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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Dec 19. 2024

그리운 날도 사라질 날도 52

소설


52.


 오후 한 시가 넘어서 자취방 앞에 도착했다. 창문을 열어놓고 나온 듯했는데 창문이 닫혀있었다. 마당을 지나 자취방으로 들어가니 누군가 침대에 누워 있었다. 방문을 여는 소리가 들리니 누워 있던 누군가의 몸이 자동으로 일어났다.         

      

 “이제 오는 거야? 어디 갔었는데? 방은 왜 이렇게 추운 거야? 이런 추운 방에서 잠을 잤던 거야? 책을 읽으며? 아르누보?”      

         

 그녀였다. 그녀가 내 침대에서 모로 누워 깜빡 잠이 들어있었다.      

         

 “하나씩 물어봐 줘요. 뭐부터 답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녀는 내 말에 다시 한번 초승달 같은 미소를 만들었다. 저런 웃음을 평생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나는 생각했다. 그녀는 초승달 같은 아름다운 미소를 짓고 있지만 아름다운 것은 곧 소멸한다. 미소 속에는 권태와 자조적인 타박이 엿보였다. 나는 그 모습에 무서워서 고개를 돌렸다. 안타까웠지만 여전히 그녀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왜 그래? 어디 갔다 왔어? 밖에 눈 오는 거 봤지?”      

         

 “네, 새벽에 눈을 떴어요. 눈이 저절로 떠졌어요. 창밖을 보니 눈이 펑펑 내리기에 그만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서 좀 돌아다녔어요. 나도 모르는 새 꽤 멀리까지 가버린 바람에 이제 들어오게 됐어요.”    

           

 그녀는 내가 하는 말의 단어 하나하나를 되새기며 집약적으로 기록하는 듯 흥미로운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눈이 떠져 눈을 보러 갔구나.”   

            

 “네.”      

         

 “눈 내리는 거 좋아하는구나.”    

           

 “싫어하는 사람도 있어요?”   

            

 나는 억지스럽게 미소를 만들여 말했다. 그녀는 내가 자신이 무안해할까 봐 미소를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더 크게 웃었다. 웃음에 빠져들면 안 되는데, 하고 나는 생각했다.       

        

 “글쎄, 환경미화원 아저씨들과 군인들은 싫어하지 않을까. 하늘에서 내리는 쓰레기라고”라며 그녀는 입을 막고 소리를 내어서 웃었다. 나의 웃음은 그녀의 웃음에 비해 보잘것없었지만, 그녀의 웃음이 나의 웃음을 이끌었다.               


 “아직 식전인 것 같아서 같이 밥 먹으려고 데리러 왔다가 그만 침대에 누워 버렸네. 잠깐 잠든 것 같았는데 꿈까지 꿔 버렸지, 뭐야. 아마 침대가 편했나 봐. 보기에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거든. 잘 개진 이불도 마음에 들었고, 얼마 만에 깊게 잠들었는지 몰라.”     

          

“선배는…….”라는 말에 그녀는 다른 말로 대답을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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