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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n 20. 2024

어제의 하늘보다 오늘의 하늘이 10

254


254.


 는개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녀가 앉아있는 테이블로 가서 맞은편에 앉았다. 그제야 는개가 고개를 들었다. 얼굴에서 시작되는 목선이 위태롭게 보였다. 어쩐지 수척해진 느낌이었다. 더불어 는개의 모습에서는 사라 발렌샤 얀시엔에게서 보였던 견고한 관능이 감지되었다.


 “얼굴이 좋아 보여요. 전 당신 얼굴이 꽤 망가져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아서 실망했다는 말이군.”


 는개는 마동의 말에 그렇다는 듯 미소를 보였다.


 “어째서 나보다 얼굴이 더 괜찮아 보이죠? 심하게 아픈 사람이?”


 “방금 샤워를 하고 나왔거든.”


 마동의 말에 는개는 재미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대형출판사에서 나온 안톤 체호프의 단편집을 읽고 있었다. 마동에게는 다른 출판사의 같은 제목의 문고본이 있었다.


 꽤 오래된 책이지만.


 마동은 커피를 받아서 왔다. 여름에도 뜨거운 커피만 고집하는 마동이었다. 이유는 없다. 하지만 지금은 무엇을 마시던 그 맛에 대해서 더 이상 그대로 다가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는개 역시 뜨거운 커피를 마셨던 모양이었다. 커피 잔과 식어버린 커피가 증명해주고 있었다.


 “저 당신이 읽고 있는 걸 언젠가 본 적이 있어서 구입해서 읽고 있어요. 우습죠? 당신이 읽는 책과 같은 책을 구입하려고 했지만 절판되었더군요.” 는개는 책을 들어 보이며 여트막한 미소를 보였다. 책을 집어든 손가락이 가늘어서 빨리 밥을 달라고 하는 듯했다.


 마동은 거짓말 마, 하는 표정을 지었고 는개는 재미있어하는 표정을 지었다. 는개는 의자에 앉아있어도 몸매가 드러났다. 하얀색 블라우스가 타이트하게 상체를 조여 주었다. 그녀는 몸매관리를 꾸준하게 해서 그런지 군살이 없었다. 는개는 대학교초년시절부터 운동을 해왔다고 했다. 그녀는 회사에서 입고 있는 여름정장차림 그대로 왔다. 치마도 타이트했고 그 타이트함으로 다리가 아찔하게 드러났다. 발찌를 차고 있는 얇은 발목은 같은 여성들의 시선을 발목으로 집중시켰다. 는개는 어떤 옷을 입어도 옷이 그녀의 몸에 달라붙었다. 그러한 그녀가 한 손에 책을 들고 마동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구입한 안톤 체호프의 문고본은 오래된 책이니까. 시대는 앞으로 나아가고 모든 것은 거기에 맞춰가는 것이거든.”


 마동은 머피 잔을 두 손으로 감싸고 있었지만 마시지는 않았다. 그런 마동의 손을 는개는 잠시 쳐다보았다.


 “참 재미없어, 당신.” 그녀는 안톤 체호프의 단편집을 덮고 마동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갓 만들어진 젤리처럼 호기심 많은 눈동자가 눈앞에 있었다. 는개의 블라우스 사이로 그녀의 가슴골이 드러났다. 마동은 의자에 등을 기대며 는개의 눈동자를 다시 보았다. 는개의 눈동자는 방금 전과는 다르게 배가 고프다고 분명하게 말을 하고 있었다.


 맙소사.


 “밥을 먹으러 가지. 배가 고플 텐데. 맛있는 걸 먹고 기운을 내야지?라고 마동은 말했다.


 “그 말은 제가 해야 하는 말인데 순서가 바뀐 거 같아요. 사실 당신의 얼굴을 보니 그 말이 필요 없는 거 같긴 해요. 정말 수상한 사람이야.” 는개는 정말 이상한 사람을 쳐다보는 듯 바라봤다.


 “배가 고플 땐 무엇이든 맛있죠. 하지만 아무거나 먹기는 싫어요. 이상하죠.” 는개가 커피 잔을 만지며 말했다.


 “인간이니까 자기만의 관념에서 벗어나면 큰일 나는 줄 알거든.”


 “재미없어.”


 는개는 책을 테이블 바닥에 놓고 이리저리 돌렸다. 마치 5살 아이 같았다. 마동은 그 모습을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커피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역시 마동은 커피의 맛을 느끼지 못했다. 케냐 AA가 지니는 강렬한 향은 그대로였지만 풍부하면서도 무겁지 않은 케냐만의 독특한 맛은 느껴지지 않았다. 전혀. 커피의 문제가 아니었다.


 “안톤 체호프의 단편 중에서 어떤 글이 좋았어요?” 는개는 마동의 눈 가까이 다가온 후 말을 했다. 는개만의 채취가 집중되었다. 맨살에서 느껴지는 안온감과 달콤함이 전해졌고 그 사이에 질 좋은 향수의 향도 섞여 있었다. 는개의 눈 화장은 엷은데도 화장을 진하게 한 것만큼 신비로웠다.


 “글쎄, 다 괜찮은 거 같은데 다 괜찮다고 하면 그런 대답을 원했던 건 아니라고 할 테지."


 는개가 마동을 미소 띤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중에 ‘드라마’가 있는데 공감이 갔어.”


 는개는 ‘드라마’라는 단편이 무슨 내용인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음, 그럼 자신만의 세계에 침범하는 이들에게는 그에 응당한 처벌을 내리는 축에 속하시겠네요?”


 “반드시 그렇다고 하는 건 아니야. 그것은 그저 글이니까. 그 당시에 그렇게 인간의 마음을 잘 파헤쳐 글을 적었다는 생각에 놀라웠어. 체호프가 글을 쓰기 이전의 단편들은 좀 뭐랄까, 민담이나 우화적이고 손을 뻗어도 닿지 못할 것들에 대한 이야기라면, 체호프의 단편은 주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적었으니까. 드라마 같은 이야기는 현세에도 많이 일어나고 있으니까 뉴스를 봐도 온통 드라마 같은 이야기밖에 없잖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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