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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운 Jun 21. 2020

아니요, 차선입니다만...

차선도 최선이 될 수 있다

 #상황 1

 시화전에는 이걸로 내는 게 낫겠어

네?...

왜? 저게 더 마음에 들어?

아니에요, 쌤...

이번에도 나의 선택은 과녁을 벗어난 화살처럼 엉뚱한데 꽂혔다. 선생님이 골라준 시로 시화전 준비를 했다.

이게 더 좋은데, 참 희한하네.


 #상황 2

 일전에 말씀하셨던 건(件), (1) 안과 (2) 안 만들어 보았습니다. 검토 부탁드려요.

음...(2) 안이 좋은데! 구체화하고 보충해서 샘플 만들어 봐. 프레젠테이션 준비하고.

네? 네!...

이번에도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아무리 봐도 (1) 안이 좋구먼, 이유가 뭐야? 뒤집어 보면 잘 보이려나? 왜 항상 다른 사람들은 나와 다른 결정을 할까?




  #상황 3

 내 생각과 다르게 가는 결정과 결과들은 숱했지만 highlight of the highlight 사건이 하나 있었으니,

 

 때는 바야흐로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산에서 하던 일을 정리하고 가방 하나 달랑 들고 무작정 상경한 해다. 옥탑방에서 살고 있는 대학 친구에게 생활비 반반 조건으로 끼어살자고 부탁 아닌 협박을 해서 잠자리는 마련하였으나 먹고 살 일이 걱정이었다

모 일간지와 주간지에 취재 글과 인터뷰 꼬투리를 송고하여 받는 원고료는 딱 굶어 죽지 않을 정도의 최저생계비와 반반의 생활비면 맞춰 떨어졌다.

어떻게든 취직은 하게 될 거라 자신은 하였지만 돈은 좀 있고 봐야 정신적으로 안정이 되니 어디 돈 들어올 데가 없나 궁리만 하게 되었다.

배우 윤여정 씨가

“연기는 배고프면 잘하게 된다.” 며
어떻게 하면 연기를 잘하게 되느냐는 후배들의 물음에
"네가 지금 타고 다니는 차를 좀 더 고급으로 바꾸고 싶다면 그만큼 잘하게 된다." 고 한 말은 얼마나 현실적인가? 체득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제3회 ㅇㅇ문학상 공모 광고를 신문에서 보게 된 것이다.

머리가 팽이처럼 회전하기 시작했다.

두 번의 공모를 치른 문학상은 아직 명성이 쌓여있지 않은 불모지에 속한다. 도전해 볼 여지가 충분히 있다. 게다가 정통 문학상 쪽도 아니다. 마감도 얼마 안 남았는데 한 달이면 상금을 타게 되니 딱 좋네.

마치 상금이 나를 기다리고 있기라도 하듯, 이미 내 것이 된 것 마냥 그렇게 생각이 되었다. 시쳇말로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 무엇? 되시겠다.

결심을 하자 그 어느 때보다 글은 쉽게 써졌다.

원고를 보내고 한 달여가 지나고 드디어 발표일.


 새벽안개를 뚫고 신문을 사러 나갔다.

un·believ·able... 웃어야 해? 말아야 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수상자 명단에 이름은 있는데 내 이름이 아닌 친구의 이름이 박혀 있는 게 아닌가.

사연인즉 이랬다.

배가 고파서 글이 잘 써졌는지
아니면 욕심이 글을 불렀는지 모르겠으나
글 서너 편을 써놓고 보니
하나 같이 자식처럼
귀하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이 글도 좋고 저 글도 괜찮고, 한 편 만 보내려니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고심 끝에 친구 이름으로 한 편을 더 응모했다. 제일 마음에 드는 놈은 내 이름으로, 두 번째로 마음에 드는 놈은 친구의 이름으로.

그런데 친구 이름으로 낸 글만 당선이 되었던 것이다.

내 선택에 또 오류가 떴다.

내 머리가 삐뚠 거야? 생각이 삐뚤어진 거야?


 친구의 통장에 상금이 꽂혔고 돈 받아내느라 얼마나 많은 음식을 해 바쳤는지...갖은 아양과 아첨이 동반됐다. 수상식 및 저녁 만찬에 초대되어 동행은 했으나 아무리 좋고 비싼 호텔 음식도 쓰고 쓰더라.

생각할수록 부아가 치미는 것은 ‘수상작품집’인데 그 친구 이름 박힌 그 책, 아직 보관하고 있다.

다시는 이런 짓 안 해야지 반면교사(反面敎師) 삼고 있다.

이후에 수상자들 모임도 결성되어 연락도 왔던 모양인데 신경 끄라 했고 내 신경도 꺼버렸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내 나름대로 맷집이 생겼다. 최선의 방법을 찾되 차선책(次善策)을 마련하는 치밀함 같은 거 말이다.

내가 생각하는 최선이
최선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며
차선도 때로는
최선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의 경우 최선책으로는 일반적이고 무난하며 자료의 근거가 충분한, 자극적이지 않은 상식 선상에서 준비를 하고 차선책으로는 보다 색다르고 의외스러운 것, 살짝 상식 밖이다 싶은 것을 준비하는데 차선책을 선호하는 것을 볼 때,

사람 본성은 새로운 것에 반응하며 자극적인 것에 시선을 뺏기고 일상을 벗어난 일탈(逸脫)을 꿈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러니 삐딱이 시선으로 보자면

“이게 최선입니까?”

누군가 물어 온다면

“ 아니요, 차선입니다만”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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