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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죽만 주문하는 작가 1

단편소설

by 교관

줄거리 및 작품소개: 죽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주인공은 매일 이른 오전에 와서 호박죽을 먹는 작가가 궁금하다. 이 작가는 60대로 오래전에 단편소설집 한 권을 출판한 이력밖에 없다. 도대체 일도 하는 것 같지 않고 가족이 있지도 않은 것 같다. 매일 호박죽만 먹을 뿐인데 호박죽을 먹는다는 느낌보다 떠서 입 안으로 넣는다는 기분이 드는 기이한 사람이다. 주인공은 작가가 썼다는 오래 전의 단편집을 읽을 수 있게 되었고 서서히 작가에 대해서 알아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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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게에 일주일에 네 번 이상 오는 손님이 있다. 내가 일하는 가게는 죽을 파는 가게다. 이른 시간부터 죽을 판다. 그것이 죽이라는 음식의 고유한 대명제 같은 것이다. 어째서 죽집은 이렇게도 일찍 장사를 시작하는 것일까. 맥모닝을 따라잡으려는 것일까. 아니면 그 반대일까. 그래서 죽집은 거대 기업의 맥모닝에 지지 않으려고 새벽장사를 고수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이건 나 혼자만의 생각이며, 생각을 입 밖으로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덕분에 그 손님은 많고 많은 죽집 중에 우리 가게를, 많고 많은 죽 중에 언제나 호박죽을 새벽에 먹으러 온다. 호박죽만 먹는다.


그 손님은 작가라고 했다. 말수가 적고 항상 비슷한 시간에 와서 호박죽을 주문해서 천천히 먹고 간다. 작가는 60대 정도로 보였다. 작가들이 원래 그런 것인지 말이 거의 없다. 대부분의 손님이 뜨거운 죽을 빠르게 푸릅푸릅 퍼먹고 가는 것에 비해 천천히 호박죽을 떠먹었고, 몇 숟가락 떠먹은 다음 숟가락을 놓고 잠시 쉬었다가 다시 먹었다. 쉴 때에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마치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모습 같았다.


그 작가는 하고 많은 죽 중에 하필 호박죽일까. 나는 그게 너무 궁금했다. 더 맛있는 죽이 많은데 어째서 호박죽일까. 무슨 사연이 있을까. 절대 다른 죽은 주문하지 않았다. 오늘은 호박죽이 안 됩니다,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차마 말할 수는 없었다.


작가는 어떤 사연이 있는지 몰라도 작가 치고는 20년 전에 단편 소설집을 한 권 발표했을 뿐이다. 그게 첫 출판이면 작가의 시작으로도 이른 편은 아니다. 그 이전에는 분명 직업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 뒤로는 전혀 글을 쓰지 않고 있다고 했다. 아니, 글은 쓰고 있을지는 모르나 그 이후 발표된 글은 없다고 했다. 발표는 하지 않아도 작가라는 사람들은 글은 꾸준하게 쓰니까.


작가는 호박죽을 먹는다는 느낌보다 조용하게 배 안에 그 음식을 채운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호박죽을 먹었다. 작가는 내가 죽가게에서 일을 하기 훨씬 전부터 왔다고 했다. 나는 그 작가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작가에게 궁금한 것을 물어보고 싶었다.


작가는 늘 앉는 자리가 있다. 그 자리가 마음에 드는지 꼭 그 자리에 가서 앉았고 만약 누군가 앉아 있다면 비어 있기를 기다리다가 앉았다. 기다릴 때는 밖의 의자에 앉아서 자리가 빌 때까지 기다렸다. 사장님은 그런 사정을 잘 알고 있어서 작가가 오는 시간에는 될 수 있으면 그 자리를 비워두려 했다. 하지만 작가는 자주 왔지만 매일 오지는 않았기에 그 자리에 손님이 앉는다고 하면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하지만 작가는 주로 새벽에 오니 늘 그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그 자리 때문인지 언젠가부터 이른 오전에 오기 시작했다고 했다. 가게가 문을 여는 시간이 오기도 했다. 예전에는 오후에 왔지만 자리에 항상 사람들이 앉아 있어서 새벽 시간으로 옮겼다고 사장님한테 들었다.


작가가 오는 시간은 새벽 5시였다. 죽은 6시부터 판매가 되고 5시부터 준비를 한다. 문을 여는 시간에 와서 느긋하게 앉아서 호박죽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작가는 죽을 재촉하지 않았다. 작가가 늘 앉는 자리는, 비워두기에는 공간이 남아서 2인용 작은 테이블을 두었는데 작은 창이 있어서 밖으로 바다의 수평선이 보였다.


이곳은 해안이 있는 바닷가로 밤이 되면 해안의 가로등 불빛이 들어왔고 이른 오전까지 불을 밝혔다. 그 빛이 마치 소설 속 세계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작가는 호박죽이 나오기 전까지 그 광경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작가는 늘 호박죽만 먹어서 질릴 만도 한데 그렇지 않았다. 대부분의 죽 재료는 본사에서 공급받아서 죽을 만들었지만 호박죽은 사장님이 재배한 호박으로 죽을 만들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에게는 입맛에 맞지 않을 수 있다고 사정님이 말했다.


작가에서는 호박죽이 입맛에 맞는 모양이었다. 사장님이 만든 호박죽만 먹었다.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몸에 어떤 병이 있어서 호박죽 밖에 먹지 못하는 것일까?

집에서는 다른 음식을 먹지 않을까?

하지만 그 생각은 버렸다. 왜냐하면 어느 날은 호박죽을 먹으면서 소주를 같이 마시기도 했다. 소주를 마실 때에는 꼭 두 병을 마셨는데 한 병은 3분의 1 정도를 남겼다. 소주를 마시면서 크 하는 추임새 같은 건 내지 않았다. 술도 취하지 않는 것 같았는데 시간을 들여 마셨기 때문에 취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작가를 알아보고 인사를 건네는 사람도 있었다. 인사를 건넨 사람 중에는 작가의 맞은편에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가는 이도 있었다. 작가는 이야기를 하면서 거의 표정이 없었다. 또 어떤 사람은 작가의 팬이라며 작가의 책을 꺼내 사인을 부탁하기도 했다. 작가는 난처해하는 표정도 짓지 않고 자신은 이제 작가가 아니라며 정중하게 거절을 했고 팬이라는 사람도 받아들였다. 그 사이에 안 좋은 메타포는 어디에도 없었다.


호박죽의 색을 좋아합니다. 세상에 둘 도 없는 아름다운 색입니다.


어느 날 작가는 사장님에게 그렇게 말했다. 사장님은 그 말을 듣고 미소를 한 번 지었다. 단골들은 주로 오전에 왔다. 작가도 이른 오전, 새벽에 와서 호박죽을 먹고 갔다. 나는 이상하게 호박죽만 먹는 작가에게 끌려 일하는 시간을 오전으로 바꾸었다. 사장님의 오픈을 도왔다. 죽을 맛이었지만 새벽은 새벽만의 빛깔이 있었다.


이상하지만 죽집은 저녁보다 오전에 손님이 많았다. 세상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있을까. 죽을 찾는 사람들은 이른 오전에 몰려들었다. 더 힘들었지만 작가를 보기 위해서는 나는 힘듦을 자처했다. 사장님도 작가와 비슷한 연배로 어린 시절 작가가 되기 위해 습작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어쩐지 죽에 대해서 써 놓은 문구들이 남달랐다. 사장님이 살뜰하게 써 놓은 죽에 대한 문학적 설명을 읽으며 먹는 죽의 맛도 괜찮았다. 사장님은 작가의 소설집을 읽었다고 했다. 나도 읽고 싶었지만 절판이어서 더 이상 구할 수는 없었다. 사장님은 나에게 가지고 있던 소설집을 빌려 주었다. 책은 세월이 묻어서 그렇지 깨끗했다.


나는 밤을 꼬박 새우며 소설집을 읽었다. 단편소설집을 읽고 작가에게 더 관심이 갔다. 다섯 편으로 된 단편소설의 주인공들은 전부 다르지만 모두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작가와 작가 부인, 작가의 아이들 이야기인 것이다. 나는 그걸 알 수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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