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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운 Sep 28. 2022

프로필 사진에 진심, 어때?

나의 역사를 기록해 보자

  "탁!"

도토리 한 알이 난데없이  발아래 무심히 떨어져 안착다.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닌, H의 카톡 프로필 사진(이하 프사)이 한낮의 무료함에 상상거리를 던지는 소리다. 이건 문 앞에 택배가 당도하였음을 알리는 메시지와도 같고 한동안 물고 뜯고 음미할 수 있는 놀잇감이자 먹잇감과도 같다.


  나는 애써 도토리 한 알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다. H도 도토리 한 알을 프올려놓았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 아닌가. 실제로 자신의 머리를 강타한 '괘씸한 도토리' 였을 수도 있고 강아지와의 산책 도중 가을의 정취를 느끼게 해 준 '낭만 도토리' 였을 수도 있다. 장석 시인이 <대추 한 알>에서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 없다며 저 안에 태풍 몇 개/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 안에 번개 몇 개가 들어 있어서/ 붉게 익히는 것일 게다...라고 읊은 것처럼 '하나의 티끌 속에 온 세상이 들어앉았음(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을 깨닫게 해 준 '열반 도토리'였을 수도 있다.

아, 이 얼마나 심오한 도토리 한 알의 세계인지, 혼자 도토리 한 알을 놓고 별의별 생각에 빠져 들었다.


  한낮이 조금 지난 오후, 여유롭게 식탁에 턱을 괴고 앉아 무연히 가을 하늘을 바라보고 있던 중이었다. 바람이 한차례 몰아치고 난 하늘은 방금 대청소를 마친 거실 유리창처럼 터무니없이 말갰다. 마침 한줄기 햇살도 거실 바닥에 길게 드러누워 오수를 즐길 참이었다. 이런 시간에는 내 마음도 따라 늘어져서는 삶의 집착 따위는 한없이 해이해지고 마는 것이었는데 문득 들여다본 도토리 한 알에 눈과 정신이 말똥말똥해진 것이다. 그렇게 되찾아진 정신과 생각은 다른 사람의 프로 향했고 또 다른 사람, 또 다른 사람에게로 옮겨갔다.


  문득, 사람에 대한 궁금증이 일 때면 카톡 프사를 찾아보며 근황과 안부를 점쳐보는 나의 오랜 습관이다. 떠오르는 얼굴들이 한 둘이 아닌지라 '나 홀로 프사 여행'은 꽤 오랫동안 이어진다. 안위가 궁금하다고 무작정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을 수도 없고 누구의 프사인지 구분하기 힘든 풍경, 꽃, 강아지, 고양이, 카페, 먹거리 사진들이 대부분이지만 사람과 사진을 연결해 생각하면 그 사람의 생각과 마음까지 읽히는 법이어서 마주 앉아 한참 수다를 떤 기분까지 들기도 한다.


 '길고양이를 데려다 보살핀다더니 집사 노릇에 푹 빠지셨군.'

 '꽃다발을 받은걸 보니 음, 이 즈음이 생일이었네. 여전히 행복한 날들을 보내고 있군.'

 '아파트 베란다에서 올려다본 하늘 사진이라... 이건 마음이 왠지 허허롭다는 표현일 텐데. 그럴 때 하늘을 보기도 하잖아.'

 '어딜 가도 너... 이 문구는 묵직한걸. '너'가 '가족'으로 읽히네. 위로와 위안을 간구하는 기도처럼...'


  이렇게 혼자 한참을 사진 보고, 상상하고 얘기한다. 최근 3년 간 나 홀로 프사 여행을 자주 하였었다. 그러다 보니 가끔 드는 생각이 또 하나 있다. 이슈가 되거나 재미있는 프사들도 많던데 내가 아는 사람들만 이렇게 평범하고 두루뭉술한 사진을 올리는 것일까, 아니면 이 나이에는 다 그렇고 그런 프사만 올리게 되는 것일까. 내가 전화번호를 입력한 후, 한 번도 사진을 바꾸지 않은 일편단심 프사도 보인다. 직접적이고 직설적인 '나만의', '나다운' 프사는 왜 올리지 않는 거지?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사람들은 앞다퉈 카톡과 스토리에 하루하루의 일상을 담은 사진과 글을 올렸던 때가 있었다. 불과 10여 년 전이다. 유행에 민감하지 못하고 기계치에 가까운 성향을 가진 나는 스마트폰 구입이 늦어 재미있는 놀이로 여겼던 커뮤니티 활동을 하지 않고 있었는데 주위 사람들은 '나는 네가 지난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는 듯 매일매일 서로의 생활을 속속들이 알고 얘기했다. 어제 본 TV  드라마를 외운 듯 조잘대던 여학생들처럼.


  누구네가 해외여행을 갔다든지, 누가 학교에서 상을 받고 누가 전교 1등이라든지, 아무네가 뭘 먹고 어떤 신상을 구입했는지, 특별한 날 선물은 무엇을 받았는지... 뒤늦게 알게 되더라도 '그런 일이 있었나 보네' 하고 넘길 일이고 몰라도 별 상관없는 얘기를 긴급속보 전하듯 여기저기로 옮기게 되니 일부에서는 '어디서 자랑질이야!' 고까운 시선으로 보게 되는 것이 사람 일이었다. 설령 악의 없이 전하는 말에도 갖은 억측과 추측이 더해지고 상상과 의심이 가미되고 질투와 시기가 결부되어 의도와는 다르게 구설에 오르게 되는 경우도 생겼다.


  왜곡되는 이야기가 싫었을 것이고 남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그래서 점점 가까운 친구만 접근하도록 설정을 바꾸고 개인생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게 되었다. 커뮤니티 활동을 접는가 하면 프사도 모호한 풍경사진이나 짧은 경구로 대신했다. '그래, 사람들 사이에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한 거야. 사생활을 다른 사람과 공유할 이유가 없지' 하면서.


조카의 감성 물씬 프사... 얼마나 아름다운지.


  연예인이나 젊은 층에서는 다양한 채널을 통해 친구들과 주위와 소통하며 매일 프사를 업로드하는 등 자신의 존재와 삶의 방식을 알리는 것에 주저함이 없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이제 내 주위 연배에서는 그런 활동 자체를 하지 않는 이가 대부분이다.  역시 스토리는 접은 지 오래고 프사 사진 교체도 가뭄에 콩 나듯 하고 내 얼굴도 어쩌다 찬조출연 정도에서 그치고 만다. 나를 나타내지 않고, 나에게로 숨어들고, 나를 우회하고, 다른 것으로 은유하여 표현하는 것이 절제와 겸양의 미덕은 아닐 텐데 말이다.


자신의 창작활동을 표현해도 좋고 건강한 아침 루틴을 기록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프로필 사진. 말 그대로 나의 약력, 즉 대략적인 나의 역사가 담긴 사진이라는 뜻이다. 내가 표현되어 있고 내 삶이 녹아있는 사진이니 진정성 있게 표현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인 것이다. 프사 바꾸는 변화를 싫어하거나 귀찮타 여기지  않는다면 일기를 쓰듯 자주 바꾸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왕 올리게 되는 것, 독특하면서도 자신의 개성이 잘 표현된 것이면 좋겠고 자신의 현재가 들어가 있으면 좋겠다. 깊은 사유가 담겨도 좋고 건강한 마이 라이프를 기록해도 좋을 것 같다. 내가 느끼는 생각과 감정을 문장으로 남겨도 좋을 것 같다. 이제,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밀쳐놓았던 프사에 변화를 꾀하자. 다른 사람 눈치 볼 것도 없다. 자신 없는 자신의 모습은 포토샵이 도와줄 것이다. 자존심 따위는 개에게 줘버려도 무방하리라. 내 프사니까.


  그렇게 되어야 내가 문득 사람이 그리울 때 두루 찾아가 조용히 안부를 물으며  프사 여행을 하는 보람이 있지 않겠나. 어디 보자, 가만있어 보자, 누가누가 어찌어찌 잘 살고 있구나 점치는 재미도 있지 않겠나.


  인생은, 어떤 결과에 대한 기쁨과 만족만으로 귀결(歸結)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향해 걸어가는 부단한 과정에 더 큰 의미가 있는 것이기에 프사에 나의 역사를 하나씩 기록해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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