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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하늘보다 오늘의 하늘이 10

271

by 교관


271.


는개가 초등학교 6학년이 되고 여름을 지나서부터 는개에게 말을 하며 용돈을 쥐어주던 새아빠가 변했다. 는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하던 새아빠의 말이 사라졌다. 소변을 보는 것처럼 그저 문을 열고 들어와서 머리를 한없이 쓰다듬고 머리카락을 만지고 귀를 만졌다. 는개는 새아빠가 머리를 만지는 동안 여러 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빨리 중학생이 되어 초등학생에서 벗어나는 순간 집을 나가야겠다. 할머니를 찾아가서 이야기를 할까. 는개는 다른 방법을 떠올려봤지만 생각 속으로 철사가 촘촘히 박혀있는 검은 벌레가 나타나서 생각을 흩뜨렸다. 그 벌레가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갔다. 몸이 갑자기 떨리며 체온이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나무 뒤에 숨을 죽이고 쭈그리고 앉아 있으면 거대한 벌레가 녹색의 액을 흘리고 은밀한 소리를 내며 다가올 때의 공포가 새아빠의 손짓에 고스란히 있었다. 정신이 모호해지고 몸이 심하게 떨렸다. 오래된 엔진이 시동으로 요동을 치듯 몸이 떨려왔다.


는개는 정신이 가물가물해지는 것을 참아내기 위해 이를 꽉 깨물었다. 얼마나 세게 물었던지 어린 는개의 얼굴이 이상하게 일그러졌다. 양손을 무릎 위에 올리고 이를 꽉 깨물듯 주먹을 세게 꽉 쥐었다. 예쁘게 자란 손톱의 끝이 손바닥을 뚫었고 땀과 함께 피가 섞여 나왔다. 어린양을 잡아서 먹이를 가지고 노는 시뻘건 눈알의 육식동물처럼 새아빠의 손은 선을 넘지 않고 그 안에서 자신의 욕구를 채웠다. 그에 비해 는개의 의지는 너무나 약했고 미미했다. 는개의 힘은 철사가 박혀있는 의지 강한 벌레에 비해 바다에 떠 있는 줄 끊어진 작은 돛단배처럼 위태롭고 약하기만 했다.


는개는 이를 더욱 깨물었고 그 힘이 머리의 신경까지 전달될 때마다 얼굴은 극심하게 일그러졌다. 손톱은 손바닥의 상처를 더욱 드세게 짓눌렀다. 는개는 손바닥의 아픔은 느껴지지 않았다. 눈은 뜨고 있었지만 정신은 끈을 놓으려고 했다. 발바닥이 방바닥에 닿아있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고 몸이 차가워졌다가 뜨거워지는 반복의 주기가 빨라졌다. 하체가 뜨겁게 타오르는 것을 느끼며 는개는 그대로 의자 밑으로 쓰러졌다. 다리를 타고 내려온 피가 방바닥을 붉게 물들이니 새아빠가 놀라서 는개의 엄마의 불렀고 는개는 병원으로 옮겨졌다. 하혈은 심각해서 는개의 임신여부가 앞으로 불투명했고 는개의 엄마는 아이를 끌어안고 울부짖었다. 식은 강낭콩처럼 는개의 몸은 차가웠다. 퇴원을 하고 는개는 이름처럼 더욱 늘어진 안개 같은 모습으로 바뀌었다.


이후 는개는 달리는 일이 없었고 침착했지만 웃음도 사라졌다. 퇴원 후 집에 온 할머니는 영문도 모르게 변해버린 는개를 바라보며 울다가 돌아갔다. 새아빠는 는개가 그렇게 병원신세를 졌음에도 불구하고 는개의 머리를 쓰다듬는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아니 멈추지 못하였다. 는개는 새아빠가 머리를 쓰다듬어도 쓰러지기 전처럼 이를 꽉 깨물지도 않았으면 주먹을 쥐고 있지도 않았다. 자신의 머리를 만지는 새아빠의 손길을 배제했다. 실체가 없는 미시세계에서 떠돌아다니는 먼지처럼 인지하고 그것을 거시세계에서 완전무결하게 무효화시켰다. 머리카락과 머리가 그 더러운 손길의 감촉을 무시했다.


안면인식장애를 느끼는 사람처럼 는개의 목덜미를 만지고 귀를 만지작거리는 남자의 손길은 촉발을 잃어버렸다. 단지 밤에 잠들려 누우면 어린 시절 남자의 반질한 턱을 문질렀던 손의 감촉이 고름처럼 올라와서 한동안 불면에 시달려야 했다. 는개의 감각은 남자의 손길을 배재한 채 책상에 앉아서 책을 읽었고 공책에 숙제를 필기했다. 그렇게 하루 이틀이 지나갔다. 밤이 오고 해와 달이 번갈아가며 바뀌었다. 태양의 냄새가 여러 번 방안을 휘감았고 눈초리를 얇게 만드는 원색의 빛이 여러 날 방에 투침 했다. 어느 날 아빠의 얼굴이 종잇장처럼 구겨지는 것을 발견했다.


새아빠는 시간이 갈수록 무시당한다는 묘한 감정에 휘말리게 되었다. 남자는 지니고 있던 평정심이 점점 바닥을 보였다. 남자는 마음속 저 깊은 곳에서 꿀렁거리며 올라오는 감정을 어쩌지 못했다. 는개가 치를 떨며 수치심을 참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에서 희열을 느꼈던 남자는 자신이 이 어린것에게 완전히 배척당하고 무시당한다는 기분이 날이 갈수록 심해져서 참을 수 없었다. 하지만 선을 넘을 수는 없는 일이다.


남자는 페도필리아로 법에게 호되게 혼쭐이 났었다. 구치소에서 여러 번 출소를 했다. 다른 이유로 구치소의 문턱을 들락거렸다면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졌겠지만 남자는 소아성애자였다. 어린아이의 가슴을 만지고 성기도 만졌다. 입소하기 전에는 남녀의 구분이 없었다. 그저 어린아이면 달아올랐다. 그러다가 여자아이에게로만 이입되면서 행위가 점점 심해져 결국 남자는 교도소에 수감되고 나서 많은 돈을 들여 어렵게 출소를 했다. 자신의 딸이라 할지라도 목 밑으로 손이 내려가면 형량은 걷잡을 수 없었다. 귀엽기만 한 의붓딸의 성장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사채업으로 돈이 많았던 남자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돈을 빌려간 는개의 엄마와 잠을 자는 사이로 발전을 했다. 여자는 자신을 사랑하는 것 같았다. 여자에게는 관심이 없었지만 여자의 지갑에서 딸의 사진을 보는 순간 평생 자신의 노리갯감으로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자리에서 여자와 동거에 합의를 보고 그 대가로 사채는 갚지 않도록 해주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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