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정갈한 손톱이었다. 타고나길 손톱이 예쁘게 타고났다. 돈을 들여 노력을 하지 않아도 그녀의 손톱은 시선을 두게 만들었다. 손가락에 살도 없어서 마디가 튀어나왔지만 나는 그녀의 그런 손가락을 쥐고 있는 게 좋았다.
[손가락 닳아 없어지겠어요]
그녀가 가끔 투정 섞인 말을 뱉어내곤 했다. 그러면서 그녀 역시 나의 손을 꼭 잡고 놔주지 않았다. 집 안에는 생활을 이어나갈 것으로 보이는 가구는 거의 없었다. 냉장고가 있었지만 돌아가지 않아서 그 안에 음식이 아닌 잡다한 것들이 들어 있었다.
[생활에 필요한 건 대충 다 있어요. 남들처럼 다양하지 않아서 그렇지]
그녀의 집은 가구가 없어서 그런지 넓었다. 살림살이가 이렇게 없는 집은 영화 속에서나 봤다. 소품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더 괜찮은지도 모를 일이다. 침대와 고장 난 냉장고, 소파와 그 앞에 있는 테이블이 다였다. 티브이도 없었다. 그녀는 내가 잘 보이게 정갈한 손톱과 예쁜 손가락을 늘어트리고 엎드려 있었다. 나는 소파에 앉아서 그녀의 손을 보고 있으면 행복했다. 시간이 가는지 몰랐다. 그녀와 함께 있으면 현실을 잊었다.
현실이란 악몽 같은 것이다. 악몽이야 잠깐 왔다가 연기처럼 사라지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한 몸처럼 붙어서 휴대전화로 '열혈남아‘를 봤다. 오래된 영화였다. 우리는 이 영화를 처음 봤다. 그녀는 오래된 영화를 좋아한다. 비현실적인 영화들을 우리는 왕왕 봤다. 열혈남아는 왕가위가 처음 만든 영화다.
[장만옥은 눈이 퉁퉁 부어도 예뻐요]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손을 쥐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훨씬 예뻤다. 손톱의 색도 예뻤다. 속살을 들여다보는 기분이었다. 그녀의 손을 잡고 있으면 마법에 걸리는 것만 같았다. 움직일 수 없고 움직이기도 싫었다. 그냥 이렇게 천년만년 손잡고 가만히 있고 싶었다. 나는 그녀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그저 손톱이 예쁘고, 손가락이 예뻐서 좋아하게 되었다. 태어나서 이렇게 예쁜 손을 가진 사람은 처음 봤다. 얼굴은 보지 않는다. 얼굴은 어떻게든 바뀔 수 있지만 손톱은 바뀌지 않는다.
[남자들은 내 손 같은 거에는 관심이 없어요]
그건 분명 거짓말이다. 그녀는 거짓말을 잘하지 못한다. 그녀는 전화를 받고 나의 손에서 자신의 손을 뺐다. 마지막까지 손가락을 잡고 있다가 놓았다. 난 그녀에게 가지 말라고 말했다.
[전 해야 할 일이 있어요. 하지만 않으면 안 돼요]
[침대에서 며칠 있는다고 세상이 망하지는 않잖아]
[전 일을 하지 않으면 생활이 완전 망가져요. 잘 알면서 그래요. 다녀와서 마음껏 손을 잡을 수 있게 해 줄게요. 전 당신 것이니까요]
그녀의 피부냄새가 남아 있는 침대에 누워 있는 게 좋다. 설명할 수 없다. 이렇게 누워 천장을 보고 있으면 천장의 무늬가 서서히 움직이는 게 보인다. 나는 그것이 환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설령 무늬가 뱀으로 바뀌어도 나는 그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지 않고 뚫어져라 볼 것이다. 그녀는 손을 쓰는 일을 하러 간다. 자세하게 말하기는 싫다. 그걸 말하게 되면 점점 화가 날지도 모른다. 화가 나면 나도 나를 감당할 자신이 없다.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나는 그동안 혼자서 열혈남아를 다섯 번 정도 봤다. 처음에는 장학우가 너무 답답한 등신처럼 보였는데, 한 번 타오르는 불꽃처럼 살고 싶었던 그가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엄마를 위해 구입한 에어컨을 버릴 때 장학우의 뒷모습이 슬펐다. 그녀의 정갈하고 예쁜 손톱을 보면 그런 감정이 든다. 장학우의 뒷모습 같다. 사람들은 중독되는 걸 싫어한다. 어떤 중독이든 그렇다. 일중독도 위험하고, 알코올중독도 위험하다. 술이나 담배도 마찬가지다. 중독은 정말 위험한 것인가.
나는 그녀의 손톱에 중독되어 있다. 하루도 보지 않으면 안 될 지경이다. 그와 반대로 그녀의 손톱을 더 이상 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이런 양가감정은 왜 드는 것일까. 그런 아마도 말하기 싫지만 그녀가 하는 일 때문일지도 모른다.
오늘은 날이 아주 좋다. 이렇게 좋은 날은 몇 시간밖에 지속되지 않는다. 오후로 넘어가면 흐리고 부연 날이 될 것이다. 맑고 화창하고 깨끗한 빛이 들어올 수 있게 커튼을 걷고 싶지만, 그녀의 집에는 창문이 없다. 이 안에 있으면 시간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녀가 돌아오려면 20시간은 걸린다. 그녀와 함께 먹기 위해 음식을 좀 사러 나가야겠다. 거리로 나오니 햇살이 낯설었다. 그녀의 얼굴에 떨어진 햇살을 보고 싶었지만 그녀는 햇살을 싫어한다.
[빛이란 정말 이상한 것 같아요. 빛은 피부와 눈에 좋지 않지만 없으면 안 되고 말이에요. 빛이 내리쬐는 곳에 서 있으면 발가벗고 있는 것 같아요]
거리로 나오니 그녀가 곳곳에 존재했다. 그녀는 온갖 장소에 깃들어 있었다. 그녀가 없어도 나는 그녀를 느낄 수 있었다. 그녀를 볼 수 있고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녀의 정갈한 손톱을 만질 수 없는 게 가장 큰 불만이다. 그녀의 뿌려진 파편을 모아가며 거리를 걸었다. 그녀의 체온이 남아있는 침대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느닷없이 들었다.
그녀는 몇 살 일까. 그녀의 나이를 모른다. 그녀의 이름도 나는 모른다. 아마 그녀도 나의 이름 따위 궁금하지 않을 테지. 살갗의 냄새를 맡고, 피부를 밀착시키는 것에는 시점을 능가는 본질이 있다. 그녀와 나는 본질에 좀 더 가까워진 사이였다. 그녀의 나이나 이름은 알고 싶지 않다. 이름을 모르니 아무렇게나 불러도 된다. 그녀 역시 그렇다. 어느 날은 나를 오빠라고 불렀다가, 어느 날은 너, 근래에는 당신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호칭을 부르지 않은 날이 더 많았다.
나는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나는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은 것이다. 그녀에 대해서, 그녀의 존재는 미미해서 누구도 알려고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사람의 얼굴을 본다. 손톱 같은 건 전문가가 아니면 쳐다보지도 않는다. 사람들은 맹점을 놓치고 있다. 그렇지만 그녀의 맹점을 나만 알아봤으면 한다. 정말 나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그녀의 집에는 고장 난 냉장고밖에 없기 때문에 음식을 잘 골라야 한다. 조리를 해 먹을 수 없다. 무엇보다 그녀는 집에 들어오면 열여섯 시간 정도 잠이 든다. 중간에 한 번 움직여서 살아있구나 할 정도다. 그 정도로 깊은 밤에 빠졌다. 그녀의 잠든 모습을 바라보는 건 행복한 일이다. 세상에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잠든 그녀의 정갈하고 예쁜 손톱을 하염없이 보고 있으면 세계라는 것에 대해서 새삼 놀라게 된다. 손가락을 잡으면 미세하지만 그녀도 나의 손의 감촉을 알고 있다.
그녀 덕분에 나는 행복에 빠지지만 그녀 때문에 고독해진다. 그녀와 함께 있으면 행복하지만 그녀가 일 하러 가버리고 나면 고독에 길고 깊게 빠져든다. 들어와서 나를 한 번 안아주고 그대로 잠 속으로 들어가 버리면 외로워진다. 긴 기독과 깊은 외로움을 주고 짧은 행복을 그녀는 준다. 그 간극을 유지하고 있다. 나는 외로움을 즐긴다.
[잠이 들면 마음대로 해도 좋아요]
그녀는 잠의 세계로 빠지기 전에 그렇게 나에게 말을 했다. 하지만 잠든 그녀를 건드릴 수는 없다. 몇 시간이고 가만히 앉아서 그녀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녀의 얼굴은 예쁜 얼굴은 아니다. 어디서나 볼 법한 얼굴이다. 그녀의 얼굴은 특징이랄 게 없다. 하지만 손톱으로 내려가면 말이 달라진다. 범접할 수 없는 손톱을 그녀는 지니고 있다. 손질로는 절대 따라올 수 없는 정갈하고 예쁜 손톱이다. 그런 그녀의 손톱을 나는 좋아한다. 그녀는 뭘 잘 먹지 않는다. 이틀정도 상온에 두어도 맛이 변하거나 상하지 않는 음식을 구입해야 한다.
그런 음식은 뭐가 있을까.
전통시장은 불안하면서 안정적이다. 사람이 많아서다. 사람이 많다는 건 나에게는 공포이자 호기심이다. 시장에는 선량한 사람들이 가득하다. 그렇게 보인다. 시장은 그렇다. 시장은 초기 시절의 호크니의 그림 같다.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그녀는 알기 전에는 시장은 두려운 곳이었다. 사람들이 많은 곳은 나에게 어렵다. 왜 그러냐고 물어봐도 대답할 길이 없다. 그냥 그렇게 태어났다. 그렇게 생겨 먹은 것이다.
그녀와 딱 한 번 시장에 같이 왔었다. 물론 그녀는 나에게 손을 내밀었고 나는 그녀의 예쁜 손을 꼭 잡고 다녔다. 그녀와 꽈배기를 먹었다. 그녀가 꽈배기를 좋아하는 건 아니다. 꽈배기는 이틀 정도 상온에 놔두어도 상하지 않는다. 꽈배기를 찾으러 돌아다녔지만 찾는 건 꼭 없다. 그녀도 나 덕분에 시장에 나올 수 있었다. 그녀도 사람들이 있어야만 하는 곳에서 일을 하지만 사람들이 많은 곳은 회피했다. 그 점이 우리의 공통점이자 고통의 한 점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