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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 Mar 29. 2024

당신이 죽었다. 오늘.

염치없지만 그래도 나는 행복해지고 싶다.

당신이 떨어졌던 대교 위에서

신에게 맡겨놓은 행복이라도 있는 양 그저 행복하게 해달라고 빌었다. 당신이 떠난 지 5년이 지났다.

우린 한때 너무 뜨거워서 서로가 불타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사랑을 나누었다.

자그마한 당신의 손을 잡고 꽃이 있는 곳으로, 바다가 있는 곳으로 참 많은 곳을 함께 여행하기도 했다.

밸런타인데이 같은 기념일이면 당신의 하얀 목에 어울릴만한 예쁜 목걸이를 선물하기도 했고,

크리스마스에는 좋은 와인을 나누어 마시며 밤을 보내기도 했다.


그럼에도 당신은 결핍이 많은 사람이었다.

늘 당신 곁에 내가 있어 주길, 당신의 하루를 온전히 내가 함께해 주길 바랐다. 내 마음속 타오르던 불길이 조금 잦아들기 시작하자 당신은 귀신같이 알아냈다.

그리고 곧장 나를 채근하고 서운해하고 투정했다. 다른 이들과 비교하고 절망하며 화를 냈다.

그래도 나는 당신의 그런 모습 또한 귀엽고 사랑했다. 내가 당신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사랑뿐이라 더욱 주지 못해 미안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당신은 부어도 부어도 차지 않는 독처럼 나의 사랑을, 나를 더욱더 갈구했다.

나는 내가 시들어가는 것도 모르고 모든 시간과 모든 마음을, 말 그대로 나를 통째로 당신에게 붓고 또 부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당신도 나도 시들어 갔다.


당신과 병원을 찾았을 때 나는 비로소 당신의 결핍이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모님이 일찍 세상을 떠나 혼자 외로웠을 당신의 유년 시절이 안타까워 나는 더욱더 힘을 쏟았다.

밥을 먹을 때, 일어나고 잘 때, 어느 곳을 갈 때에도 나는 당신의 아빠처럼 당신을 알뜰히 챙겼다.


그럼에도 무엇이 부족했을까. 병원에 다니기 시작한 지 세 달 만에 당신이 이 세상을 떠났다.

내가 이미 당신을 찾았을 때는 어떠한 손도 쓸 수 없는 때였다.

왜.

대체 왜 당신과 나를.

그리고 이 세상을 버렸을까.


5년을 꼬박 당신을 품고 살았다. 더해주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와 내 사람이 죽었다는 죄책감을 끌어안고.

죄인인 양 덥수룩한 수염으로 매일 밤 술을 찾으며 죽어가는 나를 보고 주변에서 이제 좀 놓아주라고 할 때에도 나는 그저 웃을 뿐. 모든 걸 끌어안고 그렇게 5년을 살았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돌려본 TV에서 사랑 영화를 한 편 보았다. 지금은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

여자 주인공이 남자 주인공을 보고 환하게 웃었다.

사랑한다는 말 대신 자신이 먹던 아이스크림을 주곤

자신의 모든 것을 준 것 같이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 순간 당신과 내가 선명하게 떠올랐는데, 나도 그때처럼 다시 사람같이 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나도 다시 웃고 싶어졌다. 그날 밤 나는 나와 당신을 생각했다. 이제는 당신을 떠나보낼 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신에겐 면목 없지만 다시 사랑을 하고 싶었다.


오랜 고민 끝에 나는 오늘 술병을 내려놓고 당신을 찾아왔다. 아무 자격도 없는 내가 다시 또 누군갈 사랑하고 싶어서 네가 떨어진 곳에 염치없이 찾아와 빈다.

나도 이제 적당히 울고, 적당히 웃는 그 평범함을 찾고 싶다고. 행복해지고 싶다고.


당신을 털어내고 잊는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란다.

가슴 한편에 묻고 살아갈 테니, 영원히 잊지 않을 테니 이제 내가 다시 일어설 수 있게만 해 주길.

다시 사랑할 수 있게 해 주길.


당신에게, 신에게 염치없이 빌어본다. 행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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