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달 만에 온 가족이 지구 반대편, 페루에서 상봉했다. 새벽의 리마는 안개 낀 조용한 모습으로 우리를 반긴다. 이제 제대로 백패커가 되어야 하는 타임, 호스텔에 짐을 풀었다. 치안 유지를 위해 24시간 초인종을 눌러야 들어갈 수 있단다. 역시 이런 곳에 가족단위로 오는 사람은 우리 빼고는 없다. TV에서 본 거랑 달리 ‘데 사유노 인클루드 숑?’이라고 묻지 않아도 조식을 준다. 공갈빵 같은 것이 나와 실망했는데 막상 먹어보니 맛있다. 조금 있으면 배가 꺼질 것 같아 캐리어를 식탁 삼아 한국에서 공수해온 반찬으로 상을 차렸다. 앞집에서 멸치볶음, 소고기 메추리알 장조림, 오이지무침을 싸주신 덕분이다.
정말 핵 꿀맛이다. 감사해요!
“애들아. 여기 직원이 지금 세비체 요리교실을 한다는데 어떠니?”
“아~ 그 유명한 세비체? 좋아요. 신난다! 얼마나 먹어보고 싶었는데요.”
꽃보다 청춘 페루 편을 시청한 덕분에 아이들이 바로 반응을 한다. 재료비를 내고 호스텔 요리사와 직접 마트에 가서 장을 봐서 조리를 하고 함께 나누어 먹는 프로그램이다. 도미니카 연인 한 쌍, 폴란드 남자 한 명, 미국 여자 한 명, 그리고 우리까지 8명이다.
문을 나서는 순간 수많은 인파, 정신없는 차 때문에 페루 리마의 악명이 떠오른다. 신호등이 있는데 전혀 소용이 없다. 요리사 덕분에 대형마트가 어디에 있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세비체 요리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맛을 보는 순간, 아니나 다를까? 아이들이 관심을 전혀 보이지 않는 다. 라임에 절이고 소금으로 간을 해서 새콤한 맛만 강한 세비체! 초장이 있었으면 더 맛있었을 텐데 아쉽다ㅠㅠ. 결국 남은 세비체는 어른들이 마무리하는 것으로~
점심으로 때우려고 했는데 실패한 것 같다.
오후에는 구시가지 구경에 나섰다.
“애들아~ 저기 서 봐. 아빠가 사진 찍어줄게~”
“아빠~ 저기 광장에 비둘기가 많아요. 아~ 나도 저 사람처럼먹이 주고 싶다~~”
아이들은 오로지 음식과 개, 고양이, 비둘기에만 관심이 있다. 길거리 추러스(1솔=한국돈 300원), 꽈배기 도넛(1솔)을 사 먹었다. 해가 지고 나서야 대통령궁 뒤쪽 공원에서 안티꾸초를 발견했다. 소 심장 꼬치에 곱창볶음, 감자를 넣은 것이 5솔이다. 아이들이 맛있다고 난리가 났다. 공연을 하면서 CD를 파는 그룹들이 있는데 연령대에 따라서 다양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중년의 나이트클럽 분위기, 물건 팔기 위해 춤을 가르쳐주는 모임, 춤 연습을 하는 십 대들 모임까지 다양하게 그룹들이 형성되어 있다. 즐길 줄 아는 페루인들의 문화가 느껴진다.
여름 날씨에 있다가 하루 만에 가을 날씨로 이동을 하니 춥다. 커피 한잔 마시려고 맥도널드에 갔더니 잔돈이 없어서 못 판단다--;; 밖으로 나오는데 아까 낮에 마주친 한국인 모자분들이 아는 척한다. 덕분에 커피와 아이스크림을 대접받고 담소까지 나누었다. 숙소에 도착했는데 배가 살짝 고프다. 근처에서 치킨을 사 와서 엄마아빠는 맥주 한잔, 아이들은 잉카 콜라로 건배를 했다. 그렇게 고대하던 잉카 콜로를 겨우 한 모금 마시고 바로 컵을 내려놓는 아이들 모습~ 기대만큼 맛이 좋지 않은가 보다.
다음날 아침 식사도 두 번 했다. 1차 호스텔식, 2차 한국 공수품 해물볶음밥과 밑반찬으로 배부르게 먹었다. 어제 날씨가 하루 종일 흐렸는데, 오늘도 비슷한 것 같다. 한국에서 바로 날라 온 남편은 시차 적응이 되지 않아 정신이 없나 보다. 밤에 늦게 자고 아침에 제일 먼저 일어난다.
오늘은 박물관 관광으로 하루를 시작하기로 했다. 지도에서는 그리 복잡해 보이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길 찾기가 어렵다. 길을 가는 아주머니 두 분에게 물었더니 방향을 바꾸면서 우리더러 따라 오란다. 10분이나 걸려서 우리를 안전하게 culture박물관까지 데려다주셨다. 감사한 마음에 직접 짠 오렌지 쥬스 한 병(2솔) 선사했다. 박물관은 모든 설명이 스페인어로만 되어 있어서 물건 구경만 하는 정도이다. 직원 한 명이 말을 건다.
“코레아? 나 삼성 세탁기 쓰는데 때가 아주 잘 빠져요.”
그의 말에 어깨가 으쓱한다. 사실 페루에 도착하자마자 현대차, 기아차를 도로에서 보고, 삼성 핸드폰을 사람들 손에서 보고, LG TV 모니터를 공항이나 상점에서 많이 봤었다. 기업의 힘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길을 가다 현지인들이 서서 먹는 감자튀김 샐러드를 1솔에 사 먹었다. 어찌나 빠삭한지 포테이토칩 저리 가라이다. 보이는 현지 식당에 들어갔는데 영어 메뉴가 없다. 대충 4개 정도 주문했는데 헉하고 말았다. 애피타이저 요리가 3개, 메인 요리가 1개였다는 ㅠ.ㅠ 옆 테이블에서 먹는 것을 곁눈질해서 메인 요리 1개 추가 주문했다. 가격도 저렴하고 맛도 좋다. 그렇게 먹었는데도 17.5 솔이다. 마음이 포근해진다. 하하하
점심을 배부르게 먹은 우리는 아르마스광장 옆 대성당으로 향했다. 성모마리아는 화려한 원피스를 입고 있고, 예수님도 갈색 피부와 검정 머리카락이다. 스페인 침략 후 가톨릭이 정착하는 과정에서 기존 원주민들의 토속 신앙과 결합된 모습이라고 한다. 200년간 스페인에 통치를 받아서 잉카인의 언어도 없어졌단다. 잉카인들도 엄청나게 영토 확장을 했던 순간이 있었는데, 결국은 살아남지 못했다. 이것이 인류 진화의 과정인 거겠지?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지 아이러니하다.
그리고 리마의 신시가지인 미라플로레스 복합 쇼핑몰 라르꼬마르로 이동했다. 해안절벽 옆에 호화로운 쇼핑몰이 있고, 고급 호텔이 많이 보인다. 오후 4시인데도 혈통 있는 개를 데리고 와서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꽃보다 청춘 페루편에서 본 샌드위치집을 찾았다. 그런데 가격이 장난 아니다. 아까 온 가족이 구시가지에서 17.5솔로 점심을 먹었는데, 여기서는 샌드위치 1개 가격밖에 되지 않는다. 동네 맛 집인지 자리가 없을 지경이다. 우리도 겨우 자리를 잡아 2개만 주문해서 먹었는데 맛이 고퀄리티라고 할까? 사람 많은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 같다. 구시가지와 신시가지의 물가 차이가 이렇게크다니~
아이들이 그렇게 보고 싶다는 고양이를 보기 위해 케네디 공원에 들렀다. 한국을 떠난 이후로 지민이가 어쩜 이렇게 동물 애호가가 되었는지~ 호스텔로 돌아오는 길, 차 정체가 너무 심하다. 배가 다시 꺼져서 호스텔 앞에서 5솔짜리 샌드위치, 7솔짜리 케밥을 먹었다. 그래도 웬지 아쉬운 건 뭐지? 리마에서 마지막 밤이니 어젯밤 먹었던 맛난 통닭 닭다리를사서 호스텔로 들어왔다.
오늘은 하루 종일 남편이랑 삐그덕 삐그덕 했다. 무엇이든지 자세히 보고 싶고, 기록을 남기고 싶은 남편! 다리 아프고, 배고프고, 귀찮은 딸들~~
저녁 간식을 먹는 여자 셋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던 남편이, 케밥을 사는 대목에서 갑자기 화를 냈다.
이게 무슨 일이지? 내가 얼마나 먹었다고? 우리 왜 만난거야? 남편이랑 배낭 여행이 가능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