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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죽만 주문하는 작가 2

단편소설

by 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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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작가가 궁금해서 다가가려고 해도 알 수 없는 어떠한 결계를 쳐 놓은 것처럼 호박죽만 갖다 주고 나면 더 이상 다가갈 수가 없었다. 작가는 호박죽을 즐긴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작가의 소설 중에 ‘슬픔에 기대어 위로받는 건 아무 인간이나 할 수 있다’는 말은 나의 내부 속 어떤 부분을 계속 두드렸다.


작가는 어디에 살까.

이 근처에 살까.

혼자서 자주 호박죽을 먹으러 이른 오전에 오는 것을 보니 독신자 아파트에 사는 게 아닐까.

부인은 어디에 갔을까.

첫 소설집이 나온 후 더 이상 작품이 발간되지 않은 걸로 보아 다른 일을 하며 지내는 것일까.

알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작가의 소설집에 수록된 단편소설 중에 두 번째 소설을 여러 번 읽었다. 거기에는 아내가 좋아했던 음식에 대해서 나왔다. 물론 소설에서는 아내라는 칭호는 없었다. 여자와 남자가 나왔을 뿐이다. 남자가 그 음식을 먹고 있으면 여자의 창자와 간 따위를 잘 갈아서 먹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했다.


그 음식은 죽처럼 숟가락으로 떠먹을 수 있을 정도로 흐물흐물한 것이며 색은 노랗다고 했다. 정확하게 호박죽이라고는 하지 않았지만 그건 호박죽에 가까웠다.


소설 속 여자는 남자와 결혼을 했다. 서로 사랑을 했고 모든 것을 바쳐도 아깝지 않다고 서로를 생각했다. 남자는 여자를 위해서 회사에서 열심히 일을 했다. 아내에게 예쁜 집을 선물하는 게 남자의 목표였다. 아내는 일을 하고 돌아온 남편을 위해 식사를 준비했다. 남자는 아내에게 음식에 대해서 일절 맛없다고 하지 않았다.


음식을 먹고 짜네, 맵네. 밍밍하네 같은 말은 하지 않았다. 그저 맛있게 먹었다. 그런 남편이 좋아서 아내는 매일 열심히 장을 봐서 남편의 식사를 만들었다. 남편은 미소로 아내와 식사를 했다. 매일 맛있는 표정으로 음식에 대해서 맛없다는 말을 하지 않은 채.


남자는 회사, 집, 회사, 집이었다. 주말에도 회사에서 일을 했다. 아내가 주말에는 회사에 가지 말고 같이 보내자고 했을 때 남편은 음식을 맛있게 먹는 표정으로 집을 장만해서 아내에게 선물할 거라며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어느 날 여자의 어머니가 집으로 왔다. 사위에게 줄 거라며 닭을 삶을 거라고 했다. 닭을 삶는 동안 여자는 남편에게 내놓은 식사를 어머니에게 내주었다. 어머니는 그 음식을 맛보고는, 아니 이렇게 간이 안 되어 있어서 어떻게 먹었니?라고 했다.


그녀가 만든 음식은 전부 너무 짜거나, 너무 간이 안 되어 있어서 먹을 수 없는 음식들 뿐이었다. 여자는 어릴 때 식이장애를 겪었다. 다 이겨냈다고 생각했지만 미각이 엉망이 되고 말았다. 그 뒤로 남편이 늘 짓는 그 미소가 이상하게 보였다. 맛없는 음식을 맛있다고 억지로 웃으며 먹는 그 표정.


쉬지 않고 회사를 나가버리는 이유가 자신의 음식 솜씨가 없어서 그렇다고 믿게 되었다. 그 뒤로 아내는 사라졌던 식이장애가 심해졌다. 아내는 어떤 음식도 먹지 못하게 되었다. 점점 퀭해지고 말라가는 자신의 모습도 보기 싫어서 아내는 구석진 곳으로 숨기만 했다. 남자는 그럼에도 그 미소를 지으며 밖에서 사 온 음식을 아내에게 먹였다.


아내는 남편의 그 미소를 보면 움직일 수가 없었다. 소리를 지르고 싶어도 그러지 못했다. 그 이상하고 일그러진 미소, 늘 괜찮다고 하는 미소, 남편이 사 온 음식을 먹고 아내는 구토를 하고 오바이트를 했다. 남편은 아내의 구토물을 그릇에 담았다. 그날도 아내는 씻지 못해 냄새나는 몸으로 어두운 방구석에서 쭈그리고 있었다.


남편은 말없이 들어와 노란색의 흐물렁 거리는 음식을 숟가락으로 떠서 아내의 입으로 넣어 주었다. 그 음식을 먹은 아내는 더 이상 구토를 하지 않았다. 아내는 그 노란색의 음식을 다 먹으며 소설은 끝이 났다.


나는 이 소설을 여러 번 읽었다. 재미있기도 했고 슬프고 안타갑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섬뜩했다. 나는 노란색의 음식물이 무엇인지 짐작이 갔다. 그건 호박죽은 아니었다.


더 섬뜩한 소설이 있었다. 다섯 편의 소설 모두가 노랗고 흐물렁거리는 음식에 관한 이야기였다. 호박죽이라고 대 놓고 말을 하지 않았지만 어떤 소설의 노란색 음식은 호박죽이라는 건 읽어보면 알 수 있었다. 더 섬뜩한 소설은 마지막 소설이었는데 끔찍했지만 아름다워서 빨려 들어서 읽은 소설이었다.


비빔밥 식당은 치료를 목적으로 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주 외진 곳에 위치한 식당은 주택풍 건물을 개조한 식당이었다. 중 2층까지 있고 음식물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와서 이 식당의 비빔밥을 먹고 조금씩 식사에 대한 거부감을 줄여갔다.


그런 소식이 알음알음 퍼져 외진 곳이지만 차를 몰고 일부러 이곳까지 오는 손님들이 많았다. 깊은 산속에 위치한 식당은 경치가 좋아서 사람들은 밥만 먹고 돌아가지 않고 주위를 둘러보고 마음의 안정도 취했다. 식당의 앞에는 개울이 흐르고 물이 맑아서 산천어로 살고 있었다.


3층짜리 식당은 2, 3층은 숙박이 가능했다. 물론 비용이 꽤 들었지만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부유층이었다. 그들이 이곳에 오는 이유는 엄선된 재료를 가지고 만든 신선한 비빔밥을 먹으러 오는 것이지만 비빔밥을 먹고 나오는 후식 때문이었다.


후식이 노란색의 물컹한 음식으로 숟가락으로 떠먹었다. 그 음식을 먹는 순간 우황청심환을 먹은 것처럼 마음의 안정이 되었다. 사람들은 무엇보다 대외적으로는 괜찮지만 가정적으로 불안했던 마음이 사라졌다. 불안이라는 건 늘 그렇게 매복하고 있다가 약한 틈을 타고 힘을 드러냈다. 하지만 후식을 먹고 난 후의 상태라면 무엇도 부러울 것이 없었다.


돈은 있을 만큼 가지고 있었다. 다 쓰지 못하고 죽을 부유층들에게 속사정은 그만큼 따라주질 못했다. 아이들 중에서 신경이나 정신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거나 그 문제를 끌어안고 있는 집이 많았다. 대마를 넘어 약을 하고, 코카인을 흡입하고 자동차로 질주하며 사람을 치어 받기도 했고 그대로 아무 집이나 들어가 칼을 휘두르기도 했다.


무엇보다 아이들은 음식에 대한 장애가 깊었다. 사람은 먹지 않으면 죽는다. 그런데 음식을 거부한다. 그러니 약을 해서 그 모든 것을 해소하려는 부유층 자제들이 많았다. 이 식당을 알게 된 후에는 몸도 균형이 잡히고 체력이나 체격도 좋아졌다.


부모들은 이 비밤밥 식당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돈을 더 지불하고서라도 후식을 악착같이 먹었다. 하지만 이 후식에는 비밀이 있었다. 후식의 주 재료가 되는 호박은 인간의 몸에서 딴 호박이었다. 사람을 땅에 반쯤 묻고 거름과 물을 주어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고 묻어 놓은 사람의 몸과 얼굴에서 호박이 자랐다.


주로 집을 나온 아이들이나 자살을 하려는 젊은 사람을 잡아와서 땅에 묻고 채소화 시켰다. 반은 식물상태로 반은 인간의 상태로 영원성을 유지했다. 묻어 놓은 사람은 미미하지만 움직일 수 있었다. 하지만 생각을 하는 건 힘들었다. 거름만 잘 주면 사시사철 끊임없이 맛있는 호박을 자라게 했다.


비빔밥의 재료 역시 그랬다. 거기에서 한 손님으로 온 부유층의 아들이 노란색의 음식에 매료되어 자신이 땅속으로 들어가 몸이 점점 채소화 되어가는 것을 받아들이는 내용이 이어졌다. 그 과정이 몹시 끔찍하면서도 아름답게 표현되었다. 식물의 뿌리가 사람의 혈관을 따라 자라고 싹을 틔우면서 인간은 점점 채소가 되었다. 인간과 식물의 혼합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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