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ay Mar 02. 2020

두 번째 뉴욕, 현이의 눈물

페루로 가는 험한 길


사실 다시는 뉴욕을 찾고 싶지 않았다. 비행기만 타면 불안해지는 이 마음을 어쩔까? 인천공항에서 남편과 생이별을 하고, 비행기에 카메라를 두고 내려서 무지 힘든 4일을 보냈다. 실수에 대한 자책, 시차 적응, 추운 날씨, 아이들 챙기는 것에 대한 심리적 부담이 나를 압박했던 곳이 뉴욕이다. 마음과 달리 이동 경로상 뉴욕으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공항까지는 션이 배웅을 해주기로 했다. 다행히 션의 남동생도 요 며칠 방문했다가 오늘 떠난단다. 2시간이나 잤을까 짐을 꾸려 새벽 5시에 차를 탔다. 그동안 정들었던 Orion하우스를 출발해서 새벽의 홈스테드 풍경들을 내 눈에 담아본다.  다시 올 수 있을까?


다행히 이번에는 조금 특별한 만남이 기다리고 있다. 오하이오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조카 현이를 만나기로 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큰지 모르는 엄마가 한 말 때문일까?  한국에서도 별로 만난 적이 없는데... 주머니 사정도 좋지 않현이의 경비까지 생각하면...  만나 하는 걸까? 우리 가족의 히스토리 때문일까? 고민하다 한 달 전부터 일정을 맞추기 시작했다. 도착시간을 맞춰서 JFK 공항에서 만났다. 좀 어색다.


두 딸들은 이름밖에 기억이 없는 현이를 만나 수다를 떠느라 정신이 없다.  엄마 외에 한국사람을 몇 달만만났으니 얼마나 반가워하는지!

“언니~ 우리가 말이야. 홈스테드에 있었는데.... 거기는 진저, 릴라, 솔, 루씨, 럭키라는 고양이가 있고, 오티스, 엘라라는 개가 있어.”

‘언니~ 거기서 우리 맨날 소를 돌보고 젓도 짰어~“

“그래? 언니는 치즈라는 고양이를 키워. 사진 볼래?”

“우아~ 이쁘다. 언니는 좋겠다. 고양이도 키우고...”

현이는 두 꼬맹이들이 떠드는 소리에 정신이 하나도 없다. 덕분에 나를 만나러 오기까지 복잡 미묘한 감정일 수밖에 없는 현이의 어색함도 조금씩 풀리는 듯하다.


현이 덕분에 이번에는 좀 더 편하게 뉴욕 구경을 해보나 싶었는데, 욕심인가 보다. 자기는 시골 동네에서 왔다며 뉴욕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단다. 결국 우리는 한인 택시를 불러서 마음 편히 숙소까지 갔다. 뜨거운 한낮을 피해 휴식을 취하고 저녁 6시에 다시 나왔다. 지난번에 가보지 못한 Staten Island 페리를 타고 자유의 여신상을 보러 갔다. 저녁노을을 볼 수 있기를 기대했는데, 길을 헤매는 바람에 이미 해가 지고 말았다. 다행히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야경을 구경하는 것도 운치가 있다. TV에서만 보던 자유의 여신상을 직접 보게 된 두 아이들이 신이 났다. 정말 많은 관광객들 속에서 동성애 커플이 유독 눈에 뜨인다. 놀라는 아이들을 위해 현이가 설명해 준다. “그냥 남자 여자 구분 없이 서로 사랑하는 거야. 여기서는 결혼할 수도 있어.” 대략 알아듣는 민서, 눈만 멀뚱멀뚱한 지민이...ㅋㅋ


돌아오는 길에 타임스퀘어에 들렀다. 화려한 전광판으로 유명한 이곳을 지난번에는 낮에 왔었는데, 밤에 오니 정말 좋다. 인파 속에서 어우러져 고픈 배를 채우기 위해 길거리 Harral 푸드를 먹었는데 너무 맛나다. 하하! 한 번이라도 전광판에 얼굴을 내밀고픈 많은 사람들 속에 우리도 동화되어 손을 흔들고 소리를 질러본다. 기분이 좋아진다. 놀라운 장면, Jesus Loves you 피켓을 들고 다니는 한국 아줌마를 발견했다. 역시 대단하신 분들이다.  


둘째 날, 현이가 친구들을 만나러 간 사이에 나는 미언니와 만났다. 미국에서 사회복지학위를 따고 교수님이 된 언니가 우리를 중국식당으로 데리고 갔다. 주문한 음식들을 너무 맛있게 잘 먹는 아이들을 보고 놀란 언니의 표정! 사회적 기업, 소셜 이노베이션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언니와 뉴욕 공립 도서관 그늘에서 앉아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어본다. 맛난 음식을 먹여준 미언니~ 고마워요!


오후에는 현이가 가고 싶은 Soho거리 구경에 나섰다. 역에 내리긴 했는데 막상 어디가 어디인지 잘 모르겠다. 딱 구미에 맞는 쇼핑거리도 못 찾겠다. 한창 청춘 현이는 허리랑 다리가 아프단다. 리틀 이탈리아 쪽으로 발길을 돌렸는데, 예술축제가 열리고 있다. 주차장 공간을 오픈해서 락카로 그림을 그려놓고 공연을 하고 있다. 경쾌한 음악에 맞추어 우리도 손뼉도 치고 몸도 흔들어본다. 순간 마음도 몸도 풀리는 것 같다.


저녁식사는 분위기를 좀 내기로 했다. 아주 잘 생긴 웨이터가 일하는 식당을 아이들이 강추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와인 한잔 하며 현이와 이야기를 하게 됐다. 어제부터 엄마 아빠 이야기만 나오면 울컥하는 현이... 오늘도 눈물을 많이 흘린다. 관절염으로 몇 번의 수술을 하고 움직이기도 힘들었던 엄마, 자기감정표현이 서툴고 내성적인 아빠 때문에 많은 상처를 받은 현이~ 두 부부의 불화, 아빠에 대한 원망이 친가에 대한 미움으로 커져 버렸다. 부모의 감정에 휩싸여 한국을 떠나 미국에서의 삶을 선택한 조카를 보며 마음이 아프다. 현이가 부모의 삶에서 자유로워져서 행복하게 살기를 바래본다.


다음날 아침은 드디어 페루로 떠나는 날이다. JFK 공항에서 마이애미로 갔다가 페루 리마공항으로 가게 된다. 짐을 싸고 아이들을 챙기고 현이와 포옹으로 작별을 한다. 아기 때는 많이 안아봤는데 크고는 처음이다. ‘행복하렴~’ 비행기 체크인 울럼증이 있어서 긴장을 좀 했지만, 다행히 마이애미공항까지 잘 도착했다. 2시 30분 동안 대기시간, 점심을 먹기 위해 자리를 잡았다. 아침부터 너무 긴장했는지 머리가 아프다. 큰 맘먹고 7달러짜리 맥주 한 마시니 이제 좀 살 것 같다. 같은 미국인데 남쪽이라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도 많고 표지판에도 많이 보인다. 


“밖에 비가 와요. 엄청 많이 와요. 이러다가 비행기가 안 뜨면 어떻게 해요?”

“저기 봐요. 천둥이 내리쳤어요. 무서워요.”

혹시나 했는데, 비행기 출발시간이 계속 지연된다. 탑승 지연에 다른 여행자들도 모두 체면 안 가리고 땅바닥에 눕는다. 아이들의 짜증, 불안, 그리고 피곤... 결국 저녁 8시가 다 되어서야 출발했다. 비행기에 타자마자 민서는 토를 하고 말았다. 남편은 도착시간을 맞추기 위해 휴스턴 공항에서 12시간을 대기했다. 원래대로 하면 우리가 1시간 먼저 도착해서 남편을 기다리기로 했는데, 반대가 되어 버렸다. 문자를 남겼는데 확인했나 모르겠다. 그리고 새벽 1시 20분이 되어 페루 리마공항에 도착했다.

출입문을 나오는 순간

저기~ 피곤에 지친 남편이 보인다.


직장맘의 육아휴직 레시피 – 두 아이와 미국 세 달 살기

‘구독신청, 라이킷, 공유가 작가 Ray에게 큰 힘이 됩니다. 감사해요!’



이전 10화 볼티모어에서 2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