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소운 Mar 24. 2022

선(線)을 지키는 것, 선을 넘어가는 것

자식을 키우는 것은 독립을 도와주는 것

  그 녀석이 찾아왔을 때, 나는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그는 조용했으며 은밀했다. 함부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았다. 언제 어떻게 나의 몸속으로 들어와 자유로이 활보하며 영역을 확보하고 생채기를 내고 다녔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그의 공격을 막아낼 패트리어트 미사일 같은 요격용 무기조차 없으니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다. 백주대낮에도 활개를 치고 다니는 불한당 같은 놈. 수시로 제 모습을 바꾸는 변검의 고수이기도 하다. 뒤늦게 그의 존재를 느꼈을 때는 모든 것이 절정으로 치달을 때였다. 절정의 순간에 우리는 절망을 경험했다.


 그렇다, 우리 가족은 오미크론 확진으로 거의 2주간 합숙훈련을 해야 했다. 후유증도 꽤 오래 지속되어 몸에 힘이 없거나 목이 아프면 링거를 맞거나 건강보조제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이제는 돌아와 일상으로 복귀한 지 오래되었지만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주위 사람들의 반응을 문득 곱씹어 보게 되었다.


딸과 친구의 대화

딸의 친구들은 도대체 어떻게 했길래 가족이 다 걸릴 수 있냐며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고 한다.

 "혹시? 같이 밥을 먹은 거야?" 

 "그럼 같이 먹지, 따로 먹냐?" 했더니 친구들은 각자 알아서 밥을 챙겨 먹거나 집에서는 밥 잘 안 먹는다고 했단다.

 "집 분위기가 바람직하지 않아!" 하면서...


 남편과 친구의 대화

 "처음에 와이프가 걸렸다며?"

 "응..."

 "그리고 딸, 이어서 아들, 마지막으로 너까지."

 "응..."

 "딸 아들은 그렇다 치고 너는 왜 걸리냐? 혹시? 와이프랑 방 같이 쓰냐?" 눈이 동그래지더란다.

 "그럼 같이 쓰지, 따로 쓰냐?"

 "가족끼리 그러는 거 아니다!"


아들의 학급에서

학급에서 오미크론 확진자가 늘어나자 담임선생님은 아들을 교탁 앞으로 나오게 해서 확진 경위와 증상에 대해 Q & A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선생님과 반 친구들도 가족 모두 걸렸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 했단다. 그리고 모두 입을 모아 이렇게 외쳤다고.

"Unbelievable!"


   나는 가족들의 말을 호탕하게 웃으며 들었지만 '공간'과 '가족',  '선(線)'에 대한 생각에 마음이 멈추었다. 3~4인 가족수, 3개의 방이 보통의 주거형태라고 하더라도 부부가 사용하는 안방은 하나일 테고 거실과 주방은 공동의 공간일 테다. 거실의 화장실도 함께 사용하는 공간이다. 각자의 방에서 독립적인 생활을 한다 해도 가족의 동선은 여러 경우, 많은 시간 겹치게 되어 있다. 가족 모두 오미크론 감염이 됐다손 이상할 것이 전혀 없는 상황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그걸 다들 이상하게 받아들였다. 가족 모두 걸린 경우는 보지 못했다며.


  가족끼리 한 데 모여 먹고 자는 일상의 일들이 '그러지 말아야 할 일'이라면 가족 간에도 어떤 경계가 생기고 있다는 말이다. 어디 가족뿐이랴. 사회에는 더 많은 선(경계)들이 전신주에 얽혀 있는 전선들처럼 존재한다. 물론 눈에 보이지 않는 선들이다. 신분, 나이, 이념, 자본 등에 의해 나뉜 선 양쪽에는 영역이 존재하고 그 영역을 침해하는 것을 극도로 혐오하고 배척한다. 영화 <기생충>에서는 지하방에 사는 가난한 기택 가족들대저택에 사는 부유층, 박사장네가 '선'으로 나뉘어 대립하는데 선을 넘는 것을 '냄새'로 상징했다. 그 냄새는 가지지 못한 자들의 냄새이다. 지하의 쿰쿰한 냄새가 배어 있는 못 가진 자들은 악의적 의도를 가지거나 행동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증오의 대상으로 취급된다. 가진 자들은 그들의 영역이 침해당하는 것을 참지 못한다.


  이 보이지 않는 선이 가족들 간에 존재하고 선을 넘는 것을 불편하고 부담스럽게 생각한다면 그 가족은 건재한 것인가? 가족의 관심과 사랑이 짐이 되는 것보다는 무관심이 더 낫다고 생각해 버린 것은 아닌가. 불화가 생길 것을 우려해 은근슬쩍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다른 가족들의 사는 모습이 사뭇 궁금해졌다.


 '옛날에는, 거실이나 큰방에 상 펴서 밥을 먹고 텔레비전을 보고 함께 누워서 잠도 잤지. 내 것 네 것이 따로 없었어. 공동으로 소유하고 공유했으며 서로 연대했지. 때론 불편하고 불만스러웠지만 이해해야 했고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방법이라 여겼어...' 라며 내가 살아왔던 시절의 고리타분한 말을 아이들에게 꺼내고 싶지는 않다. 나 역시 머리가 커지면서 당연시하며 수용했던 '선 없는 가족관계'가 불편했으니까. 줄기차게 '나만의 방'을 달라고 외쳤고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는 보다 넓은 사회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독립을 꿈꿨으니까.

  

  코로나 후일담을 얘기하면서 딸과 아들은 한결같이 입을 모았다.

 "우리 집 식구들이 좀 유별나게 붙어 지내는 경향이 있어, 난 독립적인 생활을 원해, 인정?" 딸이 얘기하자,

 "인정! 가족이 외식하는  물론 주말 식사도 함께 하는 집이 없어요. 가족과 이렇게 오래 얘기하면서 지내는 집도 없고, 그렇지?" 아들이  맞받는다.

 "가족과의 시간? 친구와의 시간?"

 "당연 친구와 함께지, 인정!"

서로의 말에 인정, 인정 또 인정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아이들도 결국 '가족 간의 선'은 지켜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고 외부와의 관계를 위해 '가족이라는 선'을 넘어가고 싶은 것이었다.


  그렇구나. 시대에 따라 가정환경도, 가족이 사는 모습도 많이 다양해지고 달라졌구나, 연령대별로 생활패턴이 달라지니 사는 모습도 바뀔 수밖에 없겠구나.

집의 규모는 커졌고 식구수는 줄었다. 용도에 맞게 잘 설계된 집은 개인적이고 독립적인 생활에 적합하도록 진화했고 책상, 침대, 컴퓨터, 옷장, 책장 등이 완벽하게 세팅된 방에서 하루 종일 생활한다 해도 불편함이 없게 되었다. 독립적인 생활공간이 '가족들 간의 선'을 자연스럽게 만들었다. 사회적 관계의 확대는 '가족의 선'을 넘어 다른 선 너머로 전향하도록 유혹한다.



 한시도 떨어져서는 안 되고 떨어질 수 없는 때가 있었지. 함께 있어야 안심이 되고 마음이 든든할 때.

그러나, 서서히 생겨나 자꾸 더 선명해지려는 가족 간의 선들과 외부로 나있는 사람들과의 무수한 선을 인정해야 한다. 각자는 독립적인 존재이며 가족은 원초적 관계에서의 기본적 연대만으로도 충분하고 가능하리라.  가족의 선들을 포근히 감싸 지키며 세상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도록 응원해 주는 것이야말로 가족으로서, 부모로서 선을 지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는 오늘.


  잠시 잊고 있었다. 자식을 키우는 것은 자식의 독립을 도와주는 일이란 것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