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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죽만 주문하는 작가 3

단편소설

by 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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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첫 번째 소설에는 음식 맛을 못 느끼는 주인공이 나온다. 주인공은 아무래도 젊은 시절의 작가 자신인 것 같았다. 주인공은 전혀 음식의 맛에 접근할 수 없었다. 미각을 상실한 것이다. 그런 주인공이 노란색의 액체에 가까운 음식을 먹기까지의 이야기가 있었다.


그리고 네 번째 소설에는 밥을 먹지 않아서 마른 체형을 하고 있던 여고생은 오히려 그 몸매 때문에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다. 수학여행을 가게 된 날, 주인공 여고생을 미워하던 반 친구들이 마시는 음료에 수면제를 탔다. 경주까지 가서 불국사를 돌아보던 중에 여고생은 몸이 나른하고 잠이 자꾸 오는 것을 느끼며 어딘가에 앉아서 그만 잠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때는 아무도 없고 어둑해져 있었다. 여고생은 한 사찰의 방에서 일어났는데 몸을 일으키려니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여고생은 무서움이 밀려왔다. 쓰러진 여고생을 안고 온 사람은 스님이었다. 스님은 여고생의 몸에 독이 있으니 그 독을 다 빼내야 한다고 했다. 여고생은 스님의 말을 믿지 못했지만 몸에서 기운이라는 것이 몽땅 빠져나가 전혀 움직일 수가 없었다.


스님의 지극정성으로 간호를 받은 덕에 다음 날 새벽에는 일어날 수 있었다. 맑은 공기를 마셨다. 공기가 맛있다는 것을 느꼈다. 처음 알았다. 스님은 아침식사 시간에 여고생에게 숟가락으로 떠먹을 수 있는 노란색의 죽을 주었다. 그 죽에는 냄새라는 것이 소거되어 있었다. 여고생은 음식을 먹는 것이 고욕이었다.


음식을 먹으면 먹을수록 몸이 아주 더러워지는 것 같았다. 점점 음식을 멀리하게 되었다. 그것은 세속의 음식이기 때문이었다. 여고생은 스님이 만들어준 노란색의 죽을 먹고 이 세계가 더 이상 허무한 세상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만 눈물이 죽 흘러내렸다. 여고생은 그곳에 남아 비구니가 되기로 했다. 여고생은 그 노란색의 죽에 대해서 알게 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네 번째 소설은 그런 소설이었다.


또 다른 소설은 삶에 대한 애착이 전혀 없는 주인공의 이야기다. 주인공은 죽음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믿음을 가지려 하지만 죽음의 손은 주인공에게 점점 다가왔다. 주인공은 한 믿음에 도달하게 되었다. 믿음이 종교나 사람이 아니라 노란색의 음식을 통해서 온다는 사실을 주인공은 알았다.


어째서 사람들은 사람들을 납득시키기 위해 살려고 하는지, 왜 사람들은 사람들을 납득시키려고만 하는지 주인공은 이해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모두가 다른 사람들을 납득시키는데만 열중하고 있었다. 아내를 납득시키고, 남편을 납득시키고, 아이들을 납득시키고, 선생님을, 학생을, 사장을, 직원을, 동료를 납득시키는데만 시간을 소비했다.


주인공은 자신에게 죽음의 손이 다가온다는 두려움에 떨던 어느 날 노숙자가 밥퍼에서 얻은 노란색의 액체에 가까운 음식을 내밀었을 때 그걸 먹고 알게 되었다. 어떤 믿음이라는 것이 그 노란색의 음식을 통해서 온다는 것을. 노란색의 음식을 한 숟가락 떠먹을 때 ‘혼자가 아니야’라고 말해주었다.


다섯 편의 소설들은 전부 허무와 그 허무에게 둘러 쌓인 주인공과 주변인들의 이야기였다. 인간은 마치 태어나면서 음식을 먹어야 하는 관념이 축복이라 부여받았다. 재료를 부수고 분자를 변형시키고 불에 가열하여 먹는 존재는 오직 인간뿐이라 지구에서 유일하게 동물과 비교된다.


그러나 세상의 누군가는 음식 때문에, 식사 때문에 고통을 받는다. 그런 사람들이 우리와 섞여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간혹 그들과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


나는 작가의 삶이 궁금했다. 가끔 사장님과 이야기를 하다가 작가는 슬쩍 미소를 짓기도 했는데 그럴 때 얼굴은 슬퍼 보였다. 작가의 삶을 글로 써보고 싶었다. 나도 소설을 쓰고자 하는 마음이 욕망처럼 들끓었다. 왜냐하면 작가는 호박죽을 깨끗하게 비웠지만 점점 생에 대한 애착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았다.


작가는 어째서 그 이후에 소설을 발표하지 않고 있는 걸까. 인간의 허무란 무엇일까. 나는 허무에 대해서 생각을 자주 하는 편이다. 그렇지만 허무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허무는 우울과 다르겠지.

그리고 슬픔과도 다를 거야.


그 정도밖에 나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게 나의 한계다. 허무라는 건 그저 텅 빈 동공 같은 마음일 거라는 모호한 상상만 할 뿐이었다. 작가에게 허무에 대해 묻고 싶었다. 작가의 소설을 읽으면서 그 허무에 가까워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어째서 그런 소설을 썼을까.

어째서 거의 매일 같이 호박죽만 먹을까.

호박죽을 먹는다는 느낌보다 위장에 그저 넣어 둔다는 느낌으로 보일까.


60대 작가에게 묻고 싶은 말들이 많았다. 작가는 사장님이 가끔 말을 시키면 짤막하게 대답을 했다. 그는 주로 예, 아니요, 로 대답을 할 뿐 길게 말을 하지는 않았다.


작가가 호박죽을 먹고 있으면 먹는 모습은 카메라가 확대를 한 것처럼 크게 보였다. 숟가락으로 호박죽을 떠서 입에 넣었다. 수염이 군데군데 잡초처럼 난 입을 움직여 호박을 먹는 장면이 마치 티브이 화면 속에서 확대한 그림처럼 눈에 들어왔다.


부드럽고 달콤한 노란색 호박죽이 작가의 입으로 들어가서 혀 위에서 사라지는 그 모습까지 눈에 들어왔다. 멍하게 보고 있다가 사장님에게 혼나기도 했다. 작가만 오면 나는 딴 사람이 된 것 마냥 멍하게 작가를 보았다. 작가가 호박죽을 먹는 모습을 봤다. 마치 그래야 하는 사람처럼 그렇게 되고 마는 것이다.


작가의 몸에는 상처가 많았다. 거친 무엇인가로 피부를 많이 문지른 것처럼 보였다. 벽돌로 몸을 갉아 버린 것 같았다. 그 정도로 설명이 불가능했다. 문지른 자리에 딱지가 앉고 또 괜찮아질 만하면 벽돌로 피부의 그 자리를 문질러 버린 것처럼 형편없었다. 피부는 나이 듦을 피해 갈 수 없어서 늘어져 탄력도 이미 잃고 있었다.


작가님, 몸은 왜 이런 거죠?


작가는 나의 물음에 한참 말이 없었다. 그리고 몸을 돌려 천장을 보며 누웠다. 나는 말이 없는 작가가 순간 미웠다. 아무 말도 못 할 정도로 미웠다. 그리고 나는 소리를 질렀다. 왜 그랬냐고. 왜 아내와 자식을 버리고 몸을 이렇게나 방치를 하느냐고 왜! 왜! 왜! 나는 소리를 지르며 울고 말았다. 눈물이 이렇게나 많이 나올 줄 몰랐다. 눈물은 흘러 가슴으로 떨어졌다.


작가는 내가 울도록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작가가 미웠지만 그래서 고마웠다. 작가는 나의 가슴을 안아 준다든가, 어깨를 두드려주지 않았다. 우리는 왜 이토록 허무를 짊어지고 살아가야만 하는 걸까. 그때 작가가 호박죽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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