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카페인 공급도 안됐는데 어느새 큰 애가 내 옆에 다가왔다(이럴 땐 깨우지 않아도 잘 일어난다).
"엄마... 네? 드론이요. 똑같지 않아요. 색이 다르잖아요. 게다가 조금 더 크고요."
'..............(머리가 아파온다)'
" 딱 하나만 더 살게요. 그건 정말 맘에 든단 말이에요."
'............. (왠지 이 상황을 빨리 피하고 싶다) 아 제발 커피라도 마시고!(말할 기운도 없다고)'
"네? 네?"
"............ (귀찮아서) 그래 이번이 마지막이야. 다시는 또 사달라고 하지 말기다."
"네!!"
이런 식으로 대했다. 안다. 교육적으로 별로 좋지 않은 태도였다.
아이를 대할 때 내 인내심 부족은 일관성 부족으로 이어졌다. 지구력이 유난히 부족한 엄마인 나는 일관성 조차 놓아버리기 십상이었다. 집요하게 요구하는 큰 아이의 성향을 누르지 못하고 버티다가 결국은 무너지곤 했다. 구차하게 변명하자면 그 당시 터울 나는 둘째 아이 야간 수유와 직장생활로 인해 수면부족 상태였다.
너무 피곤했던 것도 일관성을 유지할 수 없었던 요인이다. 부대끼는 상황을 어떻게든 빨리 끝맺고 싶었다.
그런데 아이가 점점 자랄수록 묘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큰아이는 엄마의 이런 태도를 늘 접해서인지 웬만해선 한번 만에 포기하지 않는다. 한번 해서 안되면 또 하고, 두 번 해서 안돼도 또 한다.
특히 수학 문제를 풀 때, 한 번에 안 풀려도 대수롭지 않게 다시 또 시도하곤 했다. 안 풀리는 문제도 이렇게도 풀어보고 저렇게도 풀어 본다. 한번 안되고 두 번 안돼도 세 번째는 될 수 있다는 걸 실생활에서 익혀 온 셈이다. 특히 수학 과제집착력이 좋은 편이다.
그에 반해 둘째아이때는 내가 좀 교육적으로 각성한 데다 조르는 큰아이에 수년간 지쳐서 다짐을 한 참이었다. 의식적으로 각성하고 아이와의 생활태도에서 좀 더 엄격하고 단호해졌다.
수년간 아이를 대할 때 규칙을 세우고 일관성을 유지했다. 원칙에 어긋나서 안 되는 건 안 되는 걸로 단호함을 유지했다. 그 결과,
작은 아이가 부엌에 있는 나를 방에서 부른다.
"엄마 ~이거 좀 도와주세요."
"안돼. 네가 직접 해."
"................. 네. 알았어요."
이렇게 작은 아이는 이제 한번 안된다고 하면 더 이상 말하지 않는다.
바로 수긍한다. 거절을 수긍한다는 것은 뒤집어보면 빠른 포기를 의미하기도 하다 (워낙 심성이 여리고 배려심이 많은 아이다).
문제는,
공부하다 문제가 안 풀리면 고민하지 않고 바로 별표 치고 넘어간다.
밤하늘 별은 아름답게 꿈을 담고 있지만
아이 문제집의 별은 잠정적 포기를 품고 있다.
'지금'이 아닌 '다음'이라는 세계로 밀어 버린 포기다.
작은 아이 문제집을 펼쳐보면 공기 좋은 시골 밤하늘을 보는 것 같다.
여기도 반짝 저기도 반짝곳곳에별이 빛난다. 푼 흔적도 없이 별부터 친 문제들도 있다.
끈질기게 붙들고 하면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단 걸 몸으로 체득하지 못했다.
안 되는 건 안된다고 일찌감치 체화한 거다.
'작은 애 어렸을 때, 너무 엄격했나? 시도와 타협의 기회와 그로 인한 성취경험을 박탈한 건 아닌가? '싶다.
그러고 보면 나름 원칙이 분명했던 친정엄마와 포기가 빠른 나의 조합도 있다.
갑자기 시가 절로 나온다.
밤하늘의 별을 보며 꿈을 꾸고
아이 문제집의 별을 보고 한숨을 쉰다
이렇게 볼수록 슬픈 별이 있을까
별 중에 제일 안타까운 별이다
밤하늘의 별은 해가 떠야 사라지고
아이 문제집의 별은 어떻게 사라질까
(분명 시로 시작했는데 타령이 됐다;;)
아이 시험기간, 갑자기 머리가 아파져서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다 튀어나온 엉뚱한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