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첫날 아침, 배고파할 아이들을 위해 혼자 숙소를 나왔다. 평온하게 유모차를 끌고 가는 엄마, 출근을 하는 사람들, 빵 가게, 꽃가게, 전철역이 보인다. 동네 구경을 하니 뒤숭숭한 마음이 가라앉는다.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구나’ 느껴진다.
마트에 가서 쌀과 체리를 사 왔다. 에어비앤비라 숙소에서 아침을 해 먹을 수 있다. 경비도 아끼고 적응을 하기 위해 오징어채, 볶음김치, 총각김치를 챙겼다. 앞집에서는 멸치볶음, 장조림까지 진공포장을 해 주셨다. ‘엄마~ 너무 맛있어요" 아이들이 한마디 씩 해주니 보람이 느껴진다. 남편한테 아줌마 소리 엄청 들으며 밑반찬을 챙겼는데, 안 가져왔으면 어쩔 뻔했나 싶다.
아이들이 제일 궁금해하는 곳이 자유의 여신상이었다. 타임스퀘어,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구경하고 스테이튼 아일랜드에 가기 위해 전철을 탔는데 그만 반대방향으로 탔다. 내친김에 미국 8대 아이비리그에 속하는 콜럼비아대로 향했다. 대학광장에 엄청 큰 무대들이 있고 무슨 행사 리허설을 하고 있다. 어떤 아줌마에게 물으니 내일이 졸업식이라 준비를 하고 있단다. 무대를 가리키며 자랑을 한다. “내 딸이 저 앞에서 합창 리허설을 하고 있어요. 얘들아, 너희들도 공부 열심히 하면, 여기에 들어올 수 있단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나라 사람들은 대학교 졸업식을 성대하게 한단다. 졸업식 시즌에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색깔이 각 대학교 대표색으로 바뀐단다.
아이들과 처음 해보는 배낭여행이라 눈높이를 어디에 맞추어야 할지 고민이다. 뉴욕에 왔으니 메트로폴리탄 박물관과 자연사 박물관 정도는 가야지? 특히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은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입구에서 한국인 가이드 한 분을 만났는데 아이들이 지루해하지 않을 1층의 그리스, 이집트관 중심으로 구경하라고 조언해 주신다. 아이들은 무료이고, 어른은 1달러 이상 기부를 하면 무료입장이 가능하다고 해서 5달러 기부를 했다. 피곤해할 아이들을 위해 7달러 내고 나 혼자서만 오디오 가이드를 빌렸다.
“엄마~ 나도 듣고 싶어. 나두~~”
“민서야~ 엄마가 듣고 얘기해 줄게~”
“나도 직접 듣고 싶단 말이야”
“그래? 그럼 민서가 듣고 엄마한테 얘기해줘~~ 민서야! 이 그림은 어떤 것이야?”
“음.. 엄마, 이 그림은 말이지. 이 사람의 몸 곡선이 정말 잘 묘사된 거래...”
“엄마! 엄마! 지민이도~ 지민이도 듣고 싶단 말이야~~”
어린이용 오디오 가이드는 5달러인데, 2달러 더 내고 어른용을 빌렸더니, 아이들이 더 관심을 보인다. 사람의 심리가 그런 것이겠지? 그래도 1시간 지나니 효과가 떨어진다. ㅠ.ㅠ
시차 적응이 쉽지가 않다. 첫날은 거의 뜬 눈으로 지새우고, 낮에 돌아다니고 밤에 자는데도 아침 5~6시면 눈이 떠진다. 잠을 더 청해보려고 하지만 결국 침대에서 일어나게 된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이다. 둘이서 돌아가며 일찍 일어나 엄마 침대에 와서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보니 오후 2~3시만 되면 눈이 저절로 감긴다. 한 번은 맥도널드에 들어가서 졸고 나오기까지 했다. 아이들은 시도 때도 없이 배고프다, 다리가 아프다고 짜증을 낸다. 서로 예민해져서 별것도 아니 걸 가지고 싸운다. 게다가 생각했던 것보다 날씨가 너무 춥다.
사실 내 마음의 고민은 따로 있다. 비행기에 두고 내린 카메라 가방 때문에 남편이랑 통화를 하면서도 마음이 영~ 편치 않다. “엄마~ 아빠한테 얘기했어?” 민서가 자꾸 물어본다.
이틀 지나 항공사에서 답변이 왔다. “아직 발견하지 못했어요~”
이젠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혼자 화장실에 들어갔다.
“남편... 할 얘기가 있어!”
"응~ 뭐야?”
“사실은 환승할 때 카메라 가방을 두고 내렸어. 항공사에 메일을 보냈는데, 못 찾았대.”
“뭐라구?”
“아니... 당신이 힘들게 사줬는데, 내가 한 번도 못 쓰고...........”
그만 눈물이 왈칵 터진다.
"음... 음... 윽... 엉... 엉... 앙~~~"
참았던 울음이 어느새 입 밖으로 터져 나온다.
"나 너무 힘들어. 이 먼 곳까지 와서... 아이들은 매일 졸리다, 춥다, 다리 아프다고만 하고... 엉... 엉..."
남편은 당황해하고, 나는 고해성사를 하듯 털어놓으니 마음이 후련하다. 휴~~
부모의 마음은 다 똑같은 것 같다. 쉽게 올 수 없는 여행이라 아이들이 많이 보고 느끼고 성장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뉴욕 공립 도서관 벤치에 앉아있는데 한국인 모자가 눈에 띈다. 엄마가 아들을 혼내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그 앞에 일기장이 놓여 있었다. ‘굳이 밖에서까지 일기를 쓰게 해야 하나~’ 생각하다 나에게도 찔림이 온다. 사실 나도 아이들과 한 약속 중에 첫 번째를 ‘일주일에 다섯 번 이상 일기 쓰기’로 정했다. 숙소에 도착해서 피곤하지만, 잠자기 전 일기를 쓰게 한다. 주로 어디 갔고, 무엇을 먹었는지가 제일 많이 쓰여 있다.
“오늘은 박물관에 갔다. 지루했다. 그렇지만 엄마가 아이스크림을 사줬다.”
“타임스퀘어에 갔다. 맥도널드에서 아이스크림을 샀다. 달다고 엄마랑 지민이는 반도 안 먹고 버렸다. 나는 다 먹었다.”
“그렇게 먹고 싶던 파파야를 샀다. 그런데 맛이 이상하다. 내가 착각했나 보다...”
“내가 날아갈 것 같아. 천국의 맛이야. 너무 좋아. 아빠도 생쥐를 보았으면~ 우리나라에는 없던 거야.”
뉴욕을 떠나는 날 아침, 침대에 누워 아이들에게 질문을 해 본다.
“지민이는 뉴욕이 어때?”
“좋아요”
“뭐가 좋아?”
"사과”(어제 마트에서 빨간 사과를 사옴)
“또?”
“지하철”
“지하철에서 뭐가?”
“생쥐”
“또?”
"젤라또 아이스크림, 체리, 이층 침대, 침대 램프... 그리고 뉴욕 나라”
“엄마~ 그러면 우리 나쁜 것도 얘기해요.”
“그래~ 뭐가 나빠?”
“지하철 더러운 것”
“또?”
“머리카락(한국과 달리 좁은 욕조에서 모든 처리를 해야 하는데 머리카락이 엉켜 붙어서 물이 안 내려간 것을 얘기하는 것 같다), 도시락에 팥(테이크아웃 음식), 추운 것”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이 뭐야?”
“자유의 여신상 본 것, 그리고 소방 박물관 간 것, 그리고 이집트 박물관 간 것, 브루클린 브리지, 타임스퀘어 간 것”
“그러면 뭐가 제일 맛있었어?”
“음... 돼지고기(베트남 식당 폭찹)랑 치킨 치즈 스파게티 먹은 거랑 젤라또 아이스크림(리틀 이탈리)이 제일 맛있어요."
“민서는 뉴욕이 어때?”
“좋아요”
“뭐가 좋아?”
“지하철이 편리하고 마트가 가까이 있어. 먹을 것도 많고...”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뭐야?”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서 두 부부가 아무도 의식하지 않고 공연한 거~”
“뉴욕이랑 우리나라랑 뭐가 다른 것 같아?”
“음.. 예술혼을 가진 사람이 많아. 지하철에 거리에...”
“그리고?”
“음... 아빠가 없어... 허전해~”
그래! 아이들에게 아빠가 필요하다. 그리고 나에게도!!
직장맘의 육아휴직 레시피 – 두 아이와 미국 세 달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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