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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n 28. 2024

어제의 하늘보다 오늘의 하늘이 10

262


262.


 “난 그저 놀고 싶어서 그럴 궁리만 했어. 현실은 아르바이트로 하루를 다 보내는 생활이었지만.” 마동은 당시를 떠올리려 하지 않았다.


 음식을 준비하는 소리가 소담스럽게 들렸다. 주방이 주방다워 보였다.


 “그런데 당신, 저를 본 적이 없어요?”


 는개의 말에 마동은 일순 경직되었다가 그녀를 한참 바라보았다.


 “우리가 같은 대학교를 다니지는 않았고…….”


 “전혀.”


 “는개가 내가 다니는 대학교에 잠시 다녔나?”


 “설마요.”


 마동은 잠시 생각을 했다. “어디서 마주쳤나?”


 그녀는 대답 없이 고개를 숙이고 진지한 얼굴로 들고 온 생선을 다듬기 시작했다.


 “물고기의 배를 가르고 회를 뜨는데 그렇게 많은 칼의 종류가 있는지 몰랐어요. 또 칼집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는 것도. 초벌로 포를 뜨는 칼이 따로 있어요. 뱃살부위의 뼈를 바르는 칼, 그리고 회를 뜨는 칼, 지느러미와 머리 손질하는 칼이 다 따로 있더라구요. 굉장하죠. 그리고 물고기의 종류에 따라 순차적으로 칼을 사용해서 회를 뜨는 거예요. 어쩐지 회를 뜬다고 하니 겁이 나죠?”


 는개는 혼자서 웃었다. 목소리가 커졌다 작아졌다 하면서 신나 보였다. 한 손에는 칼을 들고서.


 마동도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흥미롭다고 느껴지기 시작했다.


 “칼은 새것보다 잘 갈고 오랫동안 쓰던 칼이 좋은 건데 오늘은 어쩔 수 없죠. 이제 이 칼이 시간이 지나서 더 좋은 칼이 되길 바랄 뿐이죠.”


 마동은 는개가 들고 있는 그 칼이 다시 쓰이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진심이었다. 는개는 세 자루의 칼로 약한 비늘을 끌러 내기 시작하더니 직각으로 칼을 내리쳐 생선의 대가리를 잘라 냈다. 눈꺼풀이 없는 쥐돔은 눈도 감지 못하고 머리가 몸에서 분리가 되어서 떨어져 나갔다. 마동은 멍멍하게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초현실화가의 그림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림 속의 뒤죽박죽 계단에 서 있는데 어느 순간 보면 나는 뒤집혀 있다. 뒤집어졌다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에 나는 다시 계단의 이상한 지점에 서 있었다.

 나는 왜 여기 서 있지? 어떻게 된 일이지?

 그곳에 있다는 것은 이미 그곳에 없다는 거예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곳에서 빠져나가고 싶은데.

 그곳에 있다는 것은 죽음이에요. 죽고 싶다고 하는 말은 진짜 죽고 싶어서 하는 말이 아니에요. 단지 그 모습으로 살기 싫을 뿐인걸요. 당신이 그곳에 있다는 것은 그곳에 없다는 거예요.     


 쥐돔의 잘려나간 대가리를 보고 있으니 어딘가로 떨어지는 마음이 깊어졌다. 마동은 언젠가 아주 어릴 때 어딘지도 모를 방파제에서 참치인간을 만난 적이 있었다. 참치인간은 비늘로 뒤덮인 거대한 물고기로 사람처럼 방파제에 서 있었다. 마동은 그것이 인형이라고 생각했지만 참치인간은 천천히 방파제를 돌아다니며 움직이고 있었다. 마동은 참치인간을 본 사실을 아이들과 부모님에게 이야기했지만 아무도 그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참치인간은 당시에 마동의 키보다 조금 작았으며 눈꺼풀이 없어서 눈을 감지 못한다고 마동에게 말했다.


 그래, 우리는 대화를 했다.


 참치인간을 만났을 때 시간의 흐름이 뒤죽박죽이 되었다. 마동에게 배신을 당했다고 생각한 고약한 누군가가 긴 줄의 시간의 매듭을 지어서 짧게 만들어 버리거나 혹은 긴 줄을 잘라버리고 그것을 다시 서로 묶어 버렸다. 참치인간은 방파제에 서서 바다의 냄새에 이물감이 섞인 냄새가 난다고 했다. 세계는 이미 오래전부터 확대되지 못하고 축소되고 축소되고 있었다. 축소되고 반으로 나뉘고 축소되고 또 축소되고. 참치인간은 시간의 퇴보 속에서 영겁의 세월을 거슬러 지내왔다.


 참치인간은 방파제에 서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바다는 바다로서 운명체가 존재하지만 바다로 흘러들어오는 무섭고 거센 강물도 바다 앞에서 고요해지고 초라해지는 거야. 바다는 그런 존재지’


 참치인간은 마동에게 그렇게 말했다. 어린 마동은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100년 전에도 그리고 100년 후에도 흐름이라는 것을 거슬러 갈 수는 없어. 시간의 흐름도, 물의 흐름도, 구름의 흐름도 바꿀 수는 없어. 그 어떤 흐름도 바꿀 수는 없지’ 참치인간이 말했다. 그리고 참치인간은 마동에게 다시 만나자,라는 말을 남기고 바다로 들어가 버렸다. 세상은 사람들이 모르는 바다가 있고 그 속에는 사람들이 모르는 참치가 살고 있다가 잠시 사람들을 구경하러 올라온다. 그 후로는 참치인간을 만난 적은 없었다. 사람들은 마동의 이야기를 믿어주지 않았고 마동은 멀리 떨어져 있는 바닷가에도 잘 나갈 수 없었다. 마동도 참치인간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고 참치인간은 점차 잊혀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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