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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운 Mar 30. 2022

현금 결제를 멈출 수 없다

오고 가는 현금 속에 싹트는 우정과 신뢰

  희망도서가 서점에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받고 딸과 동네 산책길에 나섰다. 오늘은 비대면 수업이 있는 날이라 하루 종일 집에 있었기에 수업 중간 쉬는 시간을 이용해 바람 쐬러 나가자고 꼬드긴 거다. 고개를 갸웃하며 썩 내키지 않는 얼굴로 "글쎄..."라며 말끝을 흐린다. 결단코 안돼, 싫어 소리가 나오지 않은 이상 반쯤은 의사가 있음이 분명하다. 이럴 땐 미끼를 던지는 게 상책이다.

 "같이 나가면 네가 좋아하는 캐러멜 마키야또 한 잔 사줄게"


  아파트 현관문을 열고 나서자, 훅~ 따뜻한 공기가 우릴 반긴다. 만개한 산수유나무 몇 그루, 아련한 풍경을 선사한다. 긴 꽃차례 끝마다 점점이 흩뿌려진 노란 꽃송이 송이들이 겨울에 내리는 눈 결정체 모양을 닮았다.

산수유는 존재로서의 중량감이 전혀 없다. 꽃송이는 보이지 않고, 꽃의 어렴풋한 기운만 파스텔처럼 산야에 번져있다... 산수유가 언제 지는 것인지는 눈치채기 어렵다. 그 그림자 같은 꽃은 다른 모든 꽃들이 피어나기 전에, 노을이 스러지듯이 문득 종적을 감춘다. 그 꽃이 스러지는 모습은 나무가 지우개로 저 자신을 지우는 것과 같다. 그래서 산수유는 꽃이 아니라 나무가 꾸는 꿈처럼 보인다.

산수유에 대해 묘사한 김훈 작가의 글을 떠올려 본다.


 산수유 주위에는 목련꽃과 매화가 무수하고도 화려한 꽃봉오리들을 달고 서있다. 존재감이 미비한 산수유 입장에서는 상당히 위협적이고 저돌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일찍 핀 백매화의 향기가 벌써부터 달큼한 향내를 풍기며 시선을 빼앗는다.


 서점에 먼저 들러 신청해 놓은 아니 에르노의 <탐닉>과 <집착>을 찾고 은행 무인기에서 아이 둘의 적금을 넣고 현금 10만 원을 찾았다. 적금은 자동이체를 해놓거나 스마트폰으로 이체를 해도 되지만 나는 굳이 통장과 돈을 가지고 가서 입금을 한다. 통장정리되어 나오는 통장을 확인하면 부자가 된 듯 뿌듯한 마음이 들어 그런 귀찮은 일을 신경 써서 하는 편이다. 현금을 찾은 이유는 산책길에 커피 두 잔을 사 먹을 돈과 충동구매를 할 경우를 대비해서다.


 물론, 나에게는 스마트폰이 있고 스마트폰에는 두 장의 카드가 저장돼 있기 때문에 결제를 위해 별도의 현금이 필요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금을 가지고 다니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데, 속물적이게도 나는 현금이 좋다. 그러나 돈(money)이 좋다는 개념과는 사뭇 다르다. '종이로 된 돈을 만지는 것이 좋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 책은 종이책이어야 한다는 생각과 결을 같이 한다. 종이책을 만지고 종이를 넘기는 행위를 당연시 생각하며 책에서 은은히 는 종이 냄새, 잉크 냄새가 익숙하고 좋다. 그와 마찬가지로 돈이 주머니에 있으면 왠지 마음 든든하고 기분이 편안해진다.


 두 번째 이유는 어떤 가게에서는 꼭 현금을 써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다. 내 가족 중 누군가가 운영하는 가게라고 가끔 생각해 보는 것인데, 오늘도 산책길에 사무실 집기를 정리하는 한 가게의 모습을 보았다. '또 문을 닫았구나.' 가슴이 철렁하였다. 최근 2년 간 더 자주 보게 되는 광경이었다. 가게를 차린 지 1년도 안된 것 같은데 오죽하면 그런 결정을 했을까 싶다.


 그래서 나 나름대로의 철칙 같은 것이 생겼다. 오래전부터의 생각이고 습관이기는 하지만 요즘 들어 철저히 지켜야겠다고 견고해진 생각이다. 생활용품을 대량 구매하거나 금액이 큰 경우는 카드결제를 하지만 동네 가게에서는 최대한 현금을 사용하자는 것이다. 중국집 배달 음식, 포장마차 분식, 커피가게, 꽈배기 집, 칼국수집, 청과 할인 가게 등을 이용할 때, 가격은 2만 원 정도 선에서. 오늘도 나는 딸과의 산책길에서 커피 두 잔에 5,800원을, 대저 토마토 한 소쿠리에 1만 원을 현금으로 지불하고 왔다.


 현금으로 지불할 경우, 가게 주인은 카드 수수료를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 오늘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중소형 동네 마트 주인들의 규탄 시위를 뉴스에서 보았다. 카드사들이 현재 2%대 초반인 신용카드 수수료율을 최고 2.3%까지 올리겠다고 한 때문이다. 자영업자들 입장에서는 일은 일대로 하고 손에 돈을 쥐어보지도 못하고 수수료를 날리는 셈이니 앉아서 코 베이는 기분일 것이다.


 게다가 세계 최대 밀 생산국 가운데 한 곳인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전쟁의 여파는 '밀가루 쇼크'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4~5개월 간 밀가루 가격은 30%가 올랐고 지난해 평균보다 이미 50% 이상 올랐다. 우리 가족이 동네에서 가장 사랑하는 칼국수집의 경우, 5천 원이던 가격을 얼마 전 6천 원으로 올려 받고 있다. 짜장면 가격은 1만 원까지 오를 거란 말도 있다.(현재 동네 짜장면 가격, 6천 원을 기준으로 봄) 


 일부분에 지나지 않지만 현금 결제를 고집하는 이유이다. 약간의 우려도 없지는 않다. 현금 소지 시, 범죄의 타깃이 될 수 있고 현금 결제 시 매출 누락에 따른 투명성에 관한 문제가 제기된다. 투명성 제고를 위해 카드 사용을 권장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을 감안하면 충분히 생각해 볼 법한 얘기다. 그러나 이 우려도 소상공인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얘기다. 지금은 자영업자에게 전시상황에 준하는 위기상황이다. 높아진 인건비와 배달비도 한몫한다.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 코로나 상황으로 정부는 그들에게 너무 많은 희생을 요구했고 나는 눈을 감았었다.


 오늘 산책길에서 마주한 산수유나무를 떠올린다. 산수유나무는 비록 미약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제가 가지고 있는 수형(樹形) 대로 햇빛과 바람, 공기와 수분을 받아들이고 섭취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다른 나무와 다를 바 없는 권리이다. 소액 현금 결제 버릇 개 못주는 내 생각에 대한 비유다.


 원시인, 비문명인, 아날로그 인간 등등 어떤 말을 들어도 뭐, 어쩔 수 없다. 그냥 나의 기준이 그렇고 생각이 그렇다. 취향적인 면도 있다. 꼰대 기질 운운해도 아니라 부정하지는 못하겠다. 카드 수수료로 빠져 나가지 않게, 자금 회전 용이하도록 현금으로 결제하는 것이 '소상공인들에게 약간의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단순한 생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아하는 문구가 있어 현금 결제를 멈출 수 없다.


 '오가는 현금 속에 싹트는 우정과 신뢰'라는 말을 나는 여전히 믿기 때문이다.





표지 사진>

소상공인을 위해 현금결제를 해달라는 유도 권유의 스티커 내용으로 불법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다.

카드결제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이며

노골적으로 현찰 지불 시 할인이나 음식값을 깎아주는 것 또한 불법이다.

'현금은 사랑입니다' 멘트 등 같이 은연중에 권유를 했다고 해서 처벌할 근거는 현행법상 없다.      

[출처] 음식점에서 현금결제를 유도 권유한다면 불법인가요?|작성자 바르다프랜차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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