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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 Jun 13. 2024

연애 시작한 지 6개월,  동거를 시작했습니다.

2019년 07월, 그와의 동거 시작

[2019년 07월]

☑ 남편 한 줄 정보: 김현우. 1990년생. 카메라 감독. 철옹성도 깨부수는 덤프트럭 같은 사나이


흔히들 하는 농담 중 이런 말이 있다. 결혼이란 여자 친구가 나의 집에 놀러 와서 좋긴 한데,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언제 가지? 이제 혼자 게임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이라고.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땐 나도 그저 웃기 바빴다. 그리고 대강 그 마음이 이해되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나의 자만이었다. 내가 직접 마주한 동거의 현실은... 하. 긴말하지 않겠다. 나는 현우 감독과 동거를 시작한 지 단 24시간 만에, 진심으로 그에게 물었다. “언제 집에 가?”


현우 감독과 나는 전여친 사건 이후 많은 대화를 통해(대화라 쓰고 사죄라 읽는다) 위기를 넘기는 듯 보였다. 그리고 그는 내 앞에서 보란 듯이 휴대폰을 구석구석 뒤져 전여친의 흔적을 박박 지웠다. 다시는 실수하지 않겠다는 다짐이라도 하는 것처럼. 그렇게 우리는 큰 고비를 하나 넘으며, 다시 마음을 다져갔다. 비밀리에 연애하는 사내커플이기에 촬영 현장에서는 말 한마디 못 나누지만, 촬영이 끝나고 난 뒤에는 여느 커플처럼 데이트를 하거나 밤새 통화를 하며 사랑을 키워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는 직업상 밤늦게 잠깐 데이트를 할 수밖에 없던 우리의 상황을 한탄하며, 함께 살고 싶다는 말을 꺼냈다. 나는 으레 연애 중 할 수 있는 애정표현이려니 흘려들으며, 대강 맞장구를 치고 넘겼다. 하지만 나의 이러한 태도는 머지않아 큰 파장을 일으키고 만다.


당시 현우 감독은 우리의 주 근무지인 상암동에서 꽤나 멀리 떨어진 곳에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었다. 하지만 촬영 때문에 새벽에 출근하고 새벽에 퇴근하는 일이 부지기수라, 이 동네에 있는 회사 사무실에서 먹고 자며 생활했고, 일주일에 한 번쯤 본가로 돌아가 빨래를 잔뜩 내놓고 새 옷을 한가득 챙겨 다시 사무실로 돌아오곤 했다. 그런 그에게 상암동에 혼자 살고 있는 나는 접근하기 딱 좋은 ‘표적’이었을 것이다.


아직 독립하지 않은(?) 그와 달리 나는 꽤 오랫동안 자취를 했다. 볼품없는 원룸이었지만 이 24시간 바쁘게 돌아가는 방송국동네에서 쉴 수 있는 곳이라곤 오직 내 집뿐이었다. 때문에 이 공간만큼은 누구에게도 침해받기 싫었다. 이런 이유로 나는 집에 손님을 초대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남자친구’를 집에 들이는 것을 절대금기시 했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더라도 그와 나 사이 최소한의 거리는 남겨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거리를 파괴하려는 자가 있었으니, 바로 직진밖에 모르는 노빠꾸 인간 현우 감독이었다.


늦은 밤, 현우 감독이 직접 만든 조명을 들고 집으로 찾아왔다. 너무 무거워 자신이 직접 들고 들어와 설치해 준다는 말과 함께. 내키지 않았지만 그의 호의를 무시할 수 없어 문을 열었다. 그렇게 나의 철옹성은 무너졌다.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를 맞는 나와는 달리 함박웃음을 지으며 현우 감독이 내 집으로 들어왔다.


조명 설치는 꽤 빠르게 진행됐다. 그리고 나는 그런 그가 고마워 밥을 사겠다며 나가자고 했다. (노림수였다) 하지만 그는 배가 고프지 않다며(절대 그럴 리 없다. 그는 늘 배고픈 사람이다), 나의 코딱지만 한 집을 한 시간째 구경했다. 나는 초조했다. 그가 언제 나갈지 알려만 준다면 그 시간만큼은 기꺼이 버텨낼 생각으로 계속해서 그에게 물었다. “몇 시에 나갈래?” 하지만 이런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순수한 얼굴로 오늘은 늦었으니 집에서 잠깐 영화나 보고 가겠다는 현우 감독. 나는 그 ‘잠깐’이란 말에 홀려 재빠르게 영화를 골라 틀었다. 두 시간이 20분처럼 지나가길 바라며.


한 시간쯤 지났을까. 그의 코 고는 소리가 작은 방안을 가득 채웠다. 시계를 보니 현우 감독은 이제 곧 사무실로 돌아가야 한다. 깨울까 말까 고민을 하며 그를 살피는데 현우 감독의 얼굴에는 피로함이 가득했다. 하루에 기껏해야 네다섯 시간을 사무실 소파에 누워 자면서도, 나를 보겠다고 매일을 찾아왔으니, 피곤할 만도 하다. 나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영화가 끝날 때까지만 그를 재우고 보내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굴러들어 온 돌에게 침대를 내어주고 바닥에 앉아 영화를 마저 보았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현우 감독은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그를 흔들어 깨웠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현우 감독은 어차피 두 시간 후에는 출근을 해야 하니, 오늘은 여기서 자면 안 되겠냐고 애원하듯 말했다. 아 나는 일생일대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고민하던 나는 마음을 굳게 먹고 나의 자취 철학부터 신념까지 줄줄 읊어대기 시작했다. 그런데 잠시 후 현우 감독이 다시 코를 골기 시작한다. 으악.


그렇게 나는 나의 요새 안에 그를 들였다. 그리고 온 집안을 감싸는 서라운드 코골이와 함께 잠에 들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그는 재빠르게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마치 신혼부부 코스프레를 하듯 자는 내게 입을 맞추고 출근을 했다. 그를 보낸 후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준비를 하고 출근을 하며 자취방 습격사건은 이대로 마무리되는 듯했다. 퇴근 후 그가 내 집으로 돌아오기 전까지는.


7년 전 그날, 현우 감독이 내 집으로 돌아온 그 순간부터 우리 두 사람은 물이 새는 자취방에서 꼬박 6년을 함께 살았다. 아무리 설득하고 애원해 보아도 도무지 이 80kg짜리 굴러들어 온 돌은 내 방에서 나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결국 나는 자포자기하듯 그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우리는 같이 살기 시작하자마자 핑크빛 연애 따위는 개나 준 듯, 미친 사람처럼 매일을 다퉜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 내 집에 들어온 현우 감독은 “빨래는 세탁기가 하고, 청소는 청소기가 한다”란 명언을 투척할 정도로 살림에 ㅅ자도 모르는 애송이였다. 결국 휴지 꽂는 방법, 치약을 짜는 방법, 설거지를 하는 방법, 빨래를 개는 방법까지 모두 달랐던 우리는 매일을 싸워댔다.  

하지만 슬프게도, 그와 7년 동안 123938248923번 정도 싸웠지만 그는 변하지 않았다. 오늘 아침 남편이 세면대 위에 중간 부분이 푹 눌러진 치약을 떡하니 올려놓은 것을 보고 나는 다시 한번 깨달았다. 사람은 절. 대. 변하지 않는다. 코가 터질 정도로 혼자 씩씩대며 치약을 밀어 올리다가,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명상 음악을 틀고 그럼에도 그를 사랑하는 이유를 찾으려 애썼다. 하지만 분노에 눈이 멀어서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명쾌한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치약 짜는 법까지 이렇게나 다른 이와 나는 어째서 결혼하였는가. 결국 출근한 남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나와 결혼한 이유가 뭐야?” 몇 분 후, 남편은 정말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답장을 보내왔다. “재밌잖아.”


아. 잠시 잊고 있긴 했지만 현우 감독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이자 동료이자 연인, 배우자임에는 변함이 없다. 그가 아무리 치약을 중간부터 푹 눌러쓰는 멍청이더라도 나는 남편과 노는 게 가장 재밌다. 아마 나도 이런 이유로 그와의 결혼을 결심한 것 같다. 흠. 통과. 나의 마음에 들기 위해 애쓴 대답일지도 모르겠지만, 기분은 좋다. 그래, 치약 요까짓 거 중간부터 짜면 어떠냐. 사는 게 재밌으면 됐지.


☑ 남편과의 연애 6개월 차: 남자친구가 내 집에 놀러 와서 나가질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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