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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운 Aug 25. 2022

죽은 공 살리는, 골프의 맛

  "세상에서 내 맘대로 안 되는 게 두 가지가 있대요, 뭔지 아세요?"

 "글쎄, 내 맘대로 안 되는 게 한 두 가지 라야지?... 요즘 너를 힘들게 하는 게 있나 본데, 말해봐, 내가 아주 혼구녕을 내줄 테니까."

 "자식과 골프래요..."

이 황당무계한 아는 동생의 말을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나, 순간 흠칫했다. 내 맘대로 안 되는 것 중 단연 최고는 자식일 수 있다는 데는 동감이지만 뜬금없이 골프라니. 골프가 맘대로 안된다는 것도 인정하지만 어디 자식의 레벨과 동급이란 말인가. 그러나 요즘 동생이 골프에 열을 올리고 있지... 생각이 미치자 이내 고개를 끄덕끄덕 했다. 그래도 그렇지, 자식은 비교불가의 대상, 불가항력의 영역이라고 못을 박았다.


  세상에 내 맘대로 안 되는 건 많다. 기대와 희망을 품고 가끔씩이라도 꾸준히 사온 복권은 당첨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가계 수입은 점진적으로 늘어가지만 지출은 급진주의자답게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상승 중이라 돈을 모을 새가 없다. 건강도 경계경보 수준에서 왔다 갔다 하니 응급처방식으로 약을 털어 넣어 보지만 여전히 보합세다. 살, 살은 그야말로 살 떨리는 얘기다. 배둘레햄이 꽉 낀 튜브처럼 빠지지 않고 있다. 이대로라면 운동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되는 순간이다.


  마음대로 안 되는 게 한 둘이 아니지만 굳이 한 두 가지를 꼽는 이유는 그것이 현재 진행 중이며 그것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거나 힘들다는 반증일 테다.  일에 열과 성을 다하며 진심이지만 내 맘에 들지 않을뿐더러 기쁨이나 만족이라는 보상을 안겨주지 않는다는 뜻도 되겠다. 어쩌면 그 일을 시작하면서 기대가 지나쳤을 수도 있고 잘되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잘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들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내게도 다시 시작한 골프는 골칫덩이다. 골프를 시작한 것은 10년 전이지허리 어깨 손목 등이 돌아가며 아팠던 탓에 족히 7년은 쉬었다. 그래도 3년은 친 거 아니냐고, 시쳇말로 구력이 3년이면 다들 '몸이 기억할 거 아니냐?'라고 한다. 선수할 것도 아닌데 취미로 하는 운동에 얼마나 실력이 뛰어나야 만족하겠느냐며 나의 욕심이 지나치다고 질타한다. 그러나 다들 모르고 하는 소리다. 덩치로 보나 깡으로 보나 구력으로 보나 드라이브를 치면 비거리 200은 족히 나갈 것 같다고 얘기하지만 덩치가 산(山)만 하다고 모두 소를 때려잡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결코 엄살이 아니다.


  초보자 수준은 살짝 넘은 정도에 불과하다. 사실 처음 배울 때만 해도 골프가 이렇게나 어려운 운동이었는지 몰랐다. 제법 원하는 대로 공이 잘 나갔으니까. 다른 데서 배운 거 아니냐며 추켜 세워줬으니까 운동 감각은 타고났나 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골프를 다시 시작한 지 이제 4개월째. 연습장에 갈 때는 전의에 불타 두 먹 불끈 쥐고 가지만 너덜너덜 패잔병 모드로 집에 온다. 공이 안 맞는 날이 대부분이다 보니 그야말로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원수 패듯이 공을 후두려 패고 또 팬다. 약이 빠짝 올라 빳빳이 날 선 닭 볏처럼 시뻘건 얼굴을 하고서.


  어쩜 골프의 메커니즘은 이리도 정교한지. 골프채를 어떻게 잡느냐, 릴리스 동작과 코킹은 언제 어떻게 유기적으로 결합하여야 하는가, 버팀목이 되어주는 다리의 힘과 자세, 허리와 힙의 움직임, 던지듯 내리치고 휘돌아 반대편으로 넘어가는 팔의 반경, 중심을 잡아주어야 하는 머리... 등 어느 하나 몸 편한 자세가 없다. 동작은 심플해야 하지만 몸은 불편해야 한다고 코치는 말하지만 그게 맘대로 돼야 말이지. 이해는 되는데 몸이 안 따라가는 걸 어쩌라고. 말대로 다 되면 선수하게? 남편은 내 동작이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듯 '퍼드덕 거리는 새'와 같다고 놀린다. 진자운동을 하는 바이킹처럼 몸이 좌우로 움직여야 하는데 공을 칠 때마다 벌떡벌떡 일어난다는 거다. 성질 더럽고 성격 급한, 그야말로 제대로 성격 나오는 거다.


  골프 스윙의 기초는 클럽의 헤드 무게를 느끼는 것이라고 한다. 몸에 힘이 빠졌을 때 비로소 헤드 무게를 느낄 수 있는데, 힘을 빼는 데 3년이 걸린다는 말도 있다. 운동도 인생에서와 마찬가지로 욕심을 버리고, 허세를 누르고, 힘을 빼야 하는 것인가 보다. 스윙 과정은 이러하다. 백스윙 탑에서 클럽 헤드는 아래 방향으로 내려가기 시작하며, 헤드면은 타깃 방향을 바라보며 직각을 이루고, 볼은 헤드 면과 접촉하면서 프트(loft)를 타고 올라 날아가는데 강한 임팩트를 만드는 것은 원심력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 최소 3년 간은 골프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운용하는데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고 그러려면 꾸준함과 성실함을 장착해야 한다는 것이다. 연습만이 살 길이라는 얘기다. 습관처럼 운동을 해야 한다는 말인데 인내와 끈기가 부족한 나로서는 이 또한 힘든 일이다. 호기심이 발동해서 시작하고는 1년을 채 넘기지 못하고 때려치운 취미가 한 둘이 아니다.


  '시작은 피아니시모야. 하루 열심히 패고 하루 끙끙 앓는 루틴은 버려. 매일 1시간씩만 치자고. 그리고 천천히 메조 포르테, 포르테로 넘어가는 거야. 비거리 욕심은 버려. 힘을 빼고 팔을 쭉 펴고 스윙을 크게 해 보자고. 안단테 안단테, 절대 서둘러서는 안 돼. 쿵 짝짝 쿵 짝짝, 몸에 리듬을 실어보자고.'

요즘 내가 마음속으로 외는 주문이다. 음악처럼 운동도 즐겨보자는 마음 가짐이다. 운동의 맛을 제대로 느끼면서 해보자는 결심이다. 모든 일에는 익숙해질 시간이 필요하며 절대 시간 총량의 법칙이 존재하리니 조급해하지 말지어다, 순간순간 결심한다.


드리이브 비거리가 처음엔 110m쯤이었는데 137,156, 169 까지 늘었다. 200m가 목표다.


  얼마 전, 친정어머니의 팔순잔치에서 오랜만에 만난 사촌 오빠와의 대화가 문득 생각났다. 오빠는 테니스 마니아로 벌써 십몇 년째 운동을 하며 지역 대회에도 출전하는 등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쉰 중반 나이에도 여전히 테니스를 하느냐고 묻자, 여전히 운동한다며 나이가 들수록 운동은 해야 한다고 했다. 너도 운동하는 게 있냐는 질문에,

 "운동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런데 요즘 골프를 다시 시작했어요."라고 대답했다.

 "야, 요즘 여기저기서 골프 한다고 아주 난리도 아니여. 코로나 상황에서도 주가가 높아진 게 캠핑과 골프라더니 너도 하누만 그래. 근데 그기, 나는 살아있는 공치는 게 재미있지 가만있는 공칠라고 애쓰는 거 보면 웃기더란 말여. 죽어있는 공 치는기 뭐 그리 재미있네..." 사촌 오빠는 혀를 끌끌 차며 말다.


  죽은 공을 치는 게 골프라고? 그런 말은 처음 들어 보는데? 뭐 이런 희한한 논리가 다 있나 싶었다. 어차피 테니스나 탁구 야구... 등 모든 구기종목의 공은 언제나 정지해 있다. 경기를 시작하려면 정지해 있는 공을 공격수가 치거나 던져서 경기를 시작해야 한다. 시작은 죽은 공이지 않는가. 골프도 마찬가지다. 정지해 있는 공을 침으로써 경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하는 행위는 같은데 다른 해석으로 재미가 있고 없고의 운동으로 나누다니, 재미있는 발상이다 싶었다.


  그 말을 들었을 때는 그냥 그랬다. 오빠의 억지 논리가 그냥 억지스러워 웃고만 넘겼다. 그러나 지금 와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제법 얘기가 되는 얘기였다. '골프공이 죽어있는 공이라 한다면 죽어 있는 공 살리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가?' 하는 생각. 마치 죽은 사람 살리는 것만큼 힘든 일이 아닌가. 나는 결국 심폐소생술을 해서 사람을 살리듯 공을 살리는 엄청난 운동을 하는 것이니 당연히 마음대로 될 리가 없지 않으냐며 마음속으로 억지를 부려 보는 것이다. 그 엄청난 '골프'라는 녀석과 제대로 한 판 붙어보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살리는 맛도 느껴보고 싶은 것이다.


  오늘도 나는 죽은 공을 살리는 맛에 푹 빠지기 위해 골프연습장으로 향한다. 다시 필드에 나갔을 때 푸른 창공을 뚫고 멀리 머얼리 날아가는 골프공의 궤적을 그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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