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요 4시간전

나, 절대 안 돌아갈래-1


 남자들이 재입대하는 꿈이 가장 끔찍한 악몽이라고 하듯, 나에게도 가장 끔찍하지만 주기적으로 꾸게 되는 악몽이 있다. 바로, 내 첫 직장인 B대학병원 신생아실에서 일하는 꿈이다. 요즘은 조산이나 다둥이가 워낙 많다 보니 NICU(신생아집중치료실의 약어, 엔아이씨유, 혹은 니큐라고도 부른다.)에 대해서도 많이 알려졌지만, 내가 처음 대학병원에 들어가 NICU에 근무하게 되었을 때는 갓 태어난 신생아만을 케어하는 집중치료실(흔히들 중환자실이라고 표현한다.)이 있다는 것 자체를 사람들이 잘 몰라서, 누군가 나에게 어디서 일하냐 물었을 때 신생아중환자실에서 일한다고 하면 대부분이 낯설어하거나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발령을 받던 날, 신생아실에 배정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의 나조차 그냥 갓 태어난 꼬물이들이 눕혀진 베시넷(아기바구니)이 주르륵 놓여 있는 풍경만 상상했으니 말이다. 신생아실에 첫 출근한 날, 입구를 열고 들어서자 팀장님(그 병원에서는 수간호사를 팀장이라 부른다.)이 날 반겨 주셨고 NICU로 안내해 주셨다. NICU에는 입구부터 끝까지 인큐베이터들이 주욱 서 있었고 그 안에는 아주 작은 아기들이 몸에 온갖 라인을 주렁주렁 달고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내가 그동안 보아 왔던 것과는 너무 다른 신생아실의 풍경이 무척 충격적이었는데, 앞으로 내가 이런 아기들을 케어하는 일을 하게 될 거라고 하니 더욱 충격적이었다. 흔히들 신생아실 하면 떠올리는, 속싸개와 겉싸개에 꽁꽁 싸인 아기들이 눕혀진 베시넷이 주르륵 놓인, 그야말로 주수를 잘 채워 아무 이상 없이 무사히 태어난 아기들이 머무는 신생아실도 있었고 그곳은 Well-baby room이라고 불리고 있었다. 신생아실은 NICU와 Well-baby room으로 나뉘어 있었고, 신생아실 간호사들은 두 방을 돌아가면서 근무하여 두 방의 업무를 모두 완벽하게 마스터하도록 훈련받았다.  NICU는 다시 두 구역으로 나뉘는데, 몸무게가 1kg이 되지 않는 극소출생아나 생후 28주 이전에 태어난 조산아 등 정말이지 '중환아'같은 아이들이 있는 곳이 NICU zone이고 그 외의 건강문제로 입원한 아이들이 있는 곳이 Sick zone이었다. 처음 발령받으면  zonSick zone과 Well-baby room에서 주로 근무를 하다가, 어느 정도 신생아 간호에 대한 지식과 경험치가 쌓였다고 판단되면 그때부터 NICU zone training을 받게 된다. 갓 발령을 받은 나 또한, 어떤 날은 SICK zone에서 어떤 날은 Well-baby room에서 근무하며 갓 태어난 신생아의 간호와 각종 질병으로 입원한 신생아의 간호에 대해 배우고 익히게 되었다. 

 태어난 지 며칠 되지도 않은 아기들이 뭐 그렇게나 걸릴 수 있는 병이 많은지, 신생아들은 잠만 잔다더니 아프지 않은 신생아들도 어찌나 신경 써야 할 게 많고 해 줄 게 많은지, 아기 낳고 나면 그냥 엄마가 되고 자연스럽게 안고 젖 물리고 하는 줄 알았더니 산모들은 아기를 안지도 못하고 젖도 물릴 줄 모르고 분유조차 먹일  줄 몰라서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마치 베테랑인양 산모에게 아기를 안겨 주고 자세를 잡아 주고 모유수유나 분유수유를 도와줘야 하고... 정말 하루하루가 갑갑하다 못해 공포였다. 간호라는 것은 전공 책을 보고 지식을 익힌다고 잘할 수 있는 게 절대 아니었다. 잘하고 싶다고 무조건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었다. 지식은 그냥 기본으로 갖고 있고, 베테랑 선배가 하는 것을 끊임없이 관찰하고 배우고 또 여러 상황에 맞닥뜨리며 오랜 시간이 지나야 만 능숙하고 일 잘하는 간호사가 되는 것이었다. 환자를 대상으로 환자의 가장 가까이에서 하는 일이므로, '실수를 해가며 배운다'는 것은 용납될 수 없었다. 철저한 업무인계와 체계적인 훈련을 통해, 처음부터 완벽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환자에게 불안을 주거나 환자에게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지 않고 주어진 모든 상황에 맞닥뜨릴 수 있는 간호인력이 되어야 하고 그런 이후에야 완벽히 '독립'(신규간호사의 훈련이 끝나면 혼자서 환자를 맡고 독자적인 간호활동을 하는 것)을 할 수 있는 거다. 심지어 훈련을 정말 충분히 받았다 해도, 처음 독립하면 그 누구라도 사시나무 떨리듯 덜덜 떨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때 당시의 간호업무 여건상, 그런 체계적인 맨투맨 훈련은 존재할 수가 없었다. 첫 3일 정도는 팀장님이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면서 일을 알려 주셨고 그다음부터는 거의 알아서 눈치로 배워야 했다. 지금도 우리나라의 간호사 한 명당 환자 수의 배정을 비롯한 근무환경은 처참한 수준인데, 20여 년 전에는 훨씬 더 심했다. 대학병원임에도 불구하고 인력이 너무 부족하고 근무시마다 배정되는 인력 수가 말도 안돼서, 한 바퀴 돌며 기저귀 갈고 수유하고 나면 바로 다시 기저귀 갈고 수유할 시간이 돌아왔다. 그런 와중에 아기들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사정(assessment)을 해야 했고 어딘가 아파하거나 평소와 다른 점은 없는지 끊임없이 살펴야 했고 처방된 약과 주사와 수액을 챙겨야 했고 발생하는 응급상황에 대처해야 했고 그러다가 추가되거나 수정되는 처방이 있으면 또 그 처방을 받아 실행해야 했다. 그리고, 내가 근무하는 동안 일어나는 모든 일과 그에 따라 내가 수행한 모든 처치는 철저하게 기록으로 남겨야 했다. 의사가 처방을 잘못 내도 병원에서는 처방을 잘못 낸 의사보다는 잘못된 처방을 걸러 내지 못한 간호사의 책임으로 돌리기 일쑤였고 아주 작은 실수도 신생아의 생명과 안전에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에, 고연차의 베테랑 간호사들조차도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그에 비해 너무 부족한 시간과 에너지 때문에 늘 곤두서 있었다. 나처럼 훈련이 되지 않은 간호사에게 그냥 환자를 맡기고 차트를 쥐어주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면서도 팀장님은 발령받은 지 일주일 된 나를 독립시키셨고, 나는 대략 8명 정도의 아기 환자들의 담당 간호사가 되고야 말았다.

이전 06화 나의 첫 의료기관-2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