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략 8명 정도 되는 환아의 '담당간호사'가 되었다. 신생아실의 업무는 어떻게 돌아가는지, 신생아에게는 어떤 특성이 있는지, 신생아 중환자실에는 주로 어떤 주호소를 가지고 입원하며 어떻게 간호를 해야 하는지, 아니 다 필요 없고 도대체 '간호'란 무엇인지... 출근한 지 며칠 되지 않은 내가 완전히 알기는 고사하고 수박 겉핥기식으로라도 아니 수박 냄새 맡기 식으로라도 알고 뭘 해도 해야 할 것 같은데... 적어도 한 달 정도는 트레이닝을 받게 될 줄 알았는데 며칠 다른 간호사들을 졸졸 쫓아다니며 어깨너머로 좀 들여다본 게 다인 내게 대뜸 환자를 맡기다니 지금 생각해도 팀장님은 지나치게 과감한 결정을 하셨던 것 같다. 나는 소위 '웨이팅'이라고 불리는 대기발령기간을 9개월 정도 거쳐 12월에 입사를 했었고, 신생아실에는 2월이나 3월경에 발령을 받아 이미 잔뼈가 굵어 있는, 동기라고 부르기도 뭐 한 동기들이 네 명 있었다. 대부분의 간호사들이 자기 일만으로도 너무 바빠서 나를 가르쳐 주거나 챙겨 주지 못했는데 그나마 그 동기들은 나를 가르쳐 주고 챙겨 주려 노력했다. 나는 환자를 완벽하게 보는 건 고사하고 사고나 치지 말자는 심정으로 동기들을 졸졸 따라다녔고, 동기들이 자신들도 바쁜 와중에 내게 신생아실의 업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듀티별로 출근하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과 시간대별로 해야 할 일을 틈틈이 가르쳐 주어 그나마 듀티마다 어떻게 겨우겨우 내가 맡은 환자를 보게 되었다.
중환자실에서 환자를 제대로 케어하려면 간호사 한 명당 한 명에서 두 명의 환자를 보는 게 가장 이상적인데, 그때 당시의 신생아중환자실에서는 NICU에서는 한 명의 간호사가 네 명에서 여섯 명을 보고 Sick zone에서는 여섯 명에서 많게는 열 명의 환자를 봤다. 인공호흡기를 단 환자들은 수시로 가래가 차지 않도록 suction(가래 흡인)을 해 줘야 했고, 수시로 돌며 기저귀가 젖으면 갈아 줘야 했고 금식이 아닌 이상 세 시간에 한 번씩 feeding(수유)을 해야 했다. 처방에 맞게 먹는 약과 주사약을 챙겨 줘야 했고, 정맥주사 부위가 붓거나 새지 않는지도 확인해야 했다. 신생아들은 자신이 어디가 아프고 불편한 지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간호사가 매의 눈으로 계속 관찰하며 어딘가 달라지거나 불편해 보이는 구석이 없나 계속 확인해야 했고, 활력징후(맥박 체온 호흡수)를 시간 맞춰 잘 체크해야 했다. 신생아중환자실의 아기들은 상태에 따라 검사나 처방이 자주 추가되었는데, 추가되는 처방을 확인하고 거기에 맞춰 혈액검사나 방사선 검사를 챙기거나 주사약을 준비하다 보면 어느새 기저귀 갈고 feeding 할 시간이 돌아오고, 이런저런 업무가 쌓여서 과부하가 걸리기 시작하면 소리 내어 울고 싶을 때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가장 울고 싶은 순간은 바로, 내가 오늘 할 일은 제대로 다 했는지 빼먹은 건 없는지 제대로 점검도 못하고 charting(간호기록)도 다 못 끝냈는데 다음 듀티 간호사들이 출근하고 업무인계 시간이 다가올 때였다. 미친 듯이 밀린 charting을 끝내고 허둥지둥 업무인계를 시작하면, 다음 듀티 간호사들-특히 선배 간호사들-의 매운 질문이 시작됐다. 이 오더(order, 처방)는 왜 난 건데? X-ray사진은 제대로 확인했어? I/O(Input/Output의 약어, 섭취량/배설량을 계산한 것)가 이 모양인데 노티(Notify, 주치의에게 환자 상태를 알리는 것) 안 했어? 선배들의 매운 질문에 겨우 대답을 하거나 우물쭈물 대답을 못하거나 하다가 인계를 겨우 끝내고 나면 자존감이 바닥을 치면서 나 같은 인간이 간호사라는 타이틀을 달고 이렇게 일을 해도 되나, 내가 그런 자격과 역량을 갖춘 인간인가,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체계적으로 트레이닝을 한 두 달 정도 받고 독립을 해도 혼자서 여러 명의 환아를 제대로 책임지기 어려울 수밖에 없는데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업무 환경-말도 안 되는 간호사 대 환자 비율, 고작 일주일의 트레이닝 후의 독립, 턱없이 부족한 휴식시간과 공부할 시간, 수시로 발생하는 응급상황과 부족한 간호 인력, 간호사에게 과도한 책임을 지우는 시스템 등- 속에서 업무수행을 완벽하게 못했다고 해서 눈물이 쏙 빠지게 혼이 나고 내가 나 자신을 미워하고 자책하는 건 말도 안 되는 건데, 그때는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밥은커녕 물 한 모금 마시기도 어렵고 화장실도 못 갈 때가 많은데 그래도 늘 시간이 부족하고 할 일은 넘쳐 났다. 업무 중에 혼나거나 인계 시간에 깨져서 우울한 마음으로 퇴근하고, 배고프고 스트레스받으니 퇴근길에 떡볶이나 순대 같은 걸 사 가서 먹고 소화도 제대로 안 된 상태에서 쓰러져 자고, 눈 떠 보면 또 다음 출근 시간이 임박해 있는 그런 일상이 반복되었다. 잠들 때마다 내일은 차라리 눈을 안 뜨게 해 달라고 사는 게 너무 고단하다고 기도인지 하소연인지 모를 기도를 하며 잠이 들었고, 눈을 뜨면 또 출근을 해야 하는 현실에 괴로워하며 출근을 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가 이런 기분이겠구나, 차라리 나도 그냥 죽어서 끝나면 좋으련만, 그렇게 나는 무기력과 우울에 빠져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