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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도 May 04. 2021

나를 허물어뜨리는 한 마디

나의 불쾌함도 존중받고 싶다

화가 나거나 속상한 일이 있으면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다.  쪼르르 달려가 일러바치고 나면 숨통이 트일 것 같다. 난 어렸을 때부터 주로 엄마한테 말하곤 했다.

“엄마 오늘 정원이가 내가 빌려준 노트를 안 돌려줘서 시험공부 제대로 못 했어요. 

내일 시험 망치면 정원이 때문인 거예요.”

“무슨 사정이 있었겠지. 설마 너 시험 못 보라고 안 가져왔을까? 별거 아닌 걸로 괜히 화내지 말고 참아.”


이런 대화는 내가 결혼한 뒤에도 이어졌다.

“엄마 난  아이 감기 걸려 밤새 잠도 못 자고 힘든데 애아빠는 운동 나갔어요. 하루 종일 저 혼자 애 둘 보고 청소하고 요리하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원래 결혼하면  그런 거야. 엄마 되기가 쉽니? 자꾸 김서방한테 잔소리하지 말고 참아.”    


엄마한테 말하면 늘 나를 '다'에 구겨 넣으며 참으라고만 했다. 마음이 좁은 내겐 그 방법이 통하지 않았다.

'은영이도 정은이도 진경이도 희수도 그러면 나도 그래도 되는 건가?'

'다 그래'의 '다'안에 포함되려고 사는 건 아니잖아?'게다가 엄마가 말하는 '다'는 은영이, 정은이가 아닌 은영이 어머니, 정은이 어머니 세대의 '다'에 해당했다.  '다'에서 빠져나오려던 '나'를 나무라듯 혼내는 엄마를 대하며 '내 감정'을 눌러보려고도 했지만 이젠 더 이상 눌러지지 않았다. 쓰레기통이 꽉 차서 넘칠 지경이었다.


그 후로 난  입을 닫았다. 속상한 일이 있어서 엄마하고 이야기하면 속이 터질 것 같았다. 근거와 논리를 댈 수 없을 때 끌어오는 '원래'라는 말을 듣는 데에도 지쳐 갔다. 내 마음의 불만의 소리는 꺼내 놓으면 그저 집안의 소음이 되는 것 같다는 암묵적인 요구를 알았기 때문이다. 

엄마는 늘 내 감정을 그대로 읽어주고 인정해 주는 대신 내 감정이 문제로 번질까 봐 서둘러 문제를 치우는 방식을 취하곤 했다.  엄마에겐  타인의 시선 속에 딸이 반듯한 모습으로 비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널브러진 거실에서 한가롭게 놀다가 집안에 손님이 들이닥칠 때,

황급히 거실 소파 위 소품들을 한 아름 안아 옷장 안에 집어넣고 옷장 문을 닫는 것처럼.

엄마에게 터놓은 내 속상함은 늘 손님에겐 보여주면 안 될, 소파 위 너저분한 소품 같았다. 

옷장 속  어두컴컴한 곳에 갇혀 내 불평과 불만은 없는 듯 있어야 했다. 

옷장 문 뒤에서 내 마음들은 어둠에 갇혀 형태를 잃어버린 채, 없어진 것 같기도 하고 없어져야 할 것 같기도 했다. 옷장 안은 갑갑했다. 굳게 닫힌 옷장문처럼 내 마음도 조금씩 닫혀갔고  내 화는 옷장 속에서 우울로 발효되어갔다.


엄마를 만나도 하나마나한 이야기로 시간을 메우고 집에 돌아가는 길엔 

음악을 크게 틀고 차창을 내리고 바람을 쐬곤 했다.





몇 년 전  프리랜서로 글 쓰는 일을 할 때다. 퇴직 뒤 수년간의 공백을 메우려고 남은 열정을 쏟아붓고 있었다.  회의시간, 제출한 기획안을 기사화할지 말지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기획안은 괜찮은데... 아무도 씨가 이걸 쓸 수 있겠어요?  이건 아무나 쉽게 쓸 수 있는 내용이 아닌데."

사실 난 아무도가 아니라 아무나였던 것이다.;; 내게 질문을 던지는 듯했지만 그 눈빛에선 이미 나를 탐지하는 엑스레이 빛이 차갑게 쏘아대고 있었다. 대답을 기다리는 질문도 아니었다. "넌 안되잖아'라고 눈으로 말하고 있었다.


글을 잘 쓸 자신이 있었다면야 상대방의 의도쯤은 무시하고,

"그럼요"라고 답했을 것이다. 그런데 글을 쓰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내겐 자신이 없었다.

그냥 답을 못하고 팀장을 멀뚱하게 쳐다보고 있으니 (이럴 때마다 멍해지는 게 내 특기다).

팀장은 예상했다는 듯이 흐린 비웃음을 머금은 채 내 기획안을 휙 넘겨 옆자리로 던져놓았다. 그것만으론 뭔가 부족했던지 고개를 저으며 다음 기획안을 펼쳤다. 그 모습을 보니 회의가 끝나갈 때까지 훅 하고 더운 것도 같았다가 갑자기 으스스 추운 것도 같았다.


쉬는 시간, 아무렇지도 않게 내게 다가온 팀장에게  한마디를 하고 싶었다. 그때마다 나오려던 말을 누르는 또 다른 내가 있었다.

'괜히 분란 일으키지 마'

'참아.'

하며 상대방의 무례함을 그냥 넘기려고 혼잣말로 애쓰는 나를 맞닥뜨렸다.


그 모습은 내 고민을 들을 때마다 '그 정도는 참아'라고 누르던 엄마의 모습 그대로였다. 내 불쾌함을 옷장 속에 몰아넣으며 거실만 깨끗한 척하는 건 엄마나, 나나 똑같았던 것이다. 부정적인 감정을 애써 누르고 참는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게다가 일정 선을 넘는 무례한 발언을 참아낸 기억은 꽤 오랫동안 나를 침식했다.


한동안 가라앉은 기분이었다. 그러다가 내 마음속 화는 다른 이가 아닌 '나'를 향해있다는 걸 알게 됐다.

상대방의 무례한 언행이 몇 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건, 내게 무례했던 사람에 대한 분노보다  나 자신을 지켜주지 못한 '무기력한 나에 대한 분노'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 순간 참으라며 화를 눌렀던 나만 있는 게 아니었다. 그 나를 지켜보고 있던 또 다른 내가 있었다. 나 자신을 뭉개는 나에게 실망한 나.


무례한 일을 당하면 불쾌감이 온몸에 번졌다. 그 순간 불쾌함은 '내'가 살아있기 때문이었다. 

일종의 경고등이었다. 타인이 나의 영역을 침범했다는 경고등.

 무례함을 허용하는 '그냥 참아'란 말로 "나'를 허물어 뜨리고 있었다.


표면적인 평온을 위해 무례함으로 인한 불쾌함을 누르는 것은 나의 감정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었다.

내가 허물어지고 난 뒤에는 내가 내 중심을 잡을 수 없었다.

상대방은 미워하고 멀리하면 그만이지만 나를 지키지 못한 나는 미워도 멀리할 수 없으니까.


내가 제일 두려워해야 할 존재는 나였다.

내가 바라보는 내가 우습고 비겁하면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없다.


오랜 고민 끝에 조금 덜 무거워지기로 했다. 아닌 걸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꼭 갈등을 초래하고 관계를 깨뜨리는 건 아니었다. 무례함에 대항해 '화를 내는 것'과 '참는 것' 사이에는 '담백하게 설명하는 것'도 있다.

부정적인 감정은 누르고 덮는 것보다 잘 해결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


어렸을 때부터 부정적인 감정을 억누르는 대신  내 감정을 잘 바라보고 풀어가도록 교육받았으면 어땠을까.

약속을 안 지킨 친구에 대해 불평하는 내게 엄마가 '참아'라고 하는 대신,

"그래 속상했겠다. 다음부터는 친구를 보며  약속 꼭 지키라고 부드럽게 한마디 해"라고 했다면?

그렇다면 이렇게 멀리 돌아오지 않아도 됐을까.




엄마는 내게 따스한 햇볕도 주었지만 그늘도 만들어 줬다. 햇빛이 있으면 그늘도 생기는 법이니까.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부모도 자식에게 그늘을 주기도 한다.

이제 그 그늘에 빛을 들일 사람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다.




                                                                                  <사진 출처: 픽사 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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