 "000님이 나갔습니다"라는 문장을 발자국처럼 남긴다.

그 발자국 위에는  cctv로 나가는 순간을 찍어놓은 듯, 그들이 나간 날짜와 요일까지 나와있다.

그룹채팅의 숫자는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그룹채팅 38  그룹채팅 37.... 그룹채팅 33... 27

27 저 숫자가 남은 사람인지 남겨진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 남은 사람은 소통하고 싶은 사람인지 소통을 하기 싫다고 말하지 않을 뿐인 사람인지도 구분할 수 없었다. 소통의 창은 숨죽인 채 들릴 듯 말듯한 맥을 유지하며 남아있었다. 가까이 귀를 대봐도 숨소리가 들리지 않던 단톡 방. 아무도 그 단톡 방에 숨을 불어넣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뒤, 그 학부모 중 친분이 있는 몇 명과 즉석 티타임을 가졌다.

P맘 "그때 우리 반 단톡에서 엄마들이 우르르 나갔잖아요. 알죠?  바로 그날  H엄마가 K대학 합격증을 카톡 프로필 사진(이후:프사)에 올렸는데 그 이후에 벌어진 일이에요."

  "그러게요. 저도 봤어요. 많이들 나가셨더라고요."

k맘 "에고. 그때 톡으로 그것 좀 내리라고 하고 싶더라니까요. 그런 말 할 자격은 없는 것 같아서 참았지만요."

L맘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 엄마도 이해는 돼, 얼마나 자랑하고 싶었겠어요.  그 엄마가 아이와 함께 몇 년을 달렸으니 그럴 자격도 있죠 뭐. 사실 카톡 프사는 개인의 고유 영역 아니에요?"

P맘 "그게 왜 개인 사적인 영역이에요? 그 프사를 볼 수밖에 없는 다른 학부모도 생각해야지요."

L맘 " 보기 싫으면 안 보면 되죠. 카톡을 학부모 하고만 하는 건 아니잖아요. 친구들한테 알리고 싶었나 보죠."

나 "............" <혼자 버퍼링이 일어나 멍 하고 있었음>

K맘 "아무리 그래도 아이 합격해서 기쁜 사람이 먼저 배려라는 걸 해야지요. 자신의 기분만 좋으면 다인 가요?"



한동안 이런 대화가 오갔다. 난 이 말을 들으면 이 말이 맞는 것도 같고 저 말을 들으면 저 말이 맞는 것도 같았다.  정확히는 나라면 아이 합격 사진을 프사에 올리지 않을 것 같지만, 그 행동이  타인에게 비난받을 만한 일인지 그 선을 알 수 없었다. (사실 학부모 모임이 아니었다면 그 자리에서 한마디 했을 수도 있다. 전에도 썼듯이 학부모 모임은 고난도 관계다) 언제나처럼 모임을 마치고 집에 와서야 비로소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합격의 기쁨을 카톡 프사로 올려 많은 사람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 그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다. 다만 불합격한 학생의 학부모가 그 사진을 보면, 한번 더 마음 아플 수 있다는 헤아림이 있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아이 입시로 인해 지나치게 서로 피폐해지는 이 현실이 갑갑했다.




사람마다 측은지심을 느끼는 대상이 좀 다르다. 난 이 땅의 고등학생에게 유난히 측은지심이 강한 편이다.

지나가는 고등학생들, 어깨에 돌덩이 같은 가방을 메고 수심 가득한 얼굴로 지나가는 걸 보면 어깨를 툭툭 쳐주며 그 흔한 "수고했어"라는 말을 건네고 싶어 진다.  하교 시간, 편의점 유리창 뒤 간이 식탁에서 라면으로 식사를 때우고 바로 학원에 가는 학생을 보면 참치캔이라도 사서 옆에 놓아주고 싶다.

아까 지나친 학생들의 얼굴에는 '잘하고 싶은데 잘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향한 질책'과 '해도 기대만큼 안 나오는 학업 성적에 대한 배신감'이 녹아있었다.  '확 다 놔버리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는 마음'으로 아침 일찍 눈을 비비며 등교한다. 내가 아는 한, 그 시기의 학생들은 다 어떤 식으로든 마음이 괴롭다. 다만 아닌 척할 뿐이다.


세월이 갈수록 덜어주는 것 없이 더해지기만 하는 대입 요강에 맞춰, 다양한 역량을 갖추기를 강요받는다.

수능에 내신에 비교과에 각종 경시대회로 학생들은 여러 플러그가 꽂힌 멀티탭같이 버거워 보인다. 자칫 과부하로 화재가 날까 염려스럽다.

 

전에  큰아이 입시를 지켜본 소감을 쓴 적이 있다.  입시생을 양궁 선수에 비유해  "화살은 시위를 이미 떠났는데 과녁(입시안)이 오른쪽으로 상승 이동했다"라고. 움직이고 있는 과녁에 명중을 시켜야 하는 수험생들.

"작은 아이 입시 때는 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라고 썼다. 불길한 예감은 왜 적중하는 걸까?

지금 고등학생인 작은 아이 입시를 앞두고 최근 연이어 발표되는 '과녁의 이동'.  블라인드 평가와 정시에 정성평가 내신 반영, 그 밖의 변수들..... 내 일상생활은 그 변수 해독에 나서느라 뒤범벅이 됐다.  이미 작은 아이는 여러 상황을 고려해 고등학교를 선택해 다니고 있는데 블라인드라..... 3년 예고제는 선택사항이었던가?

난 잘생긴 사람이 좋아 얼굴을 보고 배우자를 선택했는데 평생 마스크 쓴 모습만 보라는 것 같다.


우려했던 현실이 일어나 지금 입시판은 대지각 변동이다. 당장 블라인드 평가의 첫 단추를 채운 이번 학년 수시 1차 합격자 발표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다. 설명회가 줄지어 이어지고 있다. 지난주에도 난 그 지각변동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여러 차례 설명회를 다녀왔다. 마스크를 쓴 학부모들이 거리 간격을 유지하며 비장한 모습으로 설명회를 듣는다. '그 학부모들이 학창 시절에도 이렇게 열심히 필기를 했을까?' 싶게 집중하며 메모한다. 마스크를 쓰고 듣느라 음료수조차 마실 수 없다. 노안으로 자료가 잘 보이지도 않아 미간을 찡그린다. 큰애 때와 달리 체력도 떨어져 4시간 가까이하는 설명회를 듣고 나면 정신이 아득하다. 

이런 과정이 있기에 아이의 합격 안에 엄마 자신의 노력이 녹아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 입시를 치르는 큰아이의 모습을 지켜본 입장으로,

우리나라 입시는  화재 시 대피가 어려운, 이상한 구조의 건물을 숨 가쁘게 빠져나오는 것 같았다.

'내 아이가 그 건물을 무사히 빠져나오기만을...'  건물 앞에서 애타게 기다리는 엄마들. 

다들 두 손 모아 아이가 나오기만 기다리는데  내 아이가 먼저 빠져나왔다고 큰소리로 환호할 수는 없었다. 

큰소리로 웃기에는 아직 그 건물에 남아있는 아이들도 있단 생각에 내 웃음소리는 저절로 음소거하게 됐다. 자랑하고 싶은 마음보다는 안도와 감사하는 마음이 더 커야 할 것 같았다. 조용히 아이의 등을 어루만지며 그 자리를 벗어났지만 다른 아이들도 어서 나오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다 우리들의 아이들이니까.


올해 수험생들은 코로나 19로 유난히 힘든 한 해를 보냈다. 그러나 결과는 그 노력과 정비례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지금은 수험생들이 건물을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기를 바라는 시간이다.  혹은 조금 늦어지는 학생이 있다면 배려를 담아 조용한 기다림을 선택할 시간이다.  옆집 아이의 입시 결과에 대한 호기심은 잠시 넣어두는 센스를 발휘하며.


                                                                                          <사진출처: 픽사 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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