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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n 18. 2024

어제의 하늘보다 오늘의 하늘이 9

252


252.


  수입해 오는 업자의 머리를 들여다보고 싶었다. 육체만을 탐닉하는 영화 두 편을 보여준다면 관객이 세 명은 되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곳 나름대로의 규칙이라는 게 있다. 마동은 이곳 상영관이 이루고 있는 세계와 규칙에 대해서 관여할 수도 없고 관여할 마음도 없었다. 영화는 재미라는 부분을 빼고 본다면 볼만했다. 그리고 마동은 이 오래된 극장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신발이 바닥에 붙었다가 떨어지는 소리가 듣고 싶었다. 자주 자세를 바꾸었다. 영화는 조정경기의 문외한이 보더라도 조정경기규칙에 대해서 알 수 있을 정도로 조정경기의 규칙에 대해서 설명해 놓은 다큐멘터리 같았다. 영화 속 주인공 중 누군가가 큰소리로 외쳤다.


 “2킬로미터 전력으로 노를 저어 가는 우리는 한 번 레이스로 1.5킬로그램의 체중이 줄어든다고 할 정도야. 마라톤에 버금갈 만큼 힘든 운동을 우리는 하고 있어. 우리는 호흡을 맞춰야 해! 콕스에 빠져있을 시간이 없어. 정 그렇다면 우린 콕스를 체인지할 수밖에 없어.”


 영화는 1시간 30분이 넘어가지만 콕스가 나오지는 않았다. 아마 콕스를 부리는데 자본이 더 들어가는 모양이었다. 영화 속 주인공들 말로는 콕스는 여자인데 저들 중 하나가 콕스에게 사랑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도 그랬다. 그런 영화였다.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그들의 청춘이야기가 조정경기에 초점이 맞추어진 내용에 양념으로 버무려진 영화였다. 영화는 1시간 50분 상영하는데 중요한 콕스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었다. 저들은 시시때때로 부딪혔다. 서로에게 욕을 하며 멱살을 잡기도 했다. 싸움의 원인은 콕스였다. 두 명을 제외하고 또 다른 이가 콕스에게 빠졌음을 고백했다.


 콕스는 나오지 않았다.


 영화는 말미로 접어들었다. 지루한 영화가 지루한 극장에서 지루하게 종말을 맞이하려고 했다. 결국 그들은 콕스에 대한 사랑에 잠시 휴정을 하고 조정경기에 집중하기로 합의를 봤다. 그들의 표정에 결의가 굳어졌다.

 

 맙소사. 감독은 왜 갑자기 뚝 끊기게 영화를 마무리 지으려 하는가. 원래부터 이렇게 생겨먹은 영화겠지. 그것대로 받아들이면 볼만했어.


 아마도 자본의 문제였을 것이다. 영화는 끝 장면으로 가고 있었고 그들은 본격적으로 조정에 올라타서 연습을 했다. 카메라는 조정경기 연습을 하는 그들에게 좀 인 되어갔다. 그들의 얼굴이 보이는 화면 속에 드디어 콕스가 등장했다. 등을 보이는 콕스의 뒷모습이 나타났다.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마지막 콕스의 모습이 궁금해서라도 끝까지 앉아 있었을 것이다. 화제의 중심인 콕스가 등장했지만 뒷모습뿐이었고 영화가 끝날 마지막에 등장했다. 그녀는 머리가 긴 여성이었다. 뒷모습이 꽤 매력적이었다. 흔하지 않은 매력을 지니고 있는 뒷모습이었다. 콕스의 뒷모습만 보아도 그들이 빠져들 만했다.


 영화는 이내 엔딩곡이 흘러나오며 카메라는 그들 주위를 한 바퀴 천천히 돌고 있다. 영화는 끝나가고 있었다. 그들은 물살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카메라는 콕스의 등을 기점으로 좌측으로 서서히 움직였다. 강 위를 바람처럼 가르는 조정은 앞으로 세차게 나아갔다. 이 장면을 어떻게 촬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이 마지막 롱 테이크 한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1시간 40분 동안의 시간을 소모해 버린 느낌이 들었다. 카메라는 서서히 돌아서 그들의 모습이 45도로 틀어졌다. 콕스의 옆모습이 보이고 카메라는 주인공들의 옆모습을 지나치면서 서서히 콕스의 얼굴이 나타났다.


 얼굴이 조금씩 드러날 때 마동은 의자 등받이에서 등을 떼었다. 의자의 등받이는 비명을 질렀다. 너무 급하게 의자에서 등을 떼느라 끼익 하는 소리가 크게 나서 잠을 자고 있던 청년이 잡음 같은 소리를 내며 잠시 자세를 바꾸었다. 마동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콕스의 모습은 분명 사라 발렌샤 얀시엔이었다. 그녀를 닮은 배우가 아니었다. 영화 속의 콕스로 나온 여자는 확실하게 사라 발렌샤 얀시엔, 그녀였다. 그래, 우디 알렌과 같이 작업을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영화 속에서도 깊고 닿을 수 없는 눈빛으로 앞을 응시했다. 카메라가 조정경기 선수들의 뒷모습을 비추고 콕스,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앞모습을 정면으로 잡고 서서히 줌 인 하여 사라 발렌샤 얀시엔 쪽으로 다가갔다. 그녀는 카메라에 아이컨텍을 했다. 카메라를 통해서 마동의 눈을 응시하고 있었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눈은 정확하게 화면을 뚫고 마동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깊이를 알 수 없고 무수히 많은 세계를 가진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눈빛은 마동을 향해 여러 감정을 담아서 화면 안에서 화면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마동은 확신했다. 극장으로 온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세상의 모든 일이 우연의 산물이라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은 우측으로 영화 스텝의 자막이 올라가는 가운데 깊이를 알 수 없는 눈으로 끝까지 마동을 쳐다보고 있었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은 어떻게 저 속에 있을까. 아니다 그건 중요하지 않다.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것일까.


 잊고 있었던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얼굴을 보니 마동은 몸이 뜨거웠다. 화상을 입은 사람처럼 화끈거렸다. 비로소 극장 안이 덥다는 것을 느꼈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가슴골이 다시 보고 싶어졌다. 화면 가득 잡힌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얼굴은 어느새 는개의 얼굴로 바뀌었다.


 마동은 몸이 뜨거워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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