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 간호사, 독립과 동시에 일어난 일
과장님은 "이번에는 나 때문에 우는 건 아니지?" 라며 은근슬쩍 걱정을 했고 우리들은 일단 이십여분 이상이 걸리는 드레싱을 진행하느라 신입에게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드레싱이 끝나고 한숨 돌렸을 때 이미 상당한 시간이 지나있었고, 중간에 복도를 지나치는 신입을 보았기 때문에 적당히 추스르고 업무에 복귀하려나보다 생각했다.
그때 실습학생 하나가 다급하게 처치실로 와서 말했다.
"신규 선생님 사물함이 텅 비었어요, 짐 챙겨서 나간 것 같아요."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었다. 대학병원 병동 간호사로 있을 때 퇴사하는 간호사, 응급 사직하는 신규들을 10명도 넘게 봐왔지만 수선생님한테 한마디 말도 없이 짐만 챙겨서 근무시간 중에 사라진 경우는 없었다. 그것도 실습생이 신규 퇴사의 첫 목격자라니. 어찌된 일인지 몰라서 급하게 코로나 예방접종실에 헬퍼로 가있던 수선생님을 찾았다. 하필이면 수선생님은 간호부장님과 함께였다.
"수선생님, 지금 긴히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신입이 도주한 이야기를 아는 대로 보고했다. 정말 이 상황 자체가 비현실적이고 황당함 그 자체였다. 일단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수선생님은 병원 인사팀으로, 나는 정형외과로 뛰었다. 이런 어이없는 일을 당하고도 각자 자리를 비울 수 없을 만큼 엄청나게 바빴기 때문이다.
수선생님이 진상을 파악하고 정형외과 부서원들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충격 그 자체였다. 신입이 주장하기를, 본인에게 수선생님은 엄청난 업무 압박을 주었고, A 선생님으로부터 빨리 독립하라는 협박을 들었으며, 나는 내가 맡기 싫은 어렵고 더러운 주사실 환자들만 본인에게 떠넘겼다는 것이다. (18 게이지 수술용 카테터는 내가 맡고, 신입에게는 혈관 좋은 환자들 또는 22 게이지 얇은 카테터 환자들만 맡겼기에 사실무근이었다.) 결국 신입은 본인의 업무 미숙과 무성의함은 감추고 피해망상이 섞인 거짓 진술만 남긴 채 병원을 나갔다.
수선생님은 인사팀에게 해명하느라 고생을 했지만, 인사팀은 신입의 말을 어느 정도는 믿는 듯한 눈치였다. 하지만 퇴사 며칠 뒤에 신입의 엄마가 원무과로 전화해서 4대 보험 빨리 해지해주고 퇴사처리 해달라고 엄청난 민원을 넣었기 때문에, 인사팀에서도 상황을 눈치 챘으리라 믿는다.
신규 때 선배 간호사들에게 태움을 당하고, 경력직 신규인 언니에게 동기 태움도 당해봤지만 신규에게 역 태움을 당할 줄은 몰랐다. 대학 동기들이나 병원 동기 모임에서 신규 간호사들을 못마땅하게 바라보고 이것저것 뒷말하는 동기들 얘기를 들으면 속으로는 꼰대 같다고 생각했었는데, 오히려 내가 물러도 너무 물러 터졌었나 생각했다. 하지만 새로운 신입이 오더라도 내가 더 모질어질 것 같지는 않다. 첫 대학병원에서 내가 겨우 2년 차가 되었을 때 드디어 실습생들이 내 뒤를 따라다니며 관찰하며 실습하곤 했었는데 지식이나 꿀팁을 알려주고 소소하게 얘기를 나누는 게 즐거웠다. 이렇듯 괴롭힘과 가시 돋친 말 없이도 병원에서 신규 간호사를 잘 가르칠 수 있다고 믿는 편이기 때문이다. 정말 뒤통수가 얼얼하고, 모두의 뒷목을 잡게 만들만한 신규를 만났지만 이 또한 언젠가는 그냥 하나의 해프닝으로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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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고 있던 <생신규가 들어왔다 3편> 마칩니다, 오래 기다려주신 독자님들 정말 감사합니다 :)
생신규가 들어왔다 지난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