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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찐작가 May 17. 2022

생신규가 들어왔다(3)

신규 간호사, 독립과 동시에 일어난 일

어떻게든 신규를 가르치고 적응시키려 노력하던 나날이었다. 신입은 2~3일에 한 번 꼴로 눈물을 보이긴 해도 어떻게든 근무하고 있었다. 봉합술 어시스트 사건 이후 어렵고 부담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천천히 시키자는 암묵적인 규칙이 생겼다. 신입에게는 주로 단순 드레싱, 피하/근육 주사, (일주일 이상 지난 후) 24G(가장 가는 카테터) 혈관주사 업무만 시켰다.  18G CT angio 정맥주사 업무나 어려운 드레싱 등은 관찰만 하게 하고 우리들이 직접 했다. 의사들과 직접 소통하고 환자들을 능숙하게 응대해야 하는 외래 진료 방도 부담이 될까 3가 다 되어갈 무렵까지 가르치지 않았다.


그러다 한 간호사 선생님(이하 A 선생님)이 19일째 되던 날 처음으로 외래 진료방 간호를 신입에게 가르쳤다. 신입은 그런대로 진료방 담당 간호를 이해한 것 같았다. 신입은 필기를 잘하질 않아서 모르는 부분, 외워야 할 부분은 가르치는 선생님이 직접 신입의 수첩에 적어주기도 했다.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끔 정리를 하고, 적는 것보다 외우는 것이 중요하다며 다음날은 직접 외래 담당 업무를 해보기로 하고 하루가 끝났다.


다음 날이 되었다. 오후에 점심시간 후 잠깐 바빴던 시간이 지나가고 간호사 쌤A는 신입에게 진료방을 맡겨보기로 했다. 신입은 어제는 곧잘 하던 일들도 자꾸만 실수를 했다. 그 탓에 다른 부서에서 전화가 끊이질 않았다.


방사선과에서는 x-ray 처방이 전달되지 않았다고 했고, 원무과에선 수납할 처방이 보이지 않는다며 난리였다. 처음엔 신입에게 좋게 좋게 얘기했다. "혹시 000 환자 엑스레이 오더 있나요~? 방사선과에서 전화 왔는데..."




두세 번 얘기를 하고 대신해서 처방을 넘겨주고 했는데 전화는 쉬지 않고 울렸다. 어느새 처치실은 엄청 바빠져서  반깁스를 만들고, 화상 처치를 하고 나 홀로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깁스를 할 때는 깁스 재료(splint roll)가 굳을 때까지 모양을 잡아줘야 해서 손을 쓸 수가 없는데, 그때 또 전화가 미친 듯이 울렸다. 방사선과에서 또 처방 전달을 못 받아서 전화를 한 것이다. 그쪽 부서에서도 다소 짜증이 난 것 같았다. 나 역시 화가 치밀어 올랐다. 혼자서 드레싱과  처치를 하기도 벅찬데 전화를 받느라 환자들에게 계속 양해를 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진료실 앞 미니 스테이션에 서있는 신입에게 무선 전화기를 주면서 말했다. "이제 방사선과 전화는 선생님이 받으세요. 전화 때문에 아무 처치도 못하겠으니까요."

이렇게 날 선 말투로 얘기했는데 정말 처음으로 신입을 혼(?) 낸 상황이었다.


20분쯤 더 지났을까, 간호사 A 선생님이 신입을 가르치는 도중에 신입은 갑자기 화장실로 사라졌다.


그날따라 환자들은 끊이지 않았고 나는 처치실을 담당하고, A 선생님은 진료실을 담당하며 바쁘게 움직였다. 다리 전체에 광범위하게 욕창이 있는 환자가 상처 드레싱을 위해 내원하였고, 나와 의사, A 선생님까지도 모두 달려들어서 욕창 드레싱을 해야 했다. 무균적인 소독을 위해 모두 장갑을 낀 채 다리를 들고 드레싱에 매달리고 있는데 원무과 차장님 한 분이 와서 신입이 화장실에 있는데, 우는 소리가 들린다며 가보라고 했다. 


과장님은 "이번에는 나 때문에 우는 건 아니지?" 라며 은근슬쩍 걱정을 했고 우리들은 일단 이십여분 이상이 걸리는 드레싱을 진행하느라 신입에게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드레싱이 끝나고 한숨 돌렸을 때 이미 상당한 시간이 지나있었고, 중간에 복도를 지나치는 신입을 보았기 때문에 적당히 추스르고 업무에 복귀하려나보다 생각했다.



그때 실습학생 하나가 다급하게 처치실로 와서 말했다.


"신규 선생님 사물함이 텅 비었어요, 짐 챙겨서 나간 것 같아요."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었다. 대학병원 병동 간호사로 있을 때 퇴사하는 간호사, 응급 사직하는 신규들을 10명도 넘게 봐왔지만 수선생님한테 한마디 말도 없이 짐만 챙겨서 근무시간 중에 사라진 경우는 없었다. 그것도 실습생이 신규 퇴사의 첫 목격자라니. 어찌된 일인지 몰라서 급하게 코로나 예방접종실에 헬퍼로 가있던 수선생님을 찾았다. 하필이면 수선생님은 간호부장님과 함께였다.


 "수선생님, 지금 긴히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신입이 도주한 이야기를 아는 대로 보고했다. 정말 이 상황 자체가 비현실적이고 황당함 그 자체였다. 일단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수선생님은 병원 인사팀으로, 나는 정형외과로 뛰었다. 이런 어이없는 일을 당하고도 각자 자리를 비울 수 없을 만큼 엄청나게 바빴기 때문이다.


수선생님이 진상을 파악하고 정형외과 부서원들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충격 그 자체였다. 신입이 주장하기를, 본인에게 수선생님은 엄청난 업무 압박을 주었고,  A 선생님으로부터 빨리 독립하라는 협박을 들었으며, 나는 내가 맡기 싫은 어렵고 더러운 주사실 환자들만 본인에게 떠넘겼다는 것이다. (18 게이지 수술용 카테터는 내가 맡고, 신입에게는 혈관 좋은 환자들 또는 22 게이지 얇은 카테터 환자들만 맡겼기에 사실무근이었다.) 결국 신입은 본인의 업무 미숙과 무성의함은 감추고 피해망상이 섞인 거짓 진술만 남긴 채 병원을 나갔다.


수선생님은 인사팀에게 해명하느라 고생을 했지만, 인사팀은 신입의 말을 어느 정도는 믿는 듯한 눈치였다. 하지만 퇴사 며칠 뒤에 신입의 엄마가 원무과로 전화해서 4대 보험 빨리 해지해주고 퇴사처리 해달라고 엄청난 민원을 넣었기 때문에, 인사팀에서도 상황을 눈치 챘으리라 믿는다. 


신규 때 선배 간호사들에게 태움을 당하고, 경력직 신규인 언니에게 동기 태움도 당해봤지만 신규에게 역 태움을 당할 줄은 몰랐다. 대학 동기들이나 병원 동기 모임에서 신규 간호사들을 못마땅하게 바라보고 이것저것 뒷말하는 동기들 얘기를 들으면 속으로는 꼰대 같다고 생각했었는데, 오히려 내가 물러도 너무 물러 터졌었나 생각했다. 하지만 새로운 신입이 오더라도 내가 더 모질어질 것 같지는 않다. 첫 대학병원에서 내가 겨우 2년 차가 되었을 때 드디어 실습생들이 내 뒤를 따라다니며 관찰하며 실습하곤 했었는데 지식이나 꿀팁을 알려주고 소소하게 얘기를 나누는 게 즐거웠다. 이렇듯 괴롭힘과 가시 돋친 말 없이도 병원에서 신규 간호사를 잘 가르칠 수 있다고 믿는 편이기 때문이다. 정말 뒤통수가 얼얼하고, 모두의 뒷목을 잡게 만들만한 신규를 만났지만 이 또한 언젠가는 그냥 하나의 해프닝으로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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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고 있던 <생신규가 들어왔다 3편> 마칩니다, 오래 기다려주신 독자님들 정말 감사합니다 :)


생신규가 들어왔다 지난이야기 :

생신규가 들어왔다(2) (brun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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