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딸이 후진 주차하다가 그 차를 박았나 봐요. 차로 좀 가 보시죠. 보험사 불렀으니 곧 갈 거예요."
"네? 주차하다 제 차를요?"
"네. 보험사 불렀어요."
'아...'
비 오는 금요일, 아이 학원에 데려다주고 나서 근처 주차시설에 주차한 뒤 볼일 보던 중이었다. 주차된 내차를 어떤 사람이 후진 주차하다 부딪쳤다니 속상했다. 그런데 그 속상함 사이로 뭔가 이상한 느낌이 새 나왔다. 분명 무언가가 빠졌다. 찜찜한 마음으로 황급히 주차한 곳으로 가 봤다.
차는 왼쪽 부분에 심한 타격을 입었다. 도저히 수리를 안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반사등도 떨어진 상태였다.
그런데 전화했던 중년 남자 목소리의 주인공은 없었다. 20대 중 후반으로 보이는 여성 두 명이 내차 앞에서 아무 일 없던 듯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나를 보더니,
"이 차 주인이세요? 주차하다가 부딪쳤어요. 보험사 불렀으니 곧 올 거예요."
'딸 맞군 싶었다. 어쩜 아빠하고 말이 똑같을까?' 주차하다 내 차를 들이박고 아빠한테 전화한 모양이었다. 부녀는 똑같이 내가 없는 사이에 내차가 자발적으로 사고가 난 걸 알려주는 것처럼 말했다. 보험사를 불러줘서 고마워해야 할 상황인가? (어차피 블랙박스에 다 찍히는데). 그런데 왜 미안하단 말이 빠져있냐는 말이다. 이 행위와 말의 심각한 부조화는 뭘까?
나는 아무 말 없이 허리를 굽혀 차를 이리저리 살펴봤다. 차체가 우그러진 데다 하얀 차체를 길게 죽 할퀸 자국이 검게 남아있었다. 쭈그리고 앉아 이리저리 살펴보는데 내 차 앞에 서서 그들이 이야기하는 소리가 귀에 닿았다. 그 소리를 따라 고개를 위로 돌려 시선을 차에서 두 여성으로 옮겼다. 아무 일 없는 듯 웃고 이야기하는 모습과 차가 손상돼 속상한 내 모습이 내의식의 카메라에 동시에 잡혔다.
'내가 잘못 생각하는 걸까? 분명 이상한데... 이상한 거 맞지? 나 아까 처음 통화할 때부터 뭔가 빠진 느낌... 지금 차가 부딪친 이후 한 번도 미안하단 말을 듣지 못한 거 맞지?'
입출입하는 차에서 떨어진 빗물로 바닥이 질척거리는 주차장, 트렌치코트가 젖을까 봐 엉거주춤 쪼그린 상태로 고개만 들고 그들을 바라보다 다리가 뻐근해 일어났다. 심호흡을 한번 하고 나서,
"그런데요. 보험사 차는 언제 와요?"
"아까 불렀으니 곧 올 거예요."
대화에 방해돼 귀찮다는 듯, 내게 한마디 던지고 친구 쪽으로 고개를 돌려 이야기를 계속했다.
갑자기 내 안에 공격형 자아와 표면적 평화주의 자아가 나타났다.
'한마디 해?'
'관둬. 한참 어리잖아. 네 평소지론이 어리고 약한 자한테는 관대하고 강자한테만 굽히지 말라며? 지금까지 참다가 몇 번 불만을 제기한 것도 다 네 상사나 웃어른이란 걸 은근히 자부심 느껴 왔잖아? 약자는 건드리는 거 아니라며?'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 범퍼까지 찌그러졌으니 이건 명백히 수리해야 하는데 애 시험기간에 차 맡기면 사나흘은 어떡하라고? 그 불편함을 감내하는 건 나인데 왜 저리 당당해? 저 태도는 약자가 아니잖아.'
'그래도 놔둬, 네 자식이나 잘 가르쳐. 어차피 네가 말한다고 달라지지 않아. 네가 훈계하듯 말하면 그야말로 아줌마 꼰대가 되는 거야. '
이렇게 분주히 내 안의 두 자아와 싸우는 동안 시간은 훌쩍 지나갔다. 비가 온 뒤라 그날따라 날씨도 싸늘했다. 갑자기 그들의 평화로운 대화를 침범하며 방해하고 싶어 졌다.
"그런데 어느 보험사예요? 보험사가 왜 이리 늦게 와요?"
"곧 올 거예요. 보험 차가 오면 불러드릴 테니 차에 들어가 계세요.'
이건 아니었다. 미안하단 말도 못 듣고 이젠 날 배려해주는 척하는 걸 봐야 한단 말인가?
이젠 한계다. 평소지론이고 뭐고 벗어던졌다. 드디어 지갑보다 열리기 훨씬 어려운 입술이 열렸다.
"그런데요. 보험사 올 거예요 보다 '미안합니다'라고 말하는 게 먼저 아니에요?"
"........................."
"제가 지금 아이 학원에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하는데 이 사고 때문에 늦을 것 같아요. 아이는 밖에서 기다릴 테고요. 게다가 차를 수리한다고 해도 며칠 동안 차를 못 쓰면 상당히 불편한 일이고요. 그런 수고를 제가 겪어야 하는 거잖아요. 물론 실수로 어쩔 수 없이 일어난 일이지만 그래도 미안한 건 미안한 거잖아요."
난 잘못한 것도 없는데 목소리는 왜 떨리는 건지. 떨리는 음을 잡고 싶었다. 그래도 한번 말문이 트이니
발 디딜 틈 없이 꽉 찬 엘리베이터에 탔다가 도착한 뒤 빠져나오는 사람들처럼, 말들이 우르르 터져 나왔다.
그때까지 즐겁게 이야기하던 두 여성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한 명은 끝내 '저 아줌마 뭐니?'하고 볼뿐이고 또 한 명은'옛다 가져가시오"라는 표정으로,
"아~ 네~ 미안해요"라고 했다. 노래하듯 음감이 느껴지는 '미안해요'를 줍고 나니 기분이 더 언짢았다.
'아. 네?' 거기서 또 막혀버렸다. 내 예상을 뛰어넘는 반응에 다시 멍해져 있는데 저쪽에서 불빛이 다가온다.
보험사 차가 왔다. 도착하자마자 내차를 찍어댄다. 보험사 아저씨에게 마구 찍히는 내차를 나도 덩달아 바라본다. 주차구획선을 정확히 지켜 주차된 내차는 무죄다. 그런데 왜 이 저녁에 이리 플래시 수난을 겪어야 할까? 마치 범죄자가 출석하는 현장을 기자들이 달려와 찍는 것 같다 (참고로 주차된 차량을 후진하다 들이박아도 주차된 차가 주차구획선 안에 주차돼 있지 않으면 부분적 쌍방 과실이 될 수도 있다).
평소에 주차구획 양쪽 빈 공간이 균등하지 않으면 불안한 성격이라 다행히 사고 접수는 문제없이 진행됐다.
젖은 바닥을 디디고 차에 탔다. 그들은 내가 가는 걸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바닥의 축축한 느낌만큼, 마음에서도 덜 마른빨래에서 나는 쉰내가 진동을 했다.
'괜히 한마디 했나? 그냥 참을 걸 그랬나?'
'그런데 이건 정말 말할 만하잖아?'
'야야 꼰대들도 그들의 입장에선 다 말할만한 걸 하는 거야. 틀린 말을 할 때만 꼰대라고 하는 건 아니야.'
'그런가? 말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쪽에서 듣기 싫으면 꼰대인 거야?
그러면 정말 괜히 말했나? 아니야. 나 그냥 꼰대 할래. 못 참겠어.'
아이 학원 앞에 도착 뒤, 휴대전화 백과사전으로 꼰대를 찾아봤다.
꼰대 또는 꼰데는 본래 아버지나 교사 등 나이 많은 '남자'를 가리켜 학생이나 청소년들이 쓰던 은어였으나, 근래에는 자기의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이른바 꼰대질을 하는 직장 상사나 나이 많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변형된 속어이다 <위키 백과> 자신의 편협한 도덕적 잣대로 세상을 재단하려는 사람들이라고. <나무 위키>에는 나와있다.
'편협한 도덕적 잣대는 뭐야? 왜 이리 어려워? 어쨌든 나 꼰대 맞네. 그런데 왜 남자야? 여자 꼰대도 많아.'
이렇게 꼰대가 되는구나. 꼰대가 되어보니 비로소 꼰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역시 그 무엇보다 좋은 것은 체험 학습이다.
추가>>글을 발행 뒤, 댓글을 읽으면서 이 상황에서 저는 꼰대라기보다 꼰대가 되길 두려워하는 '꼰대 기피' 증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앞으로는 정당한 말을 할 때, 두려움보다는 용기를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