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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옥미 Feb 22. 2022

오지랖과 사랑 사이..

사랑과 오지랖 어느 시점에 헤매고 있는.

"그냥 목소리 듣고 싶어서 전화했어요"

평소보다 톤이 높은 걸 보면서 무슨 일이 있구나 단박에 눈치가 채 진다.

"무슨 일 있어?"

"사실은..."

예전에 살 던 곳에서 가까이 지냈던 지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외국인인 아내와 아이 둘을 남겨 둔 채. 평소에 긍정적이었고 다른 사람에게도 격려하며 밝은 사람이었다고 한다.


문제는 전화 온 지인이 내가 사랑하는 친동생 같은 사람이라 이일로 마음이 많이 힘들까 봐 염려가 됐다. 그리고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지만 홀로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하는 외국인 아내가 황망한 상황에 얼마나 외롭고 힘들어할지 마음이 아팠다.


무슨 일이든 도움이 되고 싶었다. 조문을 가려면 차가 없이 대중교통으로 가는 길이 번거롭고, 시간도 오래 걸려서 선 듯 나서기 어려운 길이었다. 마침 다음 날이 책방 휴무일이라 지인이 살고 있는 지방에 가서 또 한 시간 정도 가는 지방의 장례식장을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했다.


펄쩍 뛴다. 힘들어서 안되다고.

운전경력이 오래고 그 정도 거리는 나에게 그리 번거로운 일이 아니었다. 내가 조금만 수고하면 서로가 위로를 나누고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충분히 다녀올 수 있는 마음이었고 조금도 주저하는 마음이 없었다. 그러나 지인은 돌아가신 분에게 미안하지만 내가 더 소중하다고 말한다. 내가 힘든 것이 싫다고. 내가 오고 가는 길을 지나치게 걱정을 한다. 지인은 고등학교 시절에 사랑하는 아버지를 교통사고로 잃었다. 몇 년 전 친정어머니는 유방암으로 돌아가셨다. 장례식장에 가서 내가 엄마처럼은 못하겠지만 작은 힘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결단을 했었다. 그 마음을 지인도 안다. 우린 서로를 위하고 아낀다. 난 그걸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다음 날 나의 이런 마음이 무너지는 한 마디를 들었다. 상황을 이야기하고 전달하는 과정에서 한 마디가 내 마음을 무너지게 했고 그동안 해왔던 나의 태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 단어는 오지랖이란 단어였다.

결론은 날 걱정하는 지인의 마음을 받아 장례식장을 가지 않았다. 그동안 난 몸이 힘든 것보다 마음이 편한 쪽을 택하며 살았다. 몸은 힘들어도 내 마음이 움직이면 행동했고, 그 행동이 상대 쪽에서 사랑으로 받는다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상대방에게도 오지랖이라고 느껴진다면 그건 진짜 오지랖인 거다.


젊은 날 내 마음에서 진심으로 돕고 싶어서 했던 행동을 점점 이용당한다는 느낌이 들었던 적이 있었다. 사랑을 받는 것과 이용하는 것 정도는 눈치챌 줄 아는 사람이었으니까. 누군가를 돕는 것도 지혜가 필요하고 절제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계기였다. 그런데 무슨 천성인지 힘든 사람을 보면 몸이 먼저 벌써 가있다. 그러니 마음은 오죽할까? 세상 모든 일에 해결사처럼 나서서 해주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하니 병도 그런 병이 없다. 


혼자 사는 지인이 밤에 방광염으로 잠을 못 잔다고 카톡이 왔다. 얼마 전 몸이 피곤해서 방광염이 걸릴 조짐이 보여 약을 사둔 것이 생각났다. 새벽 1시가 넘었지만 차로 10여분이 걸리는 지인 집에 가져다줬다. 혼자 밤새 화장실을 들락거릴 지인이 걱정이 되었고 고민할 것도 없이 바로 출발을 했다.  그래 난 이런 사람이다. 마음이 바로 행동으로 옮겨지는.. 머리 굴려 계산하고, 어떻게 생각할까 따지지 않고, 몸이 먼저 움직이는 사람. 


난 매일을 이 오지랖과 사랑 사이에서 헤매고 있는 것 같다. 부디 나의 모든 발걸음이 사랑이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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