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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람들은 실로 다양한 바이러스와 병에 시달리고 또 그에 대항하고 있습니다. 불면이 가져오는 생활의 불편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습니다. 병원들은 그간에 다양한 노력으로 불면을 치료하려고 했습니다. 각 가정으로 돌아가고 나면 환자들은 불면을 지니게 됩니다. 자신이 가장 편안하다고 생각하는 공간에서 불면을 맞이하는 것이죠. 그것에서 오는 괴리가 큽니다. 제일 편안하게 쉬어야 할 곳에서 잠들지 못한다면 어디에도 갈 곳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집안 구석구석 붙어있던 불면의 덩어리가 천장을 타고 벽면을 기어 내려와서 환자의 몸을 덮치는 것이죠.”
틈을 두었다.
“많은 사람들이 불면을 겪으면 그 시간에 다른 생산적인 활동이나 책을 읽으면 된다지만 불면은 그 일련의 행동을 싫어합니다. 그것도 무척이나.”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불면이 오면 잠의 세계로 가지 못하고 현실의 세계에서도 불면에 지배당해 어떤 활동도 못하게 되죠. 그러면 사람들은 불면에 대한 공포가 서서히 커져서 괴로워합니다.”
흠.
분홍간호사는 내가 의사에게 하는 말을 문 밖에서 전부 들었을까.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그럼에도 분홍간호사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있다.
“불면이라는 새로운 질환은 나름의 진화를 계속해왔습니다. 불면은 환자들의 뇌가 불면에 귀속되는 순간을 노려 불면증을 점점 증식시킵니다. 도리가 없어요. 불면증을 호소하는 많은 분들이, 언제나 잠을 제대로 들지 못하는 집과는 다른 곳이지만 이곳에서 편안함의 세계로 들어가게 도와주면 됩니다. 그렇게 하면 불면에 시달리는 분들이 잠을 편안하게 푹 잠들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잠이라는 건 오래 자느냐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질 좋은 잠을 자는 게 중요합니다. 깊게 잠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길이보다는 깊이입니다. 주위가 어두워야 해요. 자, 이리로 들어오시죠. 고마동 씨.”
방 안으로 들어서니 천장이 낮았다. 어니 낮아졌다고 해야 하는 표현이 맞다. 마동의 키 정도로 천장이 낮아져서 마동은 약간 허리를 굽혔다.
“무슨 장치가 숨어있는 것이죠?” 마동의 말에 분홍간호사는 미소만 더욱 진하게 만들고는 마동을 침대로 안내했다.
“여기 침대에 누우시면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을 겁니다.”
“저 그런데, 간호사님?”
“네?”
“검사실에서 혹시 무슨 일이 있었나요?” 마동은 조금 용기를 내어서 물었다.
“검사에 필요한 행위들이 이루어졌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행위라니, 검사에 필요한 행위가 무엇일까.
피를 뽑고 심전도를 측정하고 내시경을 하는 행위? 그것은 눈을 뜨고 정신이 있을 때 해도 되는 것이다. 분홍간호사는 다른 행위를 말하고 있다. 마동이 물어보려는데 분홍간호사는 테이블 위에 음료가 있으니 잠들기 전에 마시면 몸이 한결 가볍고 편안해질 거라고 했다. 그리고 들어왔던 문으로 풍만한 가슴을 안고 사라졌다. 분홍간호사가 사라지니 방안은 어두워졌다. 조명 탓이 아니었다. 그저 어두워졌다. 분홍간호사도 묘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기이한 능력의 소유자. 어떤 능력인지는 불분명했다.
수면실에는 어둠이 가득했다. 수면실의 어둠은 마동을 편안하게 이끌어 주었다. 신기했고 신비로웠다. 침대에 걸터앉으니 눈으로 볼 때보다 쿠션의 탄력이 느껴졌다. 원장에게 이야기를 하면서 떠올랐던 세미나 때의 어둠의 냄새 때문에 가슴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어지러운 증상이 사라졌다. 전혀 증상이 느껴지지 않았다. 수면실을 가득 메우고 있는 어둠은 흉가에서 만난 어둠과는 질적인 차이가 있었다. 집으로 데리고 가고 싶은 어둠이었다. 항상 데리고 다니면서 어둠에게 내 몸을 안아달라고 말하고픈 어둠이었다.
의사는 마동의 상태를 잘 알고 있었다. 마동은 종합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아 보는 것이 어떨까 하며 어제 이야기를 했었지만 의사는 큰 병원에서 많은 돈을 들여 검사를 받아봐야 알 수 있는 사항은 없다고 했다. 하지만 검사를 받는 것은 환자의 자유라고 했다. 여자에게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얼굴을 가진 의사는 마동에게 제. 대. 로. 된 소견을 말해주지 않았지만 마동은 의사를 신뢰했다. 작정하고 친절한 의사는 신뢰가 가지 않지만 이 의사는 신회가 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