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소운 Feb 07. 2022

'공주병'이 계속되고 있다

공주병


공주병이라는 의사의 진단이

난감했던 날

허리에 감기는 바람이 서글펐다.


세월 앞에 무너지는 것은 의식의 퇴행만은 아니겠거니

낡았거나 낡아가는 것들에는 사연이 많은 법이겠거니


공주도 아닌데 얻은 공주병

공주가 아니니 공주병이  병 같지 않다.

제가 공준 줄 아나 눈총이 따갑고

안 하던 공주 짓 할려니 어색하고

공주병이래,

알아달라 말하기도 민망하다.

생에 공주는 아니었던  분명하다.


죽어지는 것보다 생성은 생명의 에너지려니

표류하는 일상 변전(變轉) 나아감이겠거니


공주 소리 듣게 해 준 손목 한번 바라보다

마음 달래 하늘 한 번 쳐다본다.

무심한 하늘빛이 오늘따라 서럽다.






  공주와는 거리가 먼 내가 공주병 진단을 받은 것은 정확히 15년 전이다. "나, 공주병이래." 이야기하면 나를 아는 사람의 열에 넷쯤은 아연실색, 뭐라고? 운도 떼지 못한 채 어이없어했을 것이고 또 열에 넷쯤은 도대체 누가 그런 황당한 말을 했단 말이야! 대경실색, 웃어 젖혔을 것이며 그중 둘쯤은 너 혹시 요즘 어디 아픈 거 아니니? 하며 갈매기 눈썹을 하며 진지해졌을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건 엄연한 사실이었다. 의사는 분명히 나에게 "무조건 쉬어야 합니다. 쉬는 것이 최고의 치료예요. 그래서 공주병이라고 합니다."라고 말했었다.


  '공주병'이라 지칭되었던 나의 정확한 병명은 '퇴행성 디스크'였다.  마흔도 안된 나이에 퇴행성이라니... 나의 귀를 의심했다. 최근 들어 체중의 변화가 있었나요? 의사의 첫 질문이었다. 늦은 나이에 연이은 출산으로 나는 10kg 이상 체중이 늘어 있었다. 그게 가장 큰 원인이라고 했다. 그래도 그렇지 퇴행성은 좀...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허리를 바르게 쓰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2살, 5살 아이들을 전담 마크하고 있던 육아맘으로서 편히 누워 있거나 허리를 꼿꼿하게 바로 사용한다는 건 힘든 일이었다. 포대기나 띠를 사용해 아이를 업거나 안거나 하는 일이 잦았고 아이를 들어 올리거나 허리를 굽혀 돌봐야 하는 일, 쭈그리고 앉거나 무릎을 바닥에 대고 하는 일들이 많은 때였다. 요추 4번과 5번의 간격은 그래서 조금 눌려 있었다. 탈출이 아닌 것만으로도 위안을 삼아야 했다.


  급작스러운 통증으로 병원으로 실려간 나는 허리에 주사를 맞고 일주일 간 입원을 통해 재활치료를 병행해야 했고 아이들은 비행기에 실려 부산 친정으로 보내졌다. 아이들이 눈에 밟혔지만 꼼짝없이 병원신세를 져야 했던 나는 일주일의 병원 생활 후에 이 병을 공주병이라 부르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속이 탈 난 것이 아니니 주는 밥 꼬박꼬박 먹으면 되었고 몸 어느 곳 부러지거나 상처입지 않은 채로 집안일과 육아에서 해방되고 나니 편히 하루 종일 누워 자거나 책을 읽으면 되었다. 시간에 맞춰 물리치료를 하고 허리에 기구를 착용하고 병원 내를 몇 시간 걸어 다니는 게 다였다. 이게 뭐야? 이건 한량의 생활이 아닌가. 손에 물 안 묻히고 쉬거나 걸어 다니거나 먹는 일만 하면 되는 상전(上典)의 생활, 그래서 공주병이었던 거다. 속은 아프든 말든 어쨌든 겉으로  멀쩡한 공주의 모습이었던 거다.


  공주가 아닌데 공주 짓 할려니 마음이 불편했다. 어색하고 민망했다. 병실을 아무리 둘러봐도 내가 가장 젊었다.

 "애들은 어떡하고 왔어?"

병실의 노인분들은 새파랗게 젊은것이 병원에 누워 호사를 누리고 있는 품새가 이상하다는 듯 자꾸 물었다. 위아래를 훑어봐도 공주과는 아닌데... 하는 의구심도 깔려 있었으리라.


  그 후, 허리 근육 강화 운동을 하고 체중 조절을 하며 조심했더니 간간히 통증은 있었지만 말썽은 피우지 않은 채 몇 년이 지났다. 그러다 또 공주병 진단을 받았다. 5년 전쯤의 일이다. 이번에는 어깨가 말썽이었다. 의사의 첫 질문은 어깨를 많이 쓰는 일을 하시나요? 였다. 애매했다. 힘든 노동으로 밥벌이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생활하는 모든 일들은 힘든 노동의 연속이 아니던가. 어깨를 많이 쓰지 않아야 한다고, 이것 역시 공주병에 속한다고 말씀하셨지만 어깨를 사용하지 않을 방법은 없었다. 무거운 것을 들지 않도록 신경 쓰는 일 정도는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어깨는 시시때때로 나를 괴롭혔고 잊을만하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했다. 그 사이 어깨 관절 사이의 석회는 자라고 자라서 수술을 결정하고 찾아간 병원에서 "의사생활하면서 본 것 중 가장 사이즈가 크다"는 말을 들어야 했고 작년에 수술을 했다.


  사건은 여기쯤에서 마무리되었어야 했다. 그 정도의 아픔과 시련은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이니까. 모르는 척, 못 이기는 척 '나는 공주다'를 마음속에 새기면서 여러 가지 일들을 줄였어야 했는데 천성이 공주 부류는 아니었던 모양이었는지 전생에서라도 공주는 아니었던 모양인지 공주병은 본의 아니게 계속되었다.


  이제는 놀랍지도 않지만 공주병 소리가 서러웠다. 이쯤 되면 차라리 공주라는 소리를 들어야 마음이 편해질 것도 같았다. 공주로서 공주병은 당연한 것으로 치부해도 무리는 아니었기에.


  2022년 올해는 마음속에 계획한 것들이 몇 있었다. 드디어, 첫째가 올해 대학생이 된다. 둘째는 기숙사가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을 할 예정이고 보니 오전 근무만 마치면 오후 시간이 오롯이 생길 것이었기 때문에 그 어느 해 보다 올해는 '나의 해'로 정해 놓고 있었다. 다시 '나에게로 향하는 해'가 될 것에 마음이 단단히 부풀어 올랐었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고 눈물이 핑 돌 지경이었다.


  그런데 공주병이 또 도졌다. 이번엔 오른쪽 손목이었다. 그 좁은 손목 관절 사이에도 석회가 자라기 시작했다. 의사는 예의 힘든 일 타령을 늘어놓으며 손을 좀 쉬라고 했다. 공주처럼 가만히 있으라고도 했다.

 '그렇지, 그게 공주병의 본질이었지.'

'겉바속촉(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다)'의 이중성을 가진 튀김처럼 '겉멀속병(겉모습은 멀쩡한데 속에 병이 있다)'의 전형적인 공주병  현상에 대해 깜빡 잊고 있었다. 


  3주간 주사치료, 충격파, 물리치료 등을 하며 이번에는 공주답게 생활해 보겠노라, 나는 공주다, 최면을 걸었다. 그러나 손목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고 구정 명절이 있었고 일도 그만두지 않았으므로 공주병은 계속되었다. 물론 치료 덕분에 지금 당장의 통증은 사라졌고 일상생활에 지장은 없게 되었지만 근본적인 석회 제거가 아니기에 통증은 간혹 찾아올 것이고 잦아진다면 수술을 해야 할 것이다.


  죽어 없어지는 보다 무엇이라도 생겨나는 것은 생명의 에너지겠거니 마음을 고쳐 먹는다. 하염없이 표류하는 반복적인 일상에서 변전(變轉)은 차라리 지향점이 있는 나아감이 아닐까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낡아가는 것은 고치며 살아야지 생각하며 공주 소리 듣게 해 준 손목 한번 바라보다 멀뚱히 하늘을 올려다본다.

무심한 하늘빛이 오늘따라 서럽다.

이전 14화 현금 결제를 멈출 수 없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