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마에서 쿠스코까지 거리가 꽤 멀어서 시간 절약을 위해 비행기를 타기로 했다. 공항에서 호스텔에 올 때는 택시비가 60솔이었는데, 큰 길가 나가서 잡았더니 30솔이다. 고무줄 택시 요금이다. 시간에 맞추어 나가야 하는데 아침 시간이 다들 왜 그리 여유로운지 불안한 내 마음~ 출발 시간 50분을 남겨두고 공항에 도착했다. 여권을 받아 든 직원들이 자기네끼리 속닥하더니 어디론가 사라졌다. 10분이 지나도 아무 말이 없어서 물어봤더니 이미 보딩 수속이 끝나 해결하는 중이란다. 순간 참았던 화가 폭발해서 뒤를 돌아보고 세 사람의 얼굴에 강한 광선을 쏴준다. 지은 죄가 있는지라 모두 눈을 바닥으로 내리깐다. 그 모습에 웃음이 나와 내 마음이 풀리고 말았다.
1시간 10분의 비행인데 쥬스, 간식까지 줘서 아주 맛있게 먹었다. 쿠스코에 도착해서 택시를 타러 가는데 경찰이 팁을 준다. “공항 안에서 잡으면 30솔, 밖에서 잡으면 10솔이에요.” 많은 택시기사를 물리치고 공항 밖 도로에서 단돈 10솔에 흥정을 했다. 리마 호스텔에서 추천해 준 곳으로 갔는데, 여기는 가족룸이 없단다. 그러면서 새로 생긴 호스텔을 추천해주겠단다. 막상 가보니 페인트 냄새가 채 가시지 않고, 커튼도 없고, 거울도 없는 곳이다. 하룻밤만 묵으면 되고 주인이 친절한 것 같으니 일단 이곳에 짐을 풀어보기로 했다.
“애들아~ 너희 뭐 먹고 싶니?”
“음. 꾸이(기니피그 고기)요~~”
“그래~ 여기 호스텔 주인한테 한번 물어보자. 근처에 맛 집이 있는지~”
날씨는 춥고, 배는 고프고, 피곤한데, 길은 멀다. 하루 사이에 해발 3,500미터로 이동을 하니 온 몸이 위축되는 듯하다. 게다가 햇빛이 없어서 하늘이 우중충하다. 마이애미 공항에서부터 고산병 약을 먹어서 다행히 귀가 아프지는 않다. 물어물어 길을 찾아갔다. 상당히 전통이 있는 음식점이다. 아쉽게도 꾸이는 한 시간 전에 예약을 해야 한단다. 다른 곳에 갈 엄두가 도저히 나지 않아 알파카, 양고기, 생선을 주문했다. 아뿔싸~ 음식 값을 지불할 솔이 없구나. 남편과 둘이서 아르마스 광장까지 가서 환전하고 왔더니 두 아이가 소파에 누워서 자고 있다. ‘에구~ 우리 공주님들 많이 피곤했구나~’ 아이들을 깨워 따뜻하게 배불리 맛있게 식사를 했다. 오후 5시에 점심을 먹은 셈이다. 음식 양이 많아 밥이 남아서 챙겼다. 내일 아침에 멸치볶음이랑 먹으면 맛있겠다.
이제 배도 부르니마추픽추(Machu Picchu) 여행 상품을 알아보기로 했다. 아이들은 춥고 피곤하다고 난리다. 우선 아까 식당 찾을 때 친절하게 길을 안내해주었던 여행사에 들어갔다. 우리가 원하는 일정을 얘기하니 생각보다 싼 가격을 제시하고, 푸노 일정까지 제안해준다. 많이 끌리기는 하지만, 다른 곳이랑 비교해보기 위해 아르마스 광장까지 나왔다. 광장에서 라마 인형을 발견한 지민이의 목소리가 밝아진다.
“엄마~ 나 이제 다 나았어요. 머리 안 아파요.”
“그래? 금세 나았네~ 하하하”
두세 군데 여행사를 더 돌아봤지만 결국 처음 상담을 받은 여행사가 제일 마음에 든다. 당장 내일 새벽 6시 30분에 출발하는 일정이라 마음이 바빠진다. 쿠스코 구경을 하려면 오늘 밖에 시간이 없다. 춥다고 투덜대는 지민이에게 라마인형으로 미끼 작전을 펼쳐서 12각 돌을 찾았다. 그리고 꽃보다 청춘에 나왔던 가게도 발견했다. 한국 관광객들을 위해 사진을 대문짝 만하게 걸어놓고 있다. 여직원이 정말 적극적이어서 우리 보고도 옷을 입혀주고 사진을 찍으라고 난리다. 결국 넷이 모두 페루 전통복을 입고 돌 벽을 배경 삼아 사진을 찍었다. 지민이는 솜털이 보슬보슬한 라마인형을 득템했다. 날씨는 춥고 피곤하지만 즐길 거리가 있으니 모두 신이 난다. 거리에서 안띠쿠초도 사 먹고, 이쁜 장갑이랑 목도리를 샀다. 계획하지 않았으나, 즉석에서 계획이 세워지는 여행~ 이게 배낭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쿠스코의 추운 아침, 새벽 6시 30분 출발을 위해 잠을 설쳤다. “너희들 늦게 일어나면 아침밥 못 먹는다!”가 통한 것 같다. 우리가 투어버스에 타는 첫 번째 손님이었고, 그 후로 한 시간 반동안 다른 손님들을 태운다. 아이들이 춥고 졸리다고 하지만, 마추픽추로 떠난다는 설레임으로 잘 참아준다. 쿠스코 날씨는 우리나라로 치면 초겨울처럼 5도 이하인데, 호스텔에는 난방이 전혀 안된다. 패딩, 재킷을 끼어 입어도 생각보다 추운 것 같다. 남편은 여기에서 전기장판 장사를 해야겠다고 몇 번씩 얘기한다.
다행히 오늘은 하늘이 활짝 개었다. 파란 하늘의 쿠스코의 느낌이 어제와 사뭇 다르다. 출발한 지 30분 정도밖에 안되었는데 화장실에 들린단다. 한국으로 치면 휴게실 같은 곳인데, 물 값이 엄청 비싸다. 시간을 때우다가... 우리는 보고 말았다. 우리에 갇혀 있는 기니피그, 기절한 기니피그, 뜨거운 물에 들어갔다 나와서 털이 뽑히는 기니피그~ 어제 꾸이를 못 먹어서 아이들이 벼르고 있는데, 입맛이 싹 달아난다. 불쌍한 기니피그들~
15인승 미니버스 자리가 2~3개 정도 비어서 조금 여유롭게 갈까 했는데 운전수가 계속 사람을 태운다. 급기야는 부인에 아이 둘까지 태우고, CD를 켜 놓고 노래를 따라 부르고, 운전대를 두드리며 박자까지 맞춘다. 운전석 바로 뒤에 있던 남편 왈~ “나 졸다가 그 소리 듣고 깨면서 깜짝 놀랐어. 씨~~” 여기까지는 귀엽게 봐줄만했다. 점심을 먹으려고 식당에 들렸는데 아무 설명도 없이 밥을 먹으란다. 영어를 못하면 먹는 시늉이라도 해주면 알아들으련만~ 불친절한 운전수~
음식점 종업원이 수프랑 포크를 3개씩만 준다. 4명분의 투어비용을 다 지불했다고 밥 하나 더 달라고 하자, 마지못해 1개 더 내오는 종업원~ 기분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 다시 출발하면서 운전수가 손님을 더 태우기 위해 남편이 발을 뻗고 있는 자리를 치우란다. 참다못해 남편이 인상 쓰며 몇 마디 하니 능글맞게 짐을 다른 곳으로 옮긴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다른 여행자들이 웃기 시작한다.
에콰도르에서 온 디에나가 한마디 한다.
“30분만 참아요. 우리 곧 내릴 거예요. 남미는 체계가 없어서 여행하기가 힘들어요.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보통 아시아인이거나 유럽인들이에요. 저는 왜 그런지 느낌 아니까 그냥 있어요.”
그 얘기를 들으니 가슴이 급 찔린다.
우리가 좀 여유가 없긴 하지~~
이 투어 일정을 선택한 것은 가격이 저렴하기도 하고, 잉카 레일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7시간 동안 미니버스를 타고 이드로일렉트리카까지 가고, 거기서 2~3시간 동안 잉카 레일을 따라 걸어서 아구아스깔리엔떼스까지 가야 한다. 정말 높은 고도의 산을 지나면서 만년설까지 구경했다. 한 여름인데 눈싸움까지 했다. 강물이 되어 구불구불 산줄기를 따라 흘러내리는 만년설을 보니 평화롭기 그지없다. 독수리 한 마리가 지나가는 장면이 연상된다. 7시간 동안 여름, 겨울을 다 만나니 신기할 따름이다.
미니버스에서 내려 잉카 레일을 걷기 시작했다. 스페인에서 온 아나, 브라질 청년 파비용, 에콰도르 디에나와 한 팀이 되었다. 이름 모를 날파리한테 물리기는 했지만, 자연과 더불어 걷기에 딱 좋은 날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