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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n 16. 2024

어제의 하늘보다 오늘의 하늘이 9

250


250.


 오로지 계단을 통해서 오르는 건물.

 계단을 밟고 한 발 한 발 올라서야 꼭대기에 닿을 수 있는 건물.


 4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청소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아서 계단의 끝 구석에는 지구에서 처음 보는 찌꺼기 세계관을 형성하고 있었다. 계단 역시 한눈에 다 쓰고 소모되어 버린 60년대식 자동차의 엔진만큼 오래되었다. 미끄럼 방지 턱은 낡고 칙칙한 동물의 사체가 발하는 뼈의 색처럼 금색의 도금이 연약하게 빛났으며 방지 턱이 사라져 버린 계단도 보였다. 3층을 애써 오르니 코로 훅 들어오는 더러운 냄새가 났다. 이런 냄새는 겨울에는 잠잠한 냄새였다. 여름의 후텁지근하고 습한 대기에 섞여서 풍기는 불쾌하고 불길한 냄새였다. 4층의 계단으로 올라가니 상영하는 영화의 포스터가 상처 난 얼굴에 아무렇게나 바른 연고처럼 덕지덕지 붙어있고 예고편의 포스터도 불규칙적이게 복도의 벽에 붙어서 하나의 규범처럼 보였다.


 마동은 무슨 영화가 상영하는지 알아보지도 않고 입구에서 표를 구입했다. 몽구스의 작은 입처럼 보이는 벌어진 구멍에서 누군가 귀찮다는 듯, 얼마입니다, 하는 소리가 들렸고 마동은 주머니에 있던, 버스기사에게 받은 잔돈을 모아서 표 값을 지불했다. 작은 입구에서 작은 표가 한 장 툭 나왔다. 역시 오래된 밥그릇처럼 보기 드문 영화티켓이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문은 온통 붉은색으로 두꺼운 솜이불을 세워 놓은 것 같았다. 대기실에는 지구에서 아마도 처음 보는 소파가 보였고 소파 사이에 테이블이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장기알과 바둑판이 있었고 동전을 밀어 넣어 운세를 알아보는 상자도 보였다. 대기실에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사람이 있는 게 더 이상할 것이다. 동시 상영하는 영화를 돈을 지불하며 억지로 보려고 오는 사람은 이제 이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차를 타고 조금만 벗어나면 시설 좋은 대형 멀티플렉스가 있는데 어떤 이가 케이블티브이에서도 방영하지 않는 영화를 보려고 올 것인가. 바닷가에 인접한 마을이나 마을의 노인들이 시간이 나면 보러 올지도 몰랐지만 집집마다 50인치 이상의 대형티브이를 구비해 놓은 집들이 많아졌다. 사람들의 선호는 집안에서 편안하게 대형 티브이를 보는 것으로 생활형태가 바뀌었다. 대한민국의 극장이라는 곳은 나이가 들어버리면 찾지 않게 되는 묘한 곳이다. 그렇게 좋아하던 피자를 멀리하는 경우와 같다.


 대기실 한 편의 작은 매점에서는 더 이상 흥미를 찾을 수 없는 표정을 하고 아날로그 티브이 속에 시선을 고정한 50대 여성의 모습이 보였다. 상영관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상단에 영화 시간표가 붙어있었다. 두 편의 영화 중 하나가 15분 후면 끝이 난다. 마동은 15분 후에 들어가서 나머지 한 편의 영화를 처음부터 볼 요량으로 대기실의 소파에 앉았다. 극장 안의 대기실에는 에어컨은 없었다. 마동은 더위를 타지 않았지만 매점에서 티브이를 보고 있는 50대 여성은 몹시 더워 보였다. 연신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마동이 앉은 소파는 푹신하게 쿠션이 꺼졌지만 불편한 소파였다. 어딘지 소파를 만들어내는 공장에서 불량품으로 만들어진 소파를 구해서 이 극장의 홀에 가져다 놓은 듯했다.


 푹. 신. 하. 지. 만. 불. 편. 한. 소. 파.


 이것이 세상이다. 마동은 소파에 앉아서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막상 등을 기대고 앉으니 불편하지만 사람을 잡아끄는 매력을 지니고 있는 소파였다. 소파는 소파로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장식으로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마동이 등을 기대는 순간 마동 역시 장식의 일원으로 소파와 어울리는 것이다. 커피 잔과 커피 접시처럼.


 소파는 불편한 모습으로 마동에게 인사를 건넸고 불편한 대로 받아들여 달라고 했다. 마동은 빛바랜 나무색의 소파를 손바닥으로 한 번 훑었다. 인조가죽이 벗겨져 거칠한 감촉이 전해졌다. 마동은 등받이에서 등을 땐 다음 테이블 위의 장기알과 바둑판을 의미 없이 건드려보았다. 마동은 어젯밤 일을 떠올렸고 회사생각을 했다. 1분 동안 회사 생각을 하다가 그만두려는 찰나 는개의 얼굴이 나타났다.


 포니테일을 고수하는 실력파 여성. 나와 어디 하나 연결될 수 없는 여자.


 는개의 얼굴이 생생해질수록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얼굴이 더 이상 생각이 나지 않았다. 희미한 얼굴 윤곽만이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기억의 전부였다. 기이하지만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얼굴을 떠올리면 는개의 얼굴이 그 사이를 틈입했다. 는개가 건네주던 자양강장제와 어깨를 잡아주던 여린 손바닥의 떨림은 낯설지 않았다.


 설핏 손끝이 닿았을 때 느꼈던 그 강렬함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매점의 50대 여성은 티브이에서 시선을 두었다가 마동에게 시선을 돌렸다. 마동과 티브이를 번갈아가며 쳐다보았다. 하지만 마동에게서 돈을 지불하고 매점에서 무엇인가 사 먹을 분위기가 없자 이내 흥미가 떨어졌는지 티브이화면에 시선을 고정했다. 마동은 남아있는 동전으로 운세 상자에서 운세가 담긴 종이를 뽑아냈다. 영화티켓 값을 치르고도 동전은 많았다. 종이를 계속 뽑았다. 이내 그 많던 주머니의 동전을 다 써버렸다. 금세 운세 상자는 묵직해졌다. 주머니 속의 동전이 운세 상자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렇게 이동을 했다. 매점의 여성은 오늘 운세 상자에서 종이를 갈아대느라 기분이 좋을지도 모른다. 15분이 지나고 영화가 끝나는 소리가 들렸다. 영화가 끝났다고 해서 유니폼을 입은 직원이 문을 열어준다거나 청소부가 들어와서 청소를 하는 일은 없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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