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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l 01. 2024

어제의 하늘보다 오늘의 하늘이 10

265


265.


 식탁 위에는 그녀가 구입한 둥근 나무로 만들어진 도마형 접시 위에 동그랗게 포가 뜨인 회가 깔려있었다. 그 모습은 은행원이 지폐를 한 손에 들고 확 하며 동그랗게 펼친 모습과도 비슷했다. 얇게 썰린 다른 회가 모여 있고 그 주위에 꽃모양으로 데커레이션이 되어있는 또 다른 회가 보였다. 회는 접시의 빈 공간을 살아있게 만들어주었다. 전문가의 감탄을 넘어선 감동까지 자아내게 하는 솜씨였다. 가스레인지 위에는 뜨거운 물이 담긴 냄비가 보이고 냄비 안에는 잘라낸 물고기의 머리가 담겨 있었다.


 이건 분명히 매운탕을 하려는 것이다.


 욕실에서 샤워하는 소리가 줄어들었다.


 “당신, 거기 냄비에 고기들을 좀 꺼내놔요. 매운탕을 끓일 때 뜨거운 물에 살짝 데쳤다가 빼서 매운탕을 끓이면 비린내가 나지 않아요.” 는개는 욕실의 문을 살짝 열어서 촉촉한 물기를 모금은 채 무 한정성의 얼굴을 내밀었다. 그녀의 재능이 아깝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가 이곳에서 뭘 하고 있는 것인가.


 마동은 거실에 음악을 틀었다. 동시에 는개가 욕실의 문을 열고 나왔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한 덕에 수증기가 욕실 밖으로 빠져나오면서 는개의 달콤한 향도 같이 흘러나왔다. 피비린내는 없었다. 다행이었다. 맨하탄스의 ‘키스 엔 세이 굿 바이’가 흘렀다. 여름과 동떨어진 노래가 한 여름의 마동의 집 거실에 울려 퍼졌다. 그녀는 물기 가득한 머리로 노래가 좋은데요.라고 했고 마동은 그렇지?라고 눈인사로 답했다. 는개는 욕실에서 나오자마자 식탁으로 오더니 자신이 만들어 놓은 예술품에 대해서 차곡차곡 말을 늘어놓았다.


 “쥐돔은 기름이 많고 씹는 맛이 일품이라 굵게 썰어서 이렇게 뭉쳐줘야 맛이 나는 거예요. 이왕이면 꽃잎모양처럼, 이렇게요(접시를 가리키며), 아홉 동가리는 흰 살 생선이라 되도록 아주 얇게 썰어서 도마 위에 이렇게 손끝으로 착 펴서 깔아줘야 또 맛이 나는 거랍니다.”


 흠. 생선회의 세계는 심오했다.


 “쥐돔은 기름기가 많아서 싫어하는 이들은 싫어할 수도 있는데 모스카토 다스티와 곁들여 먹으면 꽤 맛이 좋을 거예요.”


 언제나 포니테일의 모습만 보여주던 그녀가 욕실에서 샤워를 하고 나와서 머리를 풀었다. 회사에서 늘 보던 인텔리전트 한 모습의 얼굴이 아니었다. 고개를 숙이고 회를 바라보며 회에 대해서 박학다식하게 이야기하는 그녀의 얼굴로 머리카락이 흘러 내려왔다. 하지만 그녀는 성가신 머리카락을 그대로 두었다. 그때 마동은 는개의 얼굴에서 애잔함을 발견했다. 곧 진지한 슬픔도 잔존해 있음을 보았다. 똑똑히 본 것이다. 얼굴이 완벽하게 드러나 있을 땐 몰랐던 모습이었다. 마동은 그녀의 슬픔을 하나하나 손으로 담아서 자신의 마음속에 집어넣었다.


 는개는 마동의 리바이스 하얀색 반팔 브이네이크라인 티셔츠를 입었고 반바지는 붉은색 아디다스 쇼트팬츠를 입었다. 쇼트팬츠는 주로 마동이 달리기를 할 때 입는 옷이었다. 여름에 긴 바지는 일 할 때만 입으면 된다는 주의를 가진 마동이었다. 일하는 시간 외에는 반바지나 짧은 팬츠타입이 좋았다.


 여름이니까.


 반팔 브이네크라인 티셔츠는 는개에게 헐렁했지만 그녀는 어떤 옷을 입어도 에디 세즈윅처럼 잘 어울리는 그런 타입이었다.


 “어째서 회사에서는 늘 머리를 묶고 다니는 거지? 이렇게 머리를 푸니까 분위기가 확 달라지는데 말이야.”


 “알아요, 머리를 풀어서 얼굴을 가리면 더 예쁘다는 걸.” 그녀는 소리를 내서 웃었다. 가지런한 치아가 보였다. 입가에 주름이 기분 좋았다.


 “누군가에게 얼굴을 보여줘야 했어요. 그 사람은 저를 못 알아보고 있었죠. 그래서 작정하고 얼굴을 드러내놓고 다니게 되었어요.”


 “회사에 그런 사람이 있단 말이야? 그 사람이 누구지? 궁금하군.”


 “글쎄요. 누구일까요.”


 마동은 눈동자를 위로 올려 누구일까 생각했다. 는개가 웃었다. 이 집에 들어오고 자주 웃었다. 회사에서 짓는 웃음과 질이 달랐다. 세련되진 않았지만 그래서 웃음이 더 값져 보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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