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소운 Sep 17. 2020

쥐뿔도 없이 덤비지 마라

‘성공 보다 성장이 중요하다’ 나를 향한 메시지

‘쥐뿔도 없는 주제에’ 뭐라도 내세워 보겠다고 겁 없이 덤볐다. 쥐뿔도 모르면서 덤빈 일이니 보기 좋게 당해도 할 말이 없다.


올해는 어떤 기운이 나를 덮친 것일까? 우연을 가장한 필연일까?

‘비나이다, 비나이다. 아시지요? 올해도 글쓰기가 소원입니다요’ 새해 아침마다 쏘아 올리는 소망 1호.

어느 날, '나도 작가다'공모전에 꽂힌 것은 아직도 미스터리다. 주제도 새로운 시작과 도전이라 했다.

"쥐뿔!"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다.

글을 써야겠다고 매년 생각해왔지만 하나도 써 놓은 것이 없었다. 무슨 배짱이 이리도 격하게 좋은가. 그런데도, 정말 쥐뿔도 없는데도, 해볼까?라는 마음이 일었다. 그게 더 신기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은 허언이 아니다.


무딘 칼을 빼어 들고 벼리다.

칼이 쉽게 갈릴 리가 없다. 빼 든 이상 다시 집어넣을 수 없다는 자존심은 꼿꼿하게 아직 살아 있어 줘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들어 치기 메치기 뒤집기까지 하고 나서야 글은 완성이 되어 공모 마지막 날 밤 11시, '멋있게 응모를 해 주리라' 버튼을 눌렀다.

응? 작가 신청부터 하라는 메시지가 뜬다. 그런 거였어? 어디 쓰여 있었는데? 그럼 응모 못하는 거?


아,,, 요즘 말로 현타(현실 자각 타임)가 왔다.

'내일 할 수 있는 것은 내일로 미루자'는 것이 생활 신조네 어쩌네 하면서 우스갯소리를 해댈 때부터 알아봤다. 미리미리 준비하고 챙겨야 하는 일을 닥쳐서야 하게 되니 실수를 할 밖에.

마지노선 어쩌고 다 개뿔이다.

아이들에게도 앞 뒤 다 잘라먹고 얘기하지 말라고, 전후좌우 상황을 얘기해야 알 수 있다고, 6하 원칙에 맞게 설명하라고 닦달을 하면서 정작 나는 글의 앞뒤를 잘라먹고 알고 있다고, 이해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급한 성격 탓이라고 얼버무리기에는 실수가 선명했다.


실소를 머금고 작가 신청을 했고 며칠 후, 이제부터 글을 쓸 수 있다는 메시지를 받고서야 그 글을 올릴 수 있게 되었으나 공모기간은 지나 있었다.

‘헛똑똑이'짓을 했다. 쥐뿔도 모르면서 덤볐다가 혼쭐이 난 거다.



쥐뿔도 없는 주제에, 쥐뿔도 모르면서...라는 말을 흔히 쓴다.

나의 경우처럼, 잘할 수 있다고 하더니 막상 하니까 잘하지도 못하더라. 잘 아는 것처럼 얘기하더니 듣고 보니 별 거 없더라. 성공한 사람처럼 번드르르하더니 가진 것도 없더라. 이런 경우다.

쥐뿔, 즉 '쥐의 뿔'이라는 말인데 쥐에는 '뿔'이 없다. 실체가 없는 뿔을 '쥐뿔'이라 하니 쥐뿔에는 다른 뜻이 있을 게다. 쥐뿔에 관한 이야기에서 쥐뿔의 뜻을 유추해 보시길 바란다.


옛날에 한 노인이 짚으로 자리를 매고 있는데 작은 쥐 한 마리가 왔다 갔다 하였다. 이에 노인이 짚에 붙어 있는 벼를 훑어주었다. 이런 일을 되풀이하면서 노인과 쥐가 서로 친해지고 쥐는 점점 자라서 강아지만 하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쥐가 노인으로 변해서 가족들을 속이고 진짜 노인을 집에서 내쫓았다. 노인은 집에서 쫓겨난 뒤 이리저리 걸식을 하면서 떠돌아다니다가 어느 절에서 스님을 만나 사연을 이야기하고 고양이 한 마리를 얻었다. 몇 해 만에 다시 집으로 돌아온 노인은 고양이를 풀어서 마침내 요망한 쥐를 잡았다. 그리고 집안 식구들을 불러서 한바탕 야단을 친 다음에 아내를 따로 불러서 “지금까지 쥐좆도 모르고 살았느냐?”라고 힐난을 했다.
<정말 궁금한 우리말 100 가지> 중에서

그럼, 쥐뿔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짐작한 대로다. 쥐의 불알이다. 쥐도 작은데 쥐의 불알은 더 작을 것이고 잘 보이지도 않을 것이다.

쥐의 불알을 뜻하는 말이 쥐뿔인데 ‘쥐뿔이 없다’고 말한다면 얼마나 헙수룩하고 볼품없고 형편없다는 뜻일까?

‘쥐뿔’과 관련한 말에 이른바, '3척'이라고 있다.

있는 척, 아는 척, 잘난 척.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3척 안 하고 사는 사람이 있을까? ‘척’하는 것은 없는 데 있다고 하는 거짓말이다.

미국 심리학자 제럴드 제리슨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하루 평균 거짓말을 200회, 8분에 1번 꼴로 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2017년 EBS가 기획한 '거짓말'에서 하루 평균 거짓말 횟수가 3회로 나타났고 3살 때부터 14%의 아이가 거짓말을 시작하고 4~5세부터는 100% 거짓말을 하게 된다고 한다.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할 수도 있고 거짓말을 할 위치와 상황이 주어지면 거짓말을 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할 수 있는 수치이다.


세 달 전 이야기다. 

다니던 어린이집 사정상 실직을 하게 되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원장에게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 물었다. 한 치의 머뭇거림 없이 단호하고도 정확하게 받을 수 없다는 답을 들었다. 하루 4시간 알바 개념으로 한 일인데 그런 혜택이 있으려고 생각하고 잊고 있었다.

그런데 남편이 알아본 바에 의하면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고용노동부에 전화를 했다. 자진 퇴사를 제외하고 일주일에 15시간 이상 근무한  단기 근로자의 경우도 대상이 되며 180일 이상 근무한 경우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마터면 거짓말에 속아 넘어갈 뻔했다.

하마터면 혜택을 받지 못할 뻔했다. 하마터면 또 헛똑똑이 짓을 할 뻔했다.

내 밥그릇은 내가 챙겼어야 하는데 알아보기 귀찮아서 물어보고 해결하려 했던 나 자신이 또 한심했다.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것처럼 얘기한 원장도 이해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쥐뿔도 모르면서' 하고도 남을 상황이지만 쥐뿔도 모른 나의 잘못이다.


나는 아직도 이렇게 어리숙하게 산다.



쥐뿔! 이야기를 한 것은, 쥐뿔도 없이 덤볐다 혼쭐이 나고도 또 섣불리 덤비려고 하는 나에게 옐로 카드를 주기 위해서이다. 어리숙한 생각에 경종을 울리는 것이다.


요즘 나는 욕심을 내고 있었던 것 같다. 결과물, 성과에 집착하고 있었다. 예전처럼 완성된 것, 완벽한 상황, 성공한 사람에 대한 추앙이다.

불면의 밤이 늘고, 고민하고, 좌절하고, 힘 빠지고, 지치고, 다독였다가, 다그쳤다가... 애착과 애정, 증오와 분노를 넘나드는 1인 다역의 모노드라마를 찍자니 얼마나 힘든 일인가?

애면글면 할 일이 뭐가 있다고.


차분히 앉아 나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1. 친구와 만나 이야기하는 중이라고 생각하자.

꿈을 실현하고자 시작한 글쓰기다. 하고 싶었던 일을 해보자, 단순 무식 과격하게 시작한 글쓰기다. 결과나 성과를 먼저 생각한 것도 아니다.

서두를 일이 뭐 있나,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지 않았는가!


2. 밥이 될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자.

이루고자 하는 일에는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연습 없이 무대에 오를 수 없고 밥은 뜸 들이지 않으면 먹을 수 없다. 글을 쓰다 보면 무르익어 영글 때가 있을 것이다.

걱정할 거 뭐 있나, 친구와 이야기하며 나눌 맛있는 밥 한 끼가 되고 있지 않은가!


3. 잘 먹은 밥이 성장의 밑거름이라고 생각하자.

맛있게 먹은 밥이 보약이다. 그 밥이 몸을 건강하게 자라게 하고 마음을 건강하게 만든다. 건강한 몸과 마음에서 건강하고 좋은 글이 나온다. 맛있는 글이 나온다. 맛있게 먹은 밥이 나를 성장하게 하는 밑거름이 된다고 생각하자.

믿지 않을 이유가 뭐 있나, 친구는 내일 또 만나자고 약속하면 되지 않는가!


성공보다는 성장이 중요하고 지금이야말로 겸손과 절제가 필요한 순간이다.

잘하고 있다고 밝게 웃었다. 토닥토닥 다독였다.


그리고, 그 친구와는 매일매일 만나서 맛있는 밥 먹기로 했다. 누가누가 더 자라나 지켜보자 했다.





이전 09화 아니요, 차선입니다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