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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y Mar 11. 2020

꼬레아 페밀리

페루 삐삭, 오얀따이땀보, 친체로성당

여행사에서 예약해 준 호스텔에 체크인을 했는데 가스가 떨어서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는다. 너무 추워서 드라이기를 틀어서 옷 속에 넣고 몸을 데우며 잠을 청했다. ‘시골 호스텔이라면 모를까, 쿠스코 호스텔도 이 모양이야?’ 그동안 참았던 감정들이 터져 나왔다.

“이런 여행사를 믿고 앞으로 남은 일정을 어떻게 소화하겠습니까? 도대체 뭘 믿고 푸노 패키지를 가겠어요!”.

여행사에 전화를 걸어 강력히 항의를 했더니 아침 6시 30분 직원이 찾아왔다.

“미안해요. 좀 더 체크를 할게요.”

7시가 넘어서야 겨우 가스 교체를 하고, 뜨거운 물이 나오기 시작한다. 네 명이서 씻으려니 시간도 오래 걸리고 정신이 하나도 없다. 게다가 오늘 밤에는 야간 버스를 타고 푸노로 이동을 해야 한다.


8시 40분경 성스러운 계곡 투어 버스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다행히 오늘은 대형버스에, 가이드도 괜찮은 사람 같다. 기대감이 스물스물 올라온다.

“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늘 이 여행에 참여한 나라가 어떻게 될까요?”

“브라질이요~ 스페인이요~ 볼리비아요~ 칠레요~ 페루 이카요... 한국이요.”

“아~ 한국이요? 혹시 스페인어 할 줄 아세요?”

“전혀 못해요. 영어로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다들 스페인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가이드는 스페인어로는 엄청 길게 설명하고, 영어로는 짧게 끝낸다. 꼭 알아야 하는 지시사항이나 약속 시간, 장소 등에 대해서만 얘기해주는 기분이다. 스페인어를 못하는 것이 이렇게 죄스러운 일일 줄이야.ㅠ.ㅠ


차는 쿠스코 시내를 빠져나와 식사이우망을 지나쳐서 휴게소를 들렀다. 마와 함께 포토타임을 갖는 코너들이 꽤 많다. 먼저 도착한 삐삭이라는 곳은 잉카의 돌 유적이 있고, 꼭대기에는 태양과 달을 위한 신전이 있다. 그런데 어젯밤부터 배가 아프다던 민서가 아침부터는 열이 나기 시작한다.

“민서야. 엄마가 오늘은 간호해 줄게. 빨리 나아!”

“네. 엄마~”

“엄마~ 지민이도 머리가 조금 아픈 것 같은데요. 나도 간호해줘요.”

“아이구~ 우리 지민이도 아파요? 호~~~ 언니 먼저 챙겨주고 조금 있다 또 챙겨줄게”

아침부터 두 딸이 엄마를 차지하려고 쟁탈전을 벌인다.  

신전에 가려면 30분 언덕길을 걸어 올라가야 하는 상황이라 민서를 데리고 밑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다행히 지민이가 아빠를 따라 높은 산을 씩씩하게 올라갔다 왔다.

“지민아. 뭐 봤니?”

“응. 거기 무덤이 있었어요. 산에 구멍을 뚫어서 미이라처럼 묻었어요.”


다음 코스로 삐삭의 원주민을 구경할 수 있는 시장에 들르기를 바랬는데, 시간이 없어서 못 간단다. 대신 바로 옆에 있는 은세공 공장 견학을 간단다. 역시 패키지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럴 시간이 있으면 전통 시장을 가게 해주지... 그런데 막상 은세공 공장에서 예쁜 상품들을 보니 마음이 동한다. 오늘 우리 가족이 이 곳에 있을 수 있도록 도와준 얼굴이 떠올라서 팬던트를 샀다. 페루의 전통 문양은 대지의 여신을 상징하는데 너무 예쁘다. 점심은 우루밤바 근처로 가서 뷔페식으로 했다. 다양한 가짓수의 음식들이 나와서 배불리 먹었다. 곳곳에 직물을 짜는 여인들이 망토나 숄을 판매하고 있다. 페루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원색은 어디에서 찍어도 사진이 잘 나오고 특유의 분위기가 나는 것 같다.  


오얀따이땀보는 돌로 만든 길과 벽, 수로와 구획 등 잉카시대에 만들어진 마을 형상을 그대로 간직한 곳이다. 그 무거운 돌을 5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서 끌고 왔다는 것 자체가 대단하다. 꽤나 가파른 돌길을 올라가는데 숨이 막힌다. 고지대에서 또 위로 올라가야 하니 너무 힘들다.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끌고 겨우 정상에 도착했는데 갑자기 바람이 불더니 빗방울이 하나씩 떨어진다. 시간이 벌써 5시를 지나간다.


이제 친체로 성당만 가면 투어 끝이다고 생각했는데, 웬걸~ 그전에 털실 공장 견학을 간단다. 미리 준비된 차를 마시며 어떻게 알파카털이 깨끗하게 처리되고 염색이 되고 직물로 짜여지는지 설명을 한다. 이후 자연스럽게 옷, 목도리, 모자, 직물을 구경하는 시간을 가졌다. 견학이 끝나고 친체로 성당을 올라가란다. 숨은 차오르고 바람은 불고 어두워서 잘 보이지도 않는다. 관광객을 상대로 직물류를 파는 행상인들이 달라붙기 시작한다. 너무 어두워서 볼 수 있는 것도 없고 넓은 광장은 휑한 느낌이다. 올라온 것에 만족하고 바로 내려왔다.


계획보다 시간이 많이 지체되니 마음이 불안하다. 오늘 저녁 7시에 파비용과 디에나를 쿠스코 아르마스광장에서 만나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다. 하지만 버스는 1시간 30분 늦은 8시 30분에 쿠스코에 도착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택시를 타고 약속 장소에 갔지만 역시 그들이 보이지 않는다. 아쉬운 마음에 동상 앞에서 사진 한 장 찍어본다. 쉴 새 없이 호스텔로 돌아와서 짐을 찾아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간간히 한국 젊은이들이 보인다. 한 청년이랑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칠레 이야기가 나왔다. 남편 친구가 산티아고에서 중국집을 한다고, 자기 이름 꼭 대라고 얘기해준다. 몇 달간 배낭을 메고 남미 여행을 하는 젊은이들이 꽤 많다. 볼리비아의 우유니 소금사막도 간단다. 너무 부럽다. 터미널에서 샌드위치 하나씩 먹고 푸노로 가는 야간 버스를 탔다. 다행히 이층 버스는 넓고 시설이 좋다. 열이 나는 민서 곁에 앉아 손을 잡아준다. 요 며칠 강행군을 했더니 다들 너무 피곤하다.


버스는 새벽 5시 30분경에 푸노터미널에 도착했다. 피곤함이 상상 이상이다. 패키지여행이 도대체 몇 단계를 거쳐서 완성이 되는지 모르겠다. 마중 나온 여행사 직원이 자기 집이 사무실이라면서 우리를 데리고 간다. 2시간 정도 쇼파에 누워 잠을 자고, 아침식사를 주문했다.  1인 6솔에 빵, 잼, 스크램블드에그를 내준다.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깨워 아침을 먹이고, 티티카카 호수로 향했다.

“사실 며칠 전에는 안개가 많이 끼고 바람이 많이 불었어요. 오늘은 운이 좋은 편이에요.”

“정말요? 리마랑 쿠스코에서 날씨가 안 좋았는데, 마추픽추랑 푸노에서는 날씨가 좋아서 다행이에요. 우리에게 날씨 운이 있나 봐요.”


날씨 운을 남미 페루에서 쓰다니! 너무 감사하다.

그나저나 어쩌나~ 민서가 계속 열이 난다.

민서야~ 잘 이겨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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