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무도 Apr 05. 2021

화 터뜨릴까 말까

화를 넘기는 나만의 방법

"달그락달그락 턱"

"쾅"

.....................

'응?'

자다가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눈을 떴지만  아무것도 볼 수 없는 건 눈을 감았을 때와 똑같았다.

이불에서 부스스 손을 빼서 침대 아래 바닥을 더듬는다. 비행 중인 휴대전화를 쥐어 잡고 옆면을 누르니 불빛이 쏘아댄다. 눈부심에 찡그리며 스윽 보니 새벽 두 시 십 분이다.

'.... 햐.......... 으..... 또..'

깊은 한숨이 나온다. 옆으로 누웠던 몸을 돌려 바로 누워 이마에 손등을 갖다 댄다.

온몸에 퍼진 피곤을 뚫고 화가 비집고 나온다. 분명 11시 반에 거실에서 방으로 들어오며 큰아이한테 빨리 자라고 했다. 알았다고 하더니 이 시간에 웬 냉장고를 열고 달그락 거리냔 거다.


자다 깨면 다시 못 자는 불면증에 시달린 지 수십 년 됐다. 이 불면증은 아이들 어렸을 때, 특히 취약하다. 3시간 간격 수유할 때, 내 수면시간은 3시간이었다. 이제 좀 나아지나 싶더니 큰아이가 밤늦은 시간 왔다 갔다 쿵쿵하는 소리에 깨고 나면 심장이 큰북처럼 쿵쿵 울리곤 한다.


이런 일이 있을 때면  내 말을 무시한 괘씸함에다가 다시 못 잘 것 같은 불안,  내일의 피로함에 대한 예측 공포까지 더해져  화가 가속도로 질주한다. 예전 같으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한바탕 화를 냈을 거다( 실제로 얼마 전까지는 벌떡 일어나 버럭 화를 냈다. 그러고 나면 더 잠이 안 온다는 함정;; 그 순간은 넘기는 게 낫다).




한때 남편은 날 '앵그리 버드'라고 불렀다. 난 끄떡하면 화를 냈다. 남자 셋 하고 살며 치우고 돌아서면 어지럽혀 있는 집을 혼자 감당하다 늘어난 건 화뿐이었다. 치우고 화내고 화내고 또 치웠다. 그러고 나면 그들의 기억내가 한 건 없어지고 내 화만 남아있었다.


어느 날,  <과학콘서트>의 저자 정재승 님의 인터뷰 기사를 우연히 보게 됐다.

"사자는 화를 내지 않는다.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동물은 화를 내지 않는다.  강한 자는 굳이 화를 낼 필요가 없다(화를 내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한다).

강아지는 으르렁 거리고 컹컹 짖는다. 상황을 통제할 수 없는 개는 화를 내며 짖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화를 많이 내는 사람은 결국 약한 사람들이다(하고 싶은 걸 못 하고 화를 낸다)."


문득 강아지가 되어가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게다가 난 개띠다). 우리 집 남자 셋은 한다고 하고 나서 안 한다. 나는 안 한다고 하고 한다. 남자 셋은 안 하고 화 안 내고, 나는 하고 화낸다. 그러고 나서 나한테 왜 저리 화를 내냐고 했다. 쳇.  더 심각한 문제는 화를 내는 것으로 상황을 종결하고 막상 문제는 해결하지 못했다는 거다. 


이젠 그러지 않는다. 아니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화를 내서 달라질 게 없을 때는 일단 화도 접어두려고 한다. 화를 참는 게 아니라 아꼈다가 유효하게 내려고 한다.  '화'를 위한 '화'를 내지 않기로 결심했다. 화는 '과정'이어야지 '결과'여서는 안된다고 다짐했다. 이렇게 같은 의미의 문장을 '계속' 반복해 쓴다는 건 아직도 그렇게 실행을 못하고 다짐만 하고 있단 뜻이다 (지금도 글 쓰며 다짐 중이다). 화가 나는 그 순간을 넘겨야 할 때마다 떠올리는 게 있다.  




화가 더부룩할 때마다 해물찜에 있는 미더덕을 떠올린다.

해물찜 먹을 때마다 새우와 낙지를 찾는 젓가락에 스쳐 굴러가는 미더덕,

거추장스럽게 젓가락에 닿아 걸리적거린다. 낙지를 찾던 내 눈의 초점이 젓가락 끝에 닿은 미더덕에 모여 흔들린다. 애써 외면하려고 하지만 그럼에도 자꾸 눈길이 간다.


거슬리는 걸 해치우려고 입안넣고 툭 터뜨렸다.

"앗!!!!"

입안 가득 퍼지는 뜨거운 즙에 혀가 놀랐다. 따끔하다.

허무한 것은 그렇게 '툭'하고 터뜨린 미더덕은 그저 씁쓸한 맛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고작 이 씁쓸한 즙을 품었으면서 그렇게 단단하게 껍질로 감쌌던 거야?

게다가 왜 껍질보다 즙이 더 뜨겁지? 이렇게 뜨거운 즙이 터져 나올 줄 몰랐단 말이다.


애초에 '바로' 터뜨리지 않는 게 좋은지도 모른다. 미더덕은 국물에 우러내 깊은 맛을 낼 뿐. 맛을 변화시키는 게 본질인지도 모르겠다. 성급하게 터뜨리지 말고 국물 맛을 변화시킬 것, 내가 지향하는 화의 목표점과 닮았다.


그 뒤부터 해물찜 먹을 때마다 젓가락에 와 닿는 미더덕을 보면 잠시 생각에 잠긴다.

'이걸 입안에 넣고 터뜨릴 힘을 들여야 할까?'

터뜨릴 때 입천장과 혀에 들이는 힘의 양, 기껏 터뜨려 봤자 입안 가득 퍼지는 건 씁쓸한 맛.

그뿐인가 자칫 잘못 터뜨리면 뜨거운 즙으로 입천장만 델뿐이다.


이제는 안 속는다. 갈길을 훼방 놓는 미더덕에 단호하게 눈길을 거둔다

흐릿해졌다가 초점을 찾은 눈빛은  젓가락 끝으로 냉기를 담아 미더덕을 툭 밀어놓는다.


됐다. 넘겼다.

휴대전화를 바닥에 내려놓고 이불을 끌어 덮는다


아들... 너 미더덕에 고마운 줄 알아야 해!!! 


 뜬금없지만 비 때문에  때 이르게 낙화한 모습을 담아두고 싶어서.. 화를 누르는 데는 꽃 감상이 최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