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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일]
“당신은 내일부터 시간의 묘한 뒤틀림 속에서 연속성을 거슬러 오를 수 있어요. 때로는 상대방의 무의식을 엿들을 수 있고요. 타인의 의식 세계에서 들어갈 수도 있어요. 그것이 원래 당신의 모습이에요. 당신은 이제 당신의 모습을 찾아가는 거예요.”
사라 발렌샤 얀시엔이라고 자신의 이름을 말한 여자가 마동에게 안겨서 속삭였다. 무슨 말을 하는지 무기질의 말처럼 들렸고 육체노동을 많이 한 것처럼 마동은 힘이 들었고 그럴수록 그녀의 닿을 수 없는 깊은 곳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사라, 그게 무슨 말이죠?” 마동은 숨을 참아가며 말했다. 하지만 사라 발렌샤 얀시엔은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온몸으로 마동을 안아주고 있을 뿐이다. 그녀가 지금 하는 말의 단어를 일렬로 죽 늘어트려 놓은 다음 하나씩 되짚어 보려고 했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말을 제. 대. 로. 풀어서 해석해야 할 것 같았지만 지금은 사라 발렌샤 얀시엔이 전해주는 또 다른 세계에서 빠져나오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녀의 깊은 곳은 수많은 세대를 거쳐 만들어진 단단하고 신비스러운 문명의 템플 같았다.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그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는 일단 그곳에 닿아봐야만 알 수 있는 것이다. 닿아보면 된다. 그러면 된 것이다.
그녀에게서 건너온 흥분이 마동의 몸속에 남아 있었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 하여 지금 당장 해석을 해야 할 존재양식 같은 건 어디에도 없었다. 그녀는 마동에게 안겨서 그의 등을 정갈한 손톱으로 누르면서 알아듣기 힘든 말을 계속했다.
“과거로 가게 돼요.”
“이봐요, 사라?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사라 발렌샤 얀시엔은 엉덩이를 마동에게 바짝 밀착시켜 시냅스와 시신경, 세포의 움직임과 유전자 그리고 무의식과 에고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렇지만 마동은 모두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뿐이었다. 마동이 일을 하는 부분에 있어서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말이기는 했지만 시신경과 시냅스 사이에 무의식이 지접 하여 변이 한다는 말은 생소했다. 무의식은 인간이 만들어낸 허구의 가상공간으로 여기로 있었다. 마동이 해내고 있는, 망가진 꿈의 채취는 무의식의 공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뇌의 어딘가, 의식 속에 망가진 채로 숨어있는 것이다.
그녀의 축축한 세계에 마동이 들어간 후로 그녀의 빗소리 같은 신음은 다른 생각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마동은 숨이 찼다. 그런 마동에 비해 사라 발렌 얀시엔은 고요하고 조용하게 신음을 뱉어낼 뿐이었다. 뱉어낸 신음에는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혼란도 분명히 있었고 두려움도 있었다. 그녀도 마동을 만나서 낯선 곳에서 교접을 하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동을 선택했다. 그 생각이 드니 마동은 안심이 되었다. 또 다른 감정을 느끼면서 그녀를 꽉 끌어안았다. 보송한 이불처럼 그녀의 피부는 부드러웠다. 비에 젖지도 않았고 땀도 흘리지 않았다. 땀에 절어 끈적끈적하고 비에 젖어 축축한 마동의 몸과는 비교가 되었다. 그녀의 신음소리는 예리하고 날카로운 면도날이 되어 밤공기를 가르고 대기를 숨죽이게 만들었다.
마동은 그녀를 안고 있는 상태로 그녀의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그 속에는 마동이 전혀 생각지 못한 세계가 있었다. 사람의 눈동자를 들여다본다는 것이 이토록 신비스러운 일인가 할 정도로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눈동자 속에는 마동이 알지 못하는 모습이 스며들어 있었다. 몇십 배 확대되는 마이크로렌즈를 장착한 고화질카메라로 담은 수십만 개 파리 눈알의 아름다운 색채처럼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눈동자 속에는 여러 가지 색과 빛의 조합이 보였다. 언뜻 알고 있는 여자의 얼굴이 스치기도 했다. 마동은 그 얼굴이 잠깐 보인 것에 몸을 떨었다.
그녀가 왜 갑자기 떠오른 것일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