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관 Jun 17. 2024

어제의 하늘보다 오늘의 하늘이 9

251


251.


 마동은 문을 열고 극장 안으로 들어갔다. 문은 힘을 줘야 했으며 문이 열리면서 끄응하는, 노인이 겨우 일어날 때 내는 소리를 냈다. 마동은 잘 느끼지 못했지만 극장은 그렇게 시원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상영관의 복도 쪽 제일 마지막 줄에 고장 난 로봇처럼 고개가 뒤로 꺾여 잠을 자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30대인지 20대인지 분간할 수 없는 남자의 얼굴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어서 일단 죽어있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실내가 덥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마 세계가 끝나는 날이 내일이라 할지라도 남자는 동시상영관에서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잠을 청할 것이다. 끝나는 세계를 맞이하는 방법 중에 괜찮은 방법이었다. 어둡고 더운 곳이 좀 더 어두워지고 뜨겁게 되는 것이 세계가 끝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남자는 매우 불편한 자세로 아기처럼 편안하게 잠이 들어 있었다. 그것이 남자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양식이었다. 마동은 적당한 자리에 가서 앉았다. 오래된 극장이라 앉는 의자도 고대유물처럼 오래되었다. 앉았다가 일어나면 등받이는 자동으로 접히는 의자였다. 그나마 몇 개만 제대로 접이식 의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대부분 의자는 스프링이 고장 나서 접히지 않는 상태였다. 러닝타임이 긴 영화는 보는데 인내와 체력을 요구하는 것이 바로 이렇게 유적지에서나 볼 법한 극장의자였다. 마동은 태어나기 전이지만 벤허 같은 대작을 상영할 때는 중간에 브레이크 타임이 있어서 관객들이 화장실에 갔다 오도록 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빵과 우유도 나누어 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감성적이었구나. 예전에는.


 자본에 구애받지 않고 긴 영화를 끊어서라도 관객들에게 올바르게 전달하려고 했다. 감독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영화는 요즘 같은 세상에는 대형 상영관에 걸리지 못했다. 2시간이 넘어가면 조조영화나 심야로 쫓겨 가야 했고 그나마 며칠 만에 사라지게 되었다. 예전에는 영화 한 편을 보러 와서 피크닉의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다. 마동이 앉아있는 의자 밑 상영관 바닥은 청소를 안 한지 일 년은 넘어 보였다. 처음 가본 콩고의 늪지대를 발로 밟는 기분이었다. 발바닥이 바닥에 쩍쩍 달라붙었다. 힘없이 발을 들어 올리면 신발은 바닥에 붙은 채 발만 빠져나올 것 같았다. 발바닥을 바닥에서 땔 때마다 바닥은 마동에게 떨어지지 말라며 신발바닥을 끌어당겼다.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잡아당긴다는 관념은 필연성을 가장한 우연일까.


 마동은 우연히 이 극장에 들어온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처음 타는 버스에 올라 처음 와보는 바다 근처 마을의 처음 보는 건물 안의 작은 동시상영 극장에 온 것이다.


 그런데 마치 들어와야 하는 것처럼 필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그것은 잘못된 착각일까.


 영화는 두 편 동시상영이다. 그렇다고 요즘의 스마트 티브이처럼 화면을 반으로 분할해서 두 편을 동시에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마동이 들어가기 전에 끝난 영화는 남녀가 육체를 탐닉하는, 제목도 알 수 없는 오래된 영화였다. 내용은 없다. 그저 만나면 장소를 가리지 않고 동물적 본능으로 봉크를 하는 영화였고 지금 하는 또 하나는 조정경기에 관한 영화였다. 이 두 영화가 어떤 연관관계를 지니고 동시 상영되는지 모르겠지만 세상에 수많은 조합이 있겠지만 이렇게 어울리지 않는 조합도 없을 것이다. 무굴제국의 왕이 치타를 가축으로 삼고 싶어서 800마리나 길렀다는 글을 어디에서 읽었는데 그것보다 더 어울리지 않았다.


 어찌 되었던 한 편이 끝이 났고 이제 조정경기에 관한 영화가 시작하려고 했다. 스크린에 한글로 번역된 제목은‘푸르른 날들’이었다. 영화는 뉴스라든가 예고편 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래도 예고편을 보는 재미가 있었는데. 상영관의 불이 꺼지고 비가 내리는 스크래치 가득한 화면은 켜지자마자 망설임 없이 영화가 시작되었다. 뒷자리에서 잠을 자고 있는 남자를 제외하고는 관객은 마동뿐이었다. 그 어떤 이도 이런 재미도 없고 내용도 알 수 없는 영화를 보러 극장에 돈을 지불하지는 않는다. 따분한 영화가 따분한 여름의 평일에 따분하게 흘러가며 시간을 잠식해 갔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 썩 나쁘지는 않았다.


 영국의 템스 강에서 조정경기 연습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곳이 진정 템스 강인지 알 수는 없었다. 영화를 영국에서조차 촬영했는지 그것 역시 알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영화는 나라를 구하는 영웅처럼 진지했다. 재미가 떨어지는 영화는 대부분 심각하고 육중했다. 템스 강처럼 보이지 않는 템스 강에서 조정경기를 연습하는 주인공들은 ‘호흡’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다. 조정경기는 한 팀을 꾸린 팀원들에게는 누구 하나가 힘이 좋아도 안 되며 어떤 한 사람이 먼저 지쳐도 안 되는 것이다. 영화 속의 주인공들은 호흡을 거듭 강조하며 자신들의 라이벌을 뛰어넘기 위해 연습을 하고 좌절하는 과정을 영화는 그리고 있는 것 같았다.


 단지 영화는 기승전결의 구도가 확실하지 않고 치고 올라오는 격정적인 부분도 없었다. 주인공들의 연기는 엉망이었고 근육이 좋은 남자 7명이 나와서 조정경기 연습을 하는 장면만 영화는 계속 보여주었다. 그런 내용이 50분을 지나서 한 시간을 넘어서고 있었다.


 도대체 이런 영화는 어떻게 알고 수입을 해왔을까.


[계속]

이전 13화 어제의 하늘보다 오늘의 하늘이 9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