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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n 14. 2024

어제의 하늘보다 오늘의 하늘이 9

248


248.


 손으로 동전을 그러모아 바지 주머니에 넣으니 바지가 묵직해졌다. 마동은 이 버스의 노선을 알지 못했다. 버스넘버가 네 자리의 완행버스였다. 버스는 보통의 버스와 다르게 오래되었고 버스 안은 밖의 날씨보다는 나았지만 에어컨의 기능이 시원찮은지 사람들은 버스 안에서도 연신 부채질을 했다. 누군가는 요즘 이런 버스가 어디 있냐며 투덜투덜거렸다. 버스기사는 승객들의 불만에는 관심 없다는 듯 선글라스의 시선은 차창 앞을 주시하며 운전을 할 뿐이었다.


 버스는 음악도 이야기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버스의 엔진소리만 새벽의 내과병동 환자들 기침소리처럼 크게 들렸다. 버스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었다. 마동은 버스 뒷자리에 자리가 비어서 그곳에 가서 앉았다. 동전이 닿는 소리가 짤랑거렸다. 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후텁지근한 날씨에 일그러진 얼굴을 한 사람들이 어딘가에서 어딘가로 이동하는 모습이 보였다. 평일이지만 배스킨라빈스에는 사람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만두모녀가 앉아서 만두를 먹었던 만두가게는 여전히 사람들이 없겠지.


 버스가 정류장에 정차를 하고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을 집어삼켰다. 다섯 명이었고 그녀들은 버스의 뒤로 까르르하며 몰려왔다. 그녀들에게서는 더위에 잘 익은 복숭아의 냄새가 풍겼다. 그녀들의 얼굴은 무더위와 태양에 내준 탓인지 벌겋게 익었지만 버스에 올라타는 순간 개의치 않고 그녀들만의 대화를 나눴다. 엔진소리만 요란하던 버스 안에 여학생들의 웅성거림이 퍼졌다. 여학생들이 말을 할 때마다 뜨거운 복숭아의 냄새가 같이 번졌다. 버스는 인생포장마차 같은 곳이었다. 포장마차 안은 직위나 세대에 상관없이 몰려들어서 문어다리나 해삼 등 여러 가지 술안주에 소주를 마실 뿐이다.


 버스도 마찬가지다. 마동이 앉아있는 뒷자리에는 노인도 앉아있었고 마동의 앞자리에는 중년의 부인도 앉아 있었고 청년도 있고 마을이장처럼(새마을 모자를 쓰고 있었다) 보이는 사람도 있고 20대 여인도 보였다. 마지막으로 여고생들이 올라탔고 그녀들은 버스 안의 정적을 와장창 깨뜨렸다. 흘러가는 것이겠지만 그녀들도 시간에 타격을 입으며 대학에 입학을 하고 남자친구를 만들어 같이 잠을 자고 배신을 당할 것이다. 그러면서 세상에 눈을 뜰 것이고 회사에서 자신을 버려가며 일에 파묻혀 추억 따위는 점점 잊어 갈 것이다.


 지금의 나처럼.


 대부분의 추억은 잊혔다. 추억은 기억과는 또 다른 것으로 혼자가 아닌 누군가와 함께 공유한 것이다. 잊으려고 발버둥 친 기억은 유리벽을 너무나 깨끗이 닦아놔서 그 속을 더욱 환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잊기 싫은 기억은 먼지가 쌓이고 뿌옇게 막이 껴서 닦아도 소용없게 된 모순을 지니고 있다. 경운기의 바퀴에 몸과 머리가 갈리면서도 아버지는 웃었다.


 왜 웃었을까. 죽음으로 가면서 웃어버리는 마음은 무엇이란 말인가.


 기찻길에 누워 있다가 조각조각 분쇄되어 버린 어린 친구들의 얼굴은 밤마다 꿈에 나타났고 자살을 한 군대동기의 그 녀석은 책 속에서 튀어나왔고 임신했던 연상의 그녀가 배에 공을 맞고 쓰러져서 고통스러워하던 표정은 컴퓨터 화면에 나타났다. 고등학교 시절 병실에서 눈을 떴을 때 무엇에 입원을 하게 되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고 지금까지 떠오르는 장면도 없었다. 좋은 기억의 회로는 어디에도 어디로도 닿을 수 없었다.


 새삼 화가 났다. 주먹을 쥐고 버스의 유리창을 깨버리고 싶었다. 주먹을 자신도 모르게 꽉 쥐었다. 왕창 다 깨버릴 수 있을 텐데, 하고 마동은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그래도 어딘가 화풀이를 하고 싶었다. 마동은 버스 안을 다시 둘러봤다.


 저 사람? 저 사람?


 누군가와 눈만 마주쳐도 일어나서 그 사람의 얼굴을 한 대 후려갈겨 주고 싶었다. 무의식이 불결하고 불온한 사람의 얼굴을 못 쓰게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역시 그럴 수는 없었다. 힘을 주며 꽉 쥐었던 주먹의 힘을 서서히 풀었다.


 버스는 어딘가로 계속 갔다. 목적지로 향할 것이다. 그것이 버스의 역할이며 균형이다. 마동은 이 도시에 오랫동안 살고 있지만 이 버스가 어디로 가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버스는 일단 시내를 벗어나 시 외곽 쪽으로 가게 된다. 마동이 살고 있는 바닷가와는 다른 지역의 바닷가 마을로 들어가게 된다. 이 버스는 이제 묵교동을 거쳐 오경이라는 작은 항구마을의 정류장에 멈추게 된다. 마동은 아직 그곳을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버스는 거대한 사거리를 지나 도심을 빠져나가려는 준비를 했다. 쁘아종제과점을 지났고 저녁이면 사람들이 흘러 넘 칠 술집과 먹거리가 가득한 골목이 있는 곳을 지나쳤다. 작은 동네의 정철원 산부인과를 지나고 꿈나라소아과를 거쳐 경찰서를 지났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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