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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y Dec 25. 2019

볼티모어에서 2일

존스홉킨스, 인하버, 성공회교회, 워싱턴DC

긴장이 풀리고 피곤했는지 늦잠을 잤다. 형&선 커플은 방학이 되었는데도 교수님이 내주신 과제를 수행하느라 바쁘단다. 우리 때문에 평소 안 먹던 아침밥도 차리고, 하루씩 교대로 관광을 시켜주겠다고 한다. 남아 있는 반찬도 많은데 선이는 계란찜에 김치 콩나물국까지 끓여 놓았다. 갑자기 식탁이 풍성해니 지민이는 오히려 못 먹는다. 사람의 심리란 왜 이리 오묘한지...

“지민아~ 이곳에는 토끼도 있고, 사슴도 가끔 볼 수 있다~”

“정말요? 사슴 보고 싶어요. 삼촌~ 사슴~~~ 언제 보러 가요?”

“운 좋으면 볼 수 있어. 나도 1년에 한 번 정도 봤어~”

“어디서 봤어요? 여기요? 언제 봤어요?”

 지민이의 호기심에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부부는 이틀간 우리에게 방을 내주고, 거실에서 생활하게 됐다. 우리나라로 치면 빌라인데 잔디도 있고 주차장도 넓다. 미국에서는 제일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고 한다. 원룸이지만 방도, 거실도, 주방도 크다. 유학생의 생활이 엿보인다. 무엇보다 오랜만에 빵빵한 와이 파이 덕분에 아빠랑 통화를 했다. 아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다 좋아 보이나 보다. 

“아빠~ 여기 집 너무 좋아요. 삼촌 차가 너무 좋아요~”


집을 나서자마자 우리는 먼저 Johns Hopkins 대학 구경에 나섰다. 이 대학은 의과대로 유명하단다. 형이가 사회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곳인데 여기서는 10년이 넘어야 졸업을 시켜준단다. 선이는 인근 주립대학에서 공공정책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대학 캠퍼스 곳곳에서 다람쥐가 출몰하니 아이들이 신이 나서 쫓아다닌다. 다음으로 볼티모어의 주 관광지라는 Innharbor로 향했다. 형이가 학교에서 할 일이 있어서 우리를 데려다주고 선이와 구경을 하게 됐다. 도착하자마자 제일 눈에 띄는 것이 페달 보트 타는 곳이다. 여긴 오리가 아니라, 용 모양 보트이다. 


“엄마~ 저거 드래곤보트 타요. 네~~ 네.. 네.. 엄마~”

지민이가 조르기 시작한다.

“그래? 저걸 타려면 다리가 많이 아플 텐데.. 너희들이 해야 하는데 할 수 있겠어?”

“네. 할 수 있어요. 우리 타 봐요~ 네~~!”

한국에서도 안 타던 보트를 여기 와서 타다니... 30분이라서 다행이다. 하늘이 너무 맑고 햇빛이 쨍쨍하다. 다리가 좀 묵직해져 오지만, 페달을 밟아 이곳저곳 다니면서 즐겁게 시간을 보내본다.


다리 운동을 많이 해서인지 두 아이가 배가 고프다고 난리다. Cheese Factory라는 곳에 들어가서 주문을 했는데  음식이 나오는데 한참 걸린다. 기다리는 동안 두 아이는 장난치다가 티격태격하더니, 이번에는 지민이가 뭐가 맘에 안 든 지 떼를 쓰기 시작한다. 참다못해 알밤을 한 대 쥐어 박고 말았다.

“지민아. 언니랑 니가 마주 보고 있어서 계속 티격태격하고.. 엄마가 자리 바꾸어준다고 했는데.. 왜 자꾸 안 기다리고 짜증내니~?”

“엄마! 테이블이 지저분해서 싫어요.”

“청소는 자리 바꾼 다음에 하면 되잖아~~ 지민이가 엄마한테 소리 지르고 짜증 부린 것 먼저 사과해. 그럼 엄마도 사과할게”

한참을 뭉그적뭉그적 하다가 언니랑 이모가 먹는 모습을 보고... 내 귀에다가 대고 아주 조그맣게 “잘~못~했어요~”하는 지민이...

“그래. 엄마도 안 그래야 했는데 미안해~~”

오랜만에 만난 후배 앞에서 아이를 혼내고 나니 마음이 불편하다.


저녁에는 형&선이가 다니는 성공회 신부님 댁에 초대를 받았다. 신부님께 내 이야기를 했더니 공동체에서 지낸 이야기가 듣고 싶다고 하셨단다. 집에서 직접 담근 김치, 직접 튀긴 탕수육으로 맛있는 저녁식사를 하게 됐다. 메이플릿지에서 어떻게 보냈는지 얘기하고, 한국 근황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다음날이 일요일이라 교회 예배에도 함께 참여했다. 성공회 한인 예배라 김치볶음, 떡갈비까지 맛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예배가 끝나고신부님과 사모님의 따뜻한 배웅을 받으며 이번에는 형이와 워싱턴 D.C로 출발했다.


관광중심지인 내셔널 몰에 차를 안전하게 주차를 하였다. 3시간 주차가 가능하니 그 안에 구경을 마쳐야 한단다. 아이들이 다리 아프다고 투덜대기 전에 최대한 구경을 많이 하고 돌아오기로 했다. American History관은 1700년부터 현재까지 아주 간단한 미국의 주요 특징이 전시되어 있었다. 워싱턴 기념비, 링컨기념관, 홀로코스트 메모리홀을 차례로 구경했다. 마틴 루터 킹이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라는 명연설을 했던 링컨 기념관이 가장 인상 깊었다. 한국전쟁에 참여한 군인들을 추모하는 곳도 있다. 중간중간 다리가 아프다는 아이들의 투정가 있었지만... 수영 연습 중인 아기 오리들가 다람쥐들 덕분에 어떻게 잘 넘어갔다. 휴~


볼티모어에 돌아와서 한국 마트에서 기다리는 선이와 합류했다. 카페에서 노트북을 켜고 앉아있는 것이 전형적인 유학생의 모습이다. 한식당에서 LA갈비와 물냉면 세트, 꽁보리밥, 굴국밥, 시장 칼국수까지 다양하게 저녁을 먹었다. 바로 아래층에는 한국 다이소 같은 선물가게가 있어서 위스콘신에 가서 줄 선물도 준비할 수 있었다. 우리가 앞으로 두 달 넘게 생활할 작은 도시에는 한인마트가 없을 수도 있으니 미리 장을 보는 것이 두 부부의 조언이었다. 참기름, 4가지 종류의 라면, 잡채를 샀다. 요리를 해 먹으려면 고춧가루, 액 젖, 쌀, 천일염도 필요하니 집에서 챙겨주겠단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우리는 1년에 한 번 운이 좋으면 볼 수 있다는...

사슴 8마리와 여우 1마리를 봤다.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도망갈까 봐 못 찍었다.

지민이는 아주 신이 났다.

“엄마. 나는 운이 좋은 아이예요. 이렇게 사슴이랑 여우를 봤잖아요. 아빠도 봤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


바쁜 시간을 할애해서 우리 가족을 챙겨주는 형&선이 덕분에 행운을 만난 것 같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 가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환대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 여행이 주는 묘미가 아닐까 싶다. 집을 떠난 지 딱 20일째, 몸은 고되지만 새로운 힘이 솟아난다.  



직장맘의 육아휴직 레시피 – 두 아이와 미국 세 달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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