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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n 21. 2024

하루키 오마주 소설 2 -7

제목미정

2-7


https://brunch.co.kr/@drillmasteer/3996


그럼 앞으로도 여기에 머물러 있을 거야? 나는 쥐에게 물었다.


될 수 있으면 고독의 마을로 가려고 하네. 그렇지만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몰라. 그때까지는 이곳에 머물러 있을 거야. 가끔 시나가와 원숭이와 마주치지. 그는 꽤 나이가 들었지만 날렵해. 그리고 내가 맥주를 사줄 때가 있어. 그러면 시나가와 원숭이는 아주 흡족한 얼굴로 맥주를 마시지. 우리는 테이블에 앉아 끝없이 땅콩을 까먹으며 맥주를 마시는 거야.


좋았겠군.


과거로의 회귀지. 과정이 쉬운 것만은 아니야. 신경이 곤두서고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오갔지. 그러나 그것들은 결국 온갖 모양으로 변형된 한 가지 생각에 지나지 않는 것과 비슷해.


만나서 반가웠네.


양사나이를 만나면 안부를 전해주지.라고 나는 쥐에게 말했다.


아니네, 근래에는 만나게 될 거야. 두 개의 달이 뜨면 양사나이는 이곳으로 오니까. 아마 밖에는 두 개의 달이 떠 있을 거야.


그래, 그럼 잘 있게.


천천히 걸어라, 물을 많이 마셔라.라고 쥐는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창 밖에서 어린아이가 하는 소리처럼 들렸다. 그리고 돌아서는데 엘리베이터가 있어야 할 자리에 그저 벽만이 있었다. 나는 팔을 뻗어 벽면을 더듬었다. 축축한 기운이 손바닥에 전해졌다. 축축함이 더 해지더니 벽면으로 나는 쑥 빨려 들어갔다. 벽면의 그 축축한 그것이 얼굴을 핥고 지나갈 때 오금이 저렸다. 축축한 벽은 나의 몸을 누르는 것 같았지만 무게감은 없었다. 그저 스펀지 사이에 끼인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좋다고 할 수는 없는 그런 느낌이었다.


나는 어쨌거나 그런 벽 사이를 통과하고 있는 중이다. 벽 사이는 생각보다 길었다. 어딘가에서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졸졸졸 하는 소리. 그러나 시골에서 개울물이 흐르는 소리 같은 건 아니었다. 하수구나 도심지의 구석 지하 어딘가의 물이 흐르는 소리 같았다. 신경을 긁는 물이 흐르는 소리 같았다. 하지만 그건 단지 소리가 그렇게 들리는 게 아니었다. 벽을 통과해서 빠져나오니 물이 바닥에 흐르고 있었다. 졸졸졸.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흘러간다. 물이 흐르는 곳으로 가면 세계의 끝일까. 뒤를 돌아봤지만 어둠뿐이었다. 돌아서 손을 뻗어 봐도 내가 나온 벽, 축축한 벽면뿐이었다. 할 수 없다. 물이 흐르는 곳으로 한 번 가보는 수밖에. 발을 천천히 움직였다. 나의 모든 감각을 귀로 집중 할 수밖에 없었다. 주위는 온통 어둡고 축축한 벽면이다.


축축함을 손바닥으로 느끼면서 천천히 물이 흐르는 곳으로 옮겨 갔다. 물소리는 조금씩 거세졌다.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콸콸콸 하는 소리로 바뀌었다. 나는 얼마나 걸었을까. 한 시간은 넘게 걸어 내려온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그저 나의 착각일지도 모른다. 세 시간을 걸었는지, 아니면 십 분을 걸었는지 지금은 감각이 온통 소리를 듣는 것에 집중이 되어서 알 수 없었다. 너무 어두워서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려했다.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었지만 휴대전화는 없었다. 마치 애초에 휴대전화가 없었던 것처럼.


나는 휴대전화를 놓고 다니지는 않는다. 카페 여주인에게 온 메시지를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 시나가와 원숭이의 숙소에 갈 때까지 폰이 있었다. 아마 그럴 것이다. 숙소에서 시나가와 원숭이와 맛있는 크라운 맥주를 몇 병정도 마시고 나왔다. 그리고 헤어졌다. 그리고 폰은 없다. 시나가와 원숭이가 폰을 들고 갔나. 들고 갔다면 나의 이름을 훔치려고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시나가와 원숭이는 여자들의 이름만 훔친다. 어쩌면 나를 세계의 끝에 있는 마을로 보내려고 그러는지도 모른다. 얼굴 없는 남자가 나의 얼굴을 가져가고, 시나가와 원숭이가 나의 이름을 들고 가 버리면 나는 그림자가 붙어 있더라도 나는 세계의 끝에 있는 마을에서 영영 나오지 못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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