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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l 02. 2024

어제의 하늘보다 오늘의 하늘이 10

266


266.


 “주방을 보니 집에서 밥을 잘 챙겨 드시는가 봐요. 요리해 먹는 걸 좋아하는 모양이에요.”


 “요리라고 하기에는 문제가 있지. 집에서 해 먹을 수 있는 건 한정되어 있고 그 한정성 안에서 해결을 하는 거야. 실제로 저녁만 집에서 먹을 뿐이지. 저녁이라도 챙겨 먹자고 하게 된 거지. 아침엔 매일 가는 던킨도넛에서 커피와 도넛을 먹거나 샌드위치전문점에서 세트메뉴를 먹고 출근해.”


 “그렇군요. 그런데 어쩐지 주방의 식품들이 삼 일 전부터 딱 멈춰! 그런 느낌인걸요.”


 “바로 그래. 감기가 독해서 삼 일 전부터 챙겨 먹지 못하고 있었어.”


 그녀는 웃으며 양손으로 자신의 작품을 내 보이며 이제 먹자고 했다. 는개의 가늘고 긴 손가락이 얇고 긴 싸구려 와인 잔을 움켜쥐었다. 그녀의 손에 닿은 싸구려 와인 잔은 더 이상 싸구려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쥐돔을 가리키며 마동에게 먹어보라고 권했다. 마동은 56가지의 걱정이 한꺼번에 몰려와서 여기저기를 쑤셨다. 그래도 쥐돔을 젓가락으로 집어서 한입 먹었다. 쥐돔은 기름기가 잔뜩 배어 있었다. 물고기에도 기름이 이렇게나 가득 들어차있다는 것을 마동은 처음 알았다. 마동의 걱정과는 달리 쥐돔의 회가 목구멍으로 넘어가는데 거부반응이 없었다. 부담감도 덜했다. 기이한 일이었다. 그녀는 회를 간장에 살짝 찍어서 작은 입으로 가져가서 야무지게 씹어 먹었다.


 “여기 이거 아홉 동가리도 먹어봐요. 씹는 맛이 제대로 날 거예요.”


 그녀가 그렇다면 그럴 것이다. 마동은 여자와 남자의 차이를 조금 알 것 같았다. 앞으로 더 알고 싶은 부분이었다. 예전에 미처 몰랐던 것들에 대해서.


 는개는 마동에게 자신의 와인 잔을 내밀었다. 마동은 그녀의 와인 잔에 자신의 와인 잔을 부딪혔다. 어떠한 의식 같았다. 아스카문명의 왕족들이 왕족의 시체 앞에서 행하는 의식처럼 경건하게 두 사람은 와인 잔을 부딪쳤다. 청아하지 않는 소리가 땡 하며 들렸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저 지금 굉장히 행복한 거 알아요?”


 는개는 나 같은 인간과 같이 있는데 어째서 행복하다고 느낄까. 나와 함께 있던 사람들은 모두 사라졌는데.


 마동은 그 생각에 한숨이 깊어졌다.


 “바보같이 그런 표정은 짓지 말아요. 당신도 조금 웃어봐요. 회식자리에서도 사무실에서도 도통 웃는 모습을 볼 수 없으니까요.”


 “억지로 하면 더 이상하게만 보여. 안 되는 것도 있는 법이야.” 마동은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흥, 하는 소리가 맞은편에서 들렸다.


 “이건 성격이나 천성의 문제가 아니야. 스타일의 문제라구.”


 “스타일이요?”


 “그래, 스타일의 문제지. 성격은 개조가 가능해. 모난 성격은 둥글게 변할 수 있고 이기적인 천성은 이타적으로 바뀔 수 있는데 스타일은 개조가 안 되는 거야.”


 “어째서죠?”


 “어째서일까. 스타일은 사람들에게 자주 내비치지 않으니까. 지적을 자주 받기도 힘들고, 넌 왜 안 그러다가 저 사람만 나타나면 그런 행동을 하더라, 같은 스타일이 나타나는 거야.”


 는개는 마동의 말을 듣고 조금 생각에 빠지는 거 같았다. 그리고 “엉터리”라고 말을 했다.


 “그런데 이건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말이지. 는개는 애인을 두고 왜 나처럼 재미없는 사람과 있으면서 행복해하는 거지?”


 “당신 정말 바보군요. 애인이 있다면 당신 집에 오지 않았겠죠. 그리고 보통 애인은 시간이 지날수록 여자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해요. 우연하게 이만큼의 행복을 안겨다 준 다음 점차적으로 조금씩 행복을 깎아 갈 뿐이죠.”


 “음.”


 “행복이라는 건 괴테 같은 거예요. 우리가 모르는 종류의 행복이 있어요. 전 그 행복을 찾은 거예요. 일반적인 행복에서 벗어난 행복 말이에요.”


 괴테 같은 행복.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행복이 있지만 행복은 대부분 엇비슷할 줄 알았다. 괴테 같은 행복이란 어떤 행복일까.


 는개는 진정 행복한 얼굴을 하고 와인 잔을 비웠다. 불이 자두 색으로 물들었다. 회식자리에서 술을 마시는 는개의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회식에서 그녀에게 날아오는 술잔은 정중하게 거절했고 사람들은 응당 받아들였다. 는개가 입은 마동의 티셔츠는 헐렁해서 브이네크라인으로 그녀의 가슴골이 드러났고 고개를 숙일 때마다 가슴의 언저리 부분이 보였다. 브래지어는 욕실에 두고 나온 모양이었다. 덜 마른 머리를 풀고 화장기 없는 얼굴은 볼수록 회사에서 봐온 박. 는. 개. 의 모습에서 벗어났다. 찬란한 웃음을 계속 보였고 그 사이사이에 잔존한 슬픔도 비쳤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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