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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y Mar 09. 2020

불가사리가 아니고 불가사의야

페루 마추픽추의 일출

여유롭게 걸었더니 3시간 30분 만에 아구아스깔리엔테스에 도착했다. 아르마스 광장에서 가이드 참비를 만났다. 숙소에 짐을 풀고 한참을 기다려서 저녁 9시 30분에 밥을 먹었다. 몸이 힘들지만, 길거리 공연을 들으니 마추픽추 가까이 온 실감 난다. 페루 전통악기 소리에서 남미여행의 매력이 진하게 묻어난다.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아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잠을 청했다. 피곤할 텐데도 모두 긴장했는지 새벽 4시에 일어났다.


아무래도 꽃보다 청춘 페루편을 본 효과인 것 같다. 새벽에 일출을 보려고 일찍 일어나서 아침밥을 먹는 장면을 아이들이 기억하고 있다.

“엄마! 아침식사가 왜 빵이랑 잼 밖에 없어요? TV에서는 과일이랑 많이 나왔잖아요.”

“그러게 말이다. 그 사람들은 좋은 호스텔에서 잤나 봐.”

“나 기대했는데~ 실망이에요.”

TV 예능프로그램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다 느껴진다. 그들의 경험이 기준이 되니 말이다.


아침을 먹고 정확히 4시 30분 버스 정류장으로 나갔다. 그 새벽에 줄이 100미터 넘게 세워져 있을 줄이야~ 한 시간을 기다려서 버스를 타고 꾸불꾸불 15분을 가니 마추픽추 입구가 보인다. 그 이른 새벽에도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높은 산을 걸어 올라오는 젊은 여행자들이 간간히 보인다. 날씨가 엄청 추운데도 민소매나 반팔차림으로 오다니 젊은 사람들의 혈기놀라울 따름이다. 입장이 6시부터여서 다시 줄 서기가 시작되었고, 100미터 정도 줄이 생겼다.   


오늘 날씨가 정말 죽인다. 새벽인데도 안개조차 보이지 않는다. 쿠스코 여행사에서 한 3일간은 구름이 낀 우중충한 날씨일 거라고 했다. 일정이 짧으니 하는 수없이 바로 출발을 했는데 운이 정말 좋은 것 같다. 입구에서 여권까지 확인하고 입장 절차가 꽤 까다롭다. 마추픽추의 일출을 맛볼 수 있도록 아빠가 아이들을 데리고 급히 전망대로 올라가고 나는 가이드를 만나기 위해 입구 쪽에서 여행사 깃발을 찾고 있었다. ‘제발~ 참비만 아니기를!’

그러나 그 바램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능글능글한 참비가 “꼬레아? 패밀리?”하면서 나를 쳐다보고 있다. ‘에구머니나ㅠ.ㅠ...’


일출 사진을 다 찍고 아이들이 대열에 합류했다.

“애들아! 일출 어땠니?”

“네. 진짜 멋있었어요. 우리 동영상으로 다 찍었어요.”

“와~ 좋았겠다. 엄마도 보고 싶었는데... 너희들이 부러워~”

“그러게 말이야. 엄마는 왜 안 올라왔어요? 우리가 얼마나 힘들게 올라갔는데~”

“지민아. 엄마는 가이드를 기다리느라 못 올라갔단다.”

“엄마~~ 저는요. 아빠랑 사진 잘 찍었는데요. 지민이는 저 밑에 있는 마만 쳐다봤어요.”

가파른 계단, 경사를 따라 힘들게 일출을 보았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지민이, 마에만 관심이 많은 동생을 고자질하는 민서의 케미에 웃음이 나온다. 마추픽추에서 일출을 보았다는 성취감이 모두의 얼굴 표정에서 느껴진다고 할까? 벅찬 감동에 흥분 상태에 있다.

이후 2시간 동안 가이드 참비를 따라다녔다. 영어인데 발음도 그렇고 단어 실력도 형편이 없다. 중간중간 마주치는 스페인어팀들은 뭔가 좀 더 깊은 설명을 듣는 것 같다. 다음에 남미를 올 때는 스페인어를 꼭 배워야겠다!!


마추픽추의 전경은 해뜨기 전과 후가 확연히 차이가 난다. 해가 떠오르는 각도에 따라 그림자의 모양이 달라지고 모든 전경에서 풍기는 분위기까지 변한다. 뜨거운 태양이 공기를 급속도로 데우고, 높은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다 보니 땀이 난다. 출발할 때는 옷을 네 겹, 다섯 겹까지 겹쳐 입고, 장갑까지 꼈는데, 이제는 벗느라 정신이 없다. 아이들이 가장 관심을 가지는 대상은 바로 라마다. 상당히 많은 라마를 방목해 놓았고, 사람들이 잡초를 뜯어먹고 있는 라마 옆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해 놓았다. 지민이는 라마인형을 들고 라마들한테 달려간다.

“아빠~~ 저기~~~ 라마! 라마!”

“그래. 어서 가자!”

“그런데 내 옆으로 안 와요. 만지고 싶은데...”

“기다려봐. 저기 봐. 오잖니~ 사진 찍어줄게.”

“아빠! 저기 아기 라마도 있어요. 정말 귀여워요.”


“엄마~ 화장실 가고 싶어요.”

“으악... 민서야. 저 입구까지 내려갔다 와야 하는데... 하는 수 없지... 가자~”

한참을 내려서 밖으로 나왔다. 비싼 입장료를 냈는데 화장실 이용료 1솔이나 받는다. 다른 곳에서는 0.5솔이었는데, 여기는 두 배나 된다. 다시 입장하려는데 직원이 한마디 한다. “앞으로 1번 더 입장할 수 있어요!”

이런~ 이제 화장실은 끝이다! 4만 원이 넘는 입장료를 내고 힘들게 들어온지라 아빠는 본전을 뽑을 심산이다. 아이들이 힘들다고 하고, 나도 슬슬 다리가 아파온다. 국제학생증을 2개나 만들어 와서 2만 5천원 낸 자와 투자의 차이인가... 모르겠다. 아~ 힘들다. 오르락내리락, 이 길 저 길~ 길을 가다가도 막혀있어서 다시 되돌아오기를 여러 번~ 그러다 언덕에서 파비용과 디에나를 다시 만났다. 내일 저녁 7시에 쿠스코 아르마스광장에서 만나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얘들아. 여기 오느라고 얼마니 힘들었니. 많이 보고 가자. 마추픽추는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란 말이야.”

“네~ 엄마. 근데 왜 우리나라는 불가사리가 없는 거예요?”

“뭐라고? 하하하... 지민아! 불가사리가 아니고 불가사의야.”

“그게 뭔데? 난 몰라~~”

모르는 용어가 나오면 “그게 뭔데?”를 외치는 지민이 덕에 온 가족이 한참을 웃었다. 피로가 싹 풀리는 듯하다.

마지막 관문은 망지기의 집이다. 마추픽추의 전체 풍경을 한방에 담고, 작별 인사를 했다.   


구경을 하다 보니 예상보다 시간이 빨리 지나가서 버스 타는 곳에 내려오니 12시 30분이나 되었다. 버스를 타려는 사람들이 엄청 많다. 1시 기차를 타야 하는데 어쩐담! 여기는 무조건 줄을 서기 시작하면, 100미터인가 보다. 넉살 좋은 남편이 기차표를 보여주고 앞에 사람들한테 양해를 구하기 시작한다. 맨 앞에 서 있던 프랑스 아저씨가 오란다. 사업차 한국을 20번도 더 방문했다며 아는 척하신다. 땡큐~~


쿠스코로 돌아갈 때는 잉카 레일을 탔다. 옆에도 창문, 위에도 창문이다. 기차 속도가 느려서 멋진 풍경을 즐길 수 있다. 기차에서 내려 돌아가는 미니버스를 찾았는데, 다행히 운전수가 바뀌어 있다. 날씨도 좋고, 착한 운전수를 만나서 7시간 동안 넋을 읽고 잠을 자면서 쿠스코로 돌아오니 밤 10시가 되었다.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힘든 여정에도 불구하고 마추픽추 상큼한 만남 덕택에 모두 환한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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