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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n 30. 2024

어제의 하늘보다 오늘의 하늘이 10

264


264.


 불운한 냄새를 풍기는 쥐돔은 싱싱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쥐돔이 분리가 되어 가는 모습을 보면서, 는개의 손끝에서 나오는 슬픈 분위기를 느끼면서 마동의 머릿속은 설명할 수 없는 여러 가지 감정이 응축되어서 암울한 덩어리로 쑥쑥 불거져 나왔다. 암울한 덩어리는 ‘증오’로 둘러싸여 있었다. 증오로 가득 찬 덩어리가 마동의 몸속 내장을 천천히 꾹 누르며 괴롭혔다. 마동의 뇌를 통해 증오의 덩어리가 썩어가는 지독한 냄새가 났다. 쥐돔과 아홉동가리가 칼질에 의해서 분리될수록 오래전 대기에 흩뿌려졌던 피 비린내가 거실과 주방에 확 퍼졌다. 마동은 머리를 더욱 세차게 흔들었다.


 “이젠 갈빗대를 제거하구요. 오랜만에 해보는 거라 살이 많이 떨어져 나가네요. 이제 껍질을 벗겨내야 해요. 등살과 뱃살을 분리하지 않고 그냥 통째로 벗겨 낼 거예요. 꼬리 쪽 살을 아주 살짝 잘라 칼이 들어가게 하는 걸 보여드릴게요. 자 이렇게, 그런 다음에 껍질을 벗겨내는 거예요.”


 마동은 이제 는개의 말이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그녀가 하는 말은 마동의 앞까지 와서 믹서에 갈린 채소처럼 와그작 갈려버렸다.


 “나 잠깐 화장실에 갔다 올게.” 마동은 빠르게 일어나서 욕실로 갔다.


 거울로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거울 속에는 날조된 얼굴이 있었다. 얼굴의 군데군데 실핏줄이 파랗게 올라와 있었고 눈동자가 오드아이처럼 왼쪽 동공과 오른쪽 동공이 겁이 날 만큼 달랐다. 거울의 상 그 안쪽에 있는 마동은 환멸에 찌들어 있었다. 어디서부터 시작된 환멸인지 어디에서 온 환멸인지 몰라도 단작스럽기만 했다. 그저 권태 속에서 깨어난 밑바닥의 환멸은 아니었다. 증오가 쌓이고 쌓여 거세고 드센 암흑의 흐름과 물살을 가르고 가열차게 올라온, 몹시도 다라운 환멸이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느껴왔던 환멸이 아니었다. 권태이면에 붙어있던 증오의 군락이 모여서 형성된 것들이었다. 마동의 마음속에서 기생하던 이드가 만들어낸 환멸이었다. 그것은 고독하고 손바닥도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두운 암흑 속에서 빠져나오려고 소리치며 몸부림쳤다. 환멸은 끈적이는 액을 뿜어내는 괄태충의 모양으로 암흑 속에서 오싹한 신음을 토하며 나오려 했다.


 거울의 저쪽에 환멸이 있었다.


 환멸의 형상은 거울 속에서 마동을 지나치게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거울의 저쪽에서 나오려고 응고된 환멸이 오싹한 소리를 뿜어내려 하고 있었다. 오싹한 소리는 어디선가 들어본 소리였다. 허기를 부추기고 어둠의 빵을 먹기를 바랐던 그 소리였다. 마동은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제어하고 방어막을 치고 싶었지만 방법을 알지 못했다.


 거울을 깨트릴까.


 하지만 거울이 깨진다고 해서 영영 갇혀있게 된다는 생각은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고개를 숙이고 수도꼭지의 물을 틀었다. 손을 씻고 얼굴을 씻었다. 손은 더 이상 깨끗해질 수 없을 정도로 씻었다. 손을 씻고 얼굴을 씻었다. 손바닥에 물을 받아 물이 다 빠져나가고 손바닥에 남은 물기로 얼굴을 이해되지 못할 만큼 세게 문질러 씻었다. 마치 얼굴의 피부를 한 꺼풀 말아서 벗겨내듯 문질렀다. 머리가 진동할 만큼 짜릿한 피비린내가 났다. 얼굴을 씻어낸 물에서 오래전 잊고 싶었던, 잊어야 했던, 하지만 잊을 수 없었던 피의 냄새가 나기 시작하더니 욕실에 퍼지기 시작했다.


 “빨리 나오세요. 회가 다 되어가요.” 는개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동은 세수를 하고 나간다고 말하고 수도꼭지의 물을 더 세게 틀었다. 쏴아, 4분 정도 있다가 욕실에서 조심스럽게 마동은 나왔다. 는개가 거실에서 마동의 옷가지를 들고 욕실로 들어가려고 했다. 마동은 그녀에게 욕실에 피비린내가 난다는 것을 설명하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피비린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것보다 피비린내가 무엇인지 설명하는 것이 힘들었다.


 “저도 샤워를 좀 해야겠어요. 몸에서 생선비린내가 많이 나서 안 되겠어요. 저 당신 옷장에서 티셔츠와 반바지를 꺼냈어요. 괜찮죠?” 밝은 목소리만 거실에 두고 몸은 이미 욕실에 있었다.


 흠.


 거울 이면의 환멸덩어리는 그녀를 괴롭히지는 않겠지.


 마동을 괴롭히던 자신 속에 갇혀있던 환멸이 는개에게도 나타날 것 같아서 걱정이 몸을 타고 올라와 뒷목을 건드렸다. 마동은 욕실 문 앞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서성거렸다.


 거울 속에 비쳤던 그 모습은 악일까. 나의 내면 속에 선은 무엇이고 선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선과 악의 구분은 어디에서 결정짓는 것일까. 강도에게 들린 가위와 의사에게 들린 가위는 용도가 다르다. 하지만 강도가 든 가위로 사람을 구했다면? 의사의 손에 들린 가위로 환자가 죽었다면? 도대체 선과 악의 정의는 무엇이란 말인가.      


 식탁 위에는 일식레스토랑의 테이블과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마동은 이 집에 이사 오고 난 후 테이블이 꽉 차게 음식이 차려진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테이블은 풍성했고 접시 위의 여백은 살아있었다. 쓸쓸하게 보이는 테이블은 매일매일 고요하게 마동을 맞이했다가 어딘가에 버려질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의 만찬으로 마동은 테이블에게 미안한 마음이 덜했고 테이블은 제 역할을 했다. 테이블은 이인용의 비교적 작은 테이블이었다. 마동은 이 테이블을 좋아했다. 책을 읽을 때에도 회사의 작업을 집에서 할 때에도 밥을 먹을 때에도 테이블에 앉아서 먹었다. 테이블은 시간이 흐르는 동안 오래된 책처럼 낡았다. 마동은 테이블에 테이블보를 깔지 않았다.


 가구거리의 가구점을 다 뒤져 마음에 드는 식탁을 발견했다. 개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식탁이었다. 게다가 처음부터 낡았다. 하지만 식탁은 생생했고 나무향이 그대로 났으며 목수의 기교가 드러나지 않아서 더 멋을 가지고 있는 식탁이었다. 어떠한 무늬도 들어가지 않고 다리 네 개만 딱 붙어있는 그런 식탁이었다. 나무를 깎아 만들어서 접합이 최소한 줄어든 식탁용 테이블이었다. 마동은 이 식탁에서 많은 것을 했다. 어딘지 모르게 맹점에서 벗어난 테이블이었고 이 식탁에 앉아 있으면 현실에서 조금 벗어난 기분도 들었다.


 식탁에서 식사를 한 건 다른 집의 식탁에 비해 적었지만 티브이가 없는 마동은 집에 오면 거실의 소파보다 식탁에 앉아있기를 좋아했다. 평소의 식탁은 낡았고 힘들어 보였지만 오늘 보이는 식탁은 꽤 행복하게 보였다. 식탁은 인간의 근본적인 욕구를 채워주면 그만이었다. 식탁은 식탁이 가지는 본질에서 벗어나 물건이 쌓여가고 그럴수록 조화는 깨지기 십상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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