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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n 24. 2024

하루키 오마주 소설 2 -10

제목미정


2-10


https://brunch.co.kr/@drillmasteer/3996


눈을 뜬 지금 코 안이 바짝 말라있다. 여기까지 오는데 어둠의 냄새를 맡았다. 지독한 냄새였다. 그러나 물살에 휩쓸리고 뾰족한 돌기둥 같은 것에 허리가 찔리고 야미쿠로가 다가오는 것에 정신이 팔려 지독한 어둠의 냄새를 맡으면서도 정신을 바짝 차리느라 긴장하고 있었다. 지금 긴장이 풀리니 어둠의 냄새가 아직 코 안에 가득 머물러 있어서 더더욱 움직이는 게 힘들었다. 나는 손바닥의 냄새를 맡았다. 아직 미미하지만 기묘한 냄새가 났다. 나는 안도했다. 현실이라는 것이다. 허리의 고통도 실제이고 나는 아직 죽지 않았다. 그리고 이곳은 아직 세계의 끝에 있는 마을은 아닌 것 같았다. 그때 또각또각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 열리고 소녀가 들어왔다. 소녀는 통통했는데 분홍색 원피스 덕분에 야릇한 섹시함을 풍겼다. 소녀는 망설임 없이 나의 허리를 꿰맸는 모양이었다.


이런 건 언제 배웠어요?라고 나는 물었다. 밝은 곳에서 보니 처음 보는 소녀는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어디서 봤는지, 누군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응급처치는 그다지 어렵지 않아요, 이런 건 어릴 때 할아버지에게 다 배웠어요.


할아버지?


네, 할아버지는 의학부터 모르는 학문이 없어요. 모든 학문을 전부 마스터했지요. 그중 요즘은 골상학을 연구하고 있어요.


골상학? 할아버지? 그러고 보니 소녀는 어디선가 낯이 익은 얼굴이었다. 소녀는 나에게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이야기는 불국사 입구의 카페 여주인에게 듣던 이야기와 흡사했다. 그러고 보니, 그래 맞아,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이라고 생각했는데 소녀의 얼굴은 카페 여주인의 얼굴이었다. 맙소사.


우리가 어딘가에서 만난 적은 없죠?라고 나는 소녀에게 물었다. 내 말을 듣고 소녀는 나의 상처를 살피더니 나의 얼굴을 보았다. 정면으로 보는 소녀의 얼굴은 카페 여주인의 얼굴이었다. 어린 여주인의 얼굴이었다. 피부가 투명하고 깨끗했다.


네, 아저씨는 오늘 처음 봤어요. 그것도 죽을 뻔한 모습으로요. 상처를 잘 꿰맸으니 처음보다는 괜찮을 겁니다. 큰일 날 뻔했어요.


이곳은 어디입니까? 나는 소녀에게 물었다.


여기는 제가 사는 곳이자 할아버지의 연구실 같은 곳이에요.


그럼 할아버지도 여기에 오신단 말입니까?


네, 곧 오실 거예요.


할아버지는 어디에 계신데?


저도 잘 모르지만 대부분 땅 밑에 있어요.


땅 밑에? 거기서 할아버지는 뭘 하지?


할아버지는 요즘 골상학에 빠져 있어요. 오래된 동물의 머리뼈를 찾고 있지요. 그 머리뼈를 연구 중입니다.


박사는 말했다. 유아적 체험, 가정환경, 에고의 과잉된 객체화, 죄의식,,, 특히 자네에게는 극단적으로 자신의 껍질을 지키려는 성향이 있네.


나는 이 말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분명 어디선가 본 말이다. 그러나 어디에서 들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왜 기억이라는 것은 중요한 순간에 늘 떠오르지 않는 것일까.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은 잘 떠오르고 기억하고 싶은 기억은 어째서 바로바로 기억나지 않는 것일까.


[2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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