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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하늘보다 오늘의 하늘이 10

276

by 교관


276.


“나는 그날 이후 병원에 입원을 하고 며칠 만에 깨어났고 뉴스에서는 사채업자 네 명의 실종이 보도되었어요. 그들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전혀 없었고 경찰들이 집으로 와서 엄마에게 새아빠의 행방을 묻기도 했지만 엄마 역시 넋 나간 사람 같았어요. 엄마는 방 안에서 머리부터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한 새아빠의 모습을 본 것이죠. 그날 직장에 일을 나가지 않았기 때문에 새아빠의 모습이 사라지는 것을 눈앞에서 봐야 했어요. 엄마는 그 사실을 경찰에게 사실대로 말하지 못했어요. 경찰이라는 사람들은 사실만 믿는데 엄마의 말은 그들 입장에서 터무니없는 허구의 상상 같은 것이니까요. 엄마는 그 광경이 충격이었던 모양이에요.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것에 대한 어떤 보상을 어디에서도 받지 못해 안절부절못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엄마는 시간이 지날수록 몸의 여러 부분이 어린아이로 돌아가는 것 같았어요.”


“그렇게 나의 고등학교 시절도 지나갔어요. 그를, 그 남학생을 그러니까 당신을 찾고 싶었는데…….” 는개는 작은 새가 숨을 쉬듯 한숨을 내쉬었다. 여전히 부드러운 는개의 손은 마동의 손 밑에 있었다. 는개의 얼굴은 붉게 물들었다. 는개의 손도 따뜻했지만 냉철했다. 마치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손을 잡는 느낌이었다. 그 생각이 들자 마동은 또 한 번 흠칫했다.


그때 는개가 마동의 손을 잡아 주었다. 사랑스러운 손이었다. 사랑스러운 손이라고 다 같을 수는 없다. 확실한 것은 는개의 손은 사랑스럽다는 것이다.


“나의 고등학교의 생활은 학교에서의 수업을 제외하면 나머지 시간은 당신을 찾는데 시간을 보냈어요. 고등학교2학년이 되었을 때 엄마는 우리가 살던 집을 팔면서 그 동네를 떠났지만 나는 그 골목을 하루에 한 번은 가서 그곳에 머물러 있었어요. 남학생이 혹시나 오지 않을까 하며 기다렸어요. 고등학교 3학년 때에는 대학진학에 대해서도 신경을 써야 했어요. 법률공부를 하기로 마음먹었어요. 성범죄 내지는 성적으로 학대를 당하는 여자들을 위해서, 수치심을 가지게 만드는 남자들을 응징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어요. 차별이라는 말을 차이라는 말로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간이란 나의 말을 누군가 들어주기를 바라고 내가 내민 손을 잡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살아가는데 그 손을 잡아주고 싶었어요.”


는개는 틈을 두었다.


“이 세계를 자신들의 놀이터로 보는 그 놈들을 당시에는 전부 집어넣고 싶었어요. 그리고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말이에요 법학을 공부한다면 당신을 찾는 것에 좀 더 명확하게 다가가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고등학교시절 전 지금의 모습에 가까워졌어요. 거기 증명사진의 모습처럼 말이죠. 고등학교 3학년의 모습에서 말이죠. 고등학교 3학년의 모습에서 지금은 변한 게 거의 없어요. 좀 더 나이를 먹고 화장으로 지금의 나이를 감추는 정도죠.”


“그런데…….”


“그런데 어떻게 당신을 찾았을까요? 그 남학생이 다가올 때 교복의 명찰 속 이름을 봤다고 했죠? 내 머리에 그 이름은 각인이 되어 떠나지 않았어요. 고. 마. 동. 그 이름을 잊을 수가 없었어요. 집을 떠나 대학교는 서울대학교로 갔죠. 공부를 열심히 했어요. 할 수 있는 게 공부밖에 없었거든요. 공부가 내가 할 수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쉬웠어요. 방학 때마다 잊지 않고 동네의 골목에서 기약 없이 그 남학생을 기다렸어요.”


는개는 말을 하며 마동의 손을 꼭 쥐었다. 는개의 미약한 마음이 마동에게 손을 타고 전해졌다.


“바로 당신을 찾으려고 했어요. 알음알음 심부름센터에 도움을 청하기도 했어요. 굉장한 심부름센터회사도 찾아가서 당신을 찾는 것에 많은 돈을 지불했어요.”


는개는 나머지 한 손으로 와인을 마셨다. 와인이 는개의 가냘픈 목으로 넘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는개의 눈빛이 애절하게 빛났다.


“그동안 당신은 어디에 있었나요? 만나면 물어보고 싶었어요.”


는개의 눈은 촉촉해져 있었다. 잠시의 틈이 마동과 는개의 중간에 줄다리기의 줄처럼 놓였다. 와인을 각각 한 모금씩 또 마셨다. 마시는 와인이 무슨 맛을 지니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지금 이 순간 마동이 알 수 있는 것은 는개가 자신 앞에 있다는 것이고 그 사실이 감사하는 것이다.


“전 사법고시를 패스했어요. 어렵지 않았어요. 막힘이 없었죠. 법무연수원에서 연수받을 때에도 성적이 좋았어요. 그런데 졸업과 동시에 법원과 경시청에 돌입을 앞두고 당신 회사의 채용정보를 인터넷으로 보게 되었어요. 지금의 우리 회사는 병아리감별사를 양성해 내는 집단이라고 할 만큼 창의적이고 새로운 일이잖아요. 많은 졸업생들이 상장이 되어 버린 꿈의 리모델링 회사에 관심을 가졌고 입사원서를 내고 있어요. 경쟁이 치열해요. 전 나만의 미래가 있었기에 우리 회사에 입사원서를 넣을 생각이 전혀 없었죠. 그러던 중 우연히 친구가 컴퓨터를 통해서 회사의 홈페이지에 접속을 하고 있어서 친구의 뒤에서 화면을 보게 되었어요. 회사의 홈페이지에는 대표의 사진과 이름이 있고 회사의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의 사진과 이름이 있는 페이지에서 당신을 봤어요. 친구가 마우스로 페이지를 넘기려고 할 때 저는 친구를 막았어요. 당신의 사진과 이름을 보는 순간 전 그대로 얼어버리는 것 같았죠. 이름은 내가 그렇게 찾던 이름이었거든요. 이름 위의 사진 속에 당신은 그때 그 남학생의 모습이었어요. 맞았어요. 분명 그 남학생이 조금 커버린 얼굴을 하고 있었죠. 전 내 앞의 미래를 모두 포기하고 회사에 입사원서를 넣을 거예요. 그리고 입사해서 당신과 만나게 되었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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