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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0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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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리 Dec 25. 2024

모든 검(완결)

꽃들이 먼저 알아

검의 그림자    

 

그림자를 밟으며 걸어본다. 팔을 이리 저리로 흔들면서. 누가 뭐랄 것도 없는데, 괜히 주눅 들어 산 것만 같아 안쓰러운 마음을 어루만진다. 이리 보고 저리 돌아도 보고 지나온 세월을 거슬러 보면서 한참이나 얼빠진 듯 먼 데를 응시한다. 그곳에 내 살아온 자취라도 비취듯. 눈 안에 들어오는 것이 흐릿해질 때까지 그렇게 서 있어야 한다.    

  

밥을 지으며


허겁지겁 해치워야 하는 일처럼 생각한 적도 있고, 엄마의 채근에 억지로 목안으로 밀어 넣고 꿀꺽 삼키는 무엇이기도 했으며, 혼자 먹는 밥이 쓰디써 약처럼 홀랑 털어 넣은 적도 있다. 언젠가는 압력솥에 누룽지를 만들다 새까맣게 태운 솥바닥을 닦느라 고생했다. 먹이고 살리는 밥을 지을수록 밥상은 흙과 물, 햇빛 그리고 농민들의 노고와 여기의 나를 잇는 숭고한 명상.      


마법의 시간     


일상에 언제 마법이 찾아올까. 어떤 때는 헨젤과 그레텔의 숲 속에서 만난 과자의 집을 상상하고, 한 날은 회오리바람을 타고 마법의 세계에 떨어진 ‘오즈의 마법사’ 도로시처럼 유랑하는 꿈도 꿨다. 은하철도 999나 원더우먼, 소머즈를 본 날은 안드로메다 행성에 가기 위해 메텔과 함께 열차에 오르는 탐험가가 되고, 번개처럼 나타나서 사람들을 구해주는 정의의 심부름꾼 원더우먼 변신에 흥분하고, ‘뚜뚜뚜뚜’ 뛰어난 청력의 소머즈라면 어떨까 호기심에 달뜨기도 했다. 하나같이 외국 주인공들이었다. 성인이 되고 한참 후에야 우리나라 만화나 영화라고 생각했던 대부분이 일본 애니메이션이었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때 왠지 상상의 날개가 푹 꺾이고, 마법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한국적 상상력은 어디에 있을까 궁금했다. 제주 여신들을 만나면서 조금씩 의문이 풀렸다. 창세신 설문대할망, 바람의 신 영등할망, 농사의 신 자청비, 계절의 신 오늘이, 운명의 신 가믄장아기 등이 마법의 시간을 새롭게 채워갔다.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증명하지 않으면 얼마나 자유로울까. 신분증, 나이, 실명, 사는 지역, 관심사 등으로 어떻게든 타자의 환경과 취향을 파악해 이득을 취하려는 디지털정보시스템이 위협적이다. 다양한 방법과 루트를 동원해 정보를 선취하고 이용하려는 기업의 공략에 비해 정보를 뺏긴 한 인간의 싸움은 이미 승패가 결정 난 싸움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개인정보를 지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하이에나처럼 몰려드는 수많은 정보침해에 저항하려고 가능한 상업 앱을 덜 깔고, 가입하면 누적 포인트를 준다는 상술에 노라고 말하고, 다양한 닉네임을 사용하면서 동기화를 설정하지 않는다. 이 작은 노력조차 부질없게 종종 배달되는 해외 도박사이트나 국내의 아르바이트 광고 문자에 헉하고 놀라지만.          

 

헛되이 벽을 때린 손바닥     


도무지 무너뜨릴 수 없을 것 같은 견고한 벽을 마주할 때가 있다. 이유도 모른 체 당하는 수모도 있고. 다들 침묵으로 자리를 연명하려 할 때, 누군가 쏘아 올린 작은 화살이 견고한 벽에 흐릿한 금을 긋는다. 장벽의 단단함에 화살촉이 부러질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견고한 벽과 침묵으로 일관한 이들에게 ‘이건 분명 잘못된 ’이라며 교정하는 효과도 있다. 설령 그들의 가치관과 사고체계에 어떤 흠집도 못 냈을지라도.


처음 쏘아 올린 화살의 타격이 미미할지라도 균열은 이미 시작되었다. 헛되이 친 손바닥이라도 분노를 정당하게 표출한 시원함이라도 있고, 누군가는 순간이라도 찔끔했을 테니까. 간혹 다수의 시민이 견고한 벽을 뚫어 개벽의 역사를 만든다. 또다시 견고한 벽에 부딪혀도 한번 뚫어본 경험은 굽히지 않고 전진하는 방향으로, 돌파하고 이기는 힘으로 끝내 취약하고 허술한 피라미드를 무너뜨리리라. 트랙터를 몰아서라도.      


지리멸렬한 고통   

  

지리멸렬한 고통이 가해 당사자들이 아닌

피해를 입은 시민의 몫으로 오롯이 돌아온 시간을 살아간다.      


바위로 계란 깨기     


시민의 명예가, 민주주의의 명예가 짓밟힌 현실 앞에 불현듯 이 시가 떠올랐다.     


  나는 내 명예가 그의 명예보다

  가볍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무슨무슨 상을 받지 않았지만,

  무슨무슨 상 후보로도 오르지 않은     


  계란으로

  바위를 친 게 아니라,

  바위로 계란을 깨뜨린 거지     


  우상을 숭배하는 눈에는 보이지 않겠지만……

  썩은 계란으로 쌓아올린 거대한 피라미드를

  흔든 건 내가 아니라 당신들이었지


내버려둬  


제발 내버려둬

이래라저래라 간섭 말고

사유가 있고

감정이 있는,   

  

몸을 갖춘 개인이니까     


여성의 이름으로    

 

멈춰버린 시간

반복되는 슬픔과 까만 밤에

다시 만난 세계     


여성의 이름으로 짓고

여성의 마음으로 연결하고


여성의 뜻대로 바꾸면서    

 

삐딱하게

좀 더 삐딱하게

아무도 믿지 않고     


누구라도 우리가 되는 기적을     


꽃들이 먼저 알아  

   

니들이 뭘 알아

하는 작자들에게

꽃들이 외친다     


개뿔도 모르면서

아는 체하는 작자야     


너희가 물 주지 않은 데서

꽃이 피고

지고

거름이 되는

꿈결 같은 아름다움을 아느냐         

 






*밑줄 친 볼드체 키워드는 최영미시집 『다시 오지 않는 것들』(이미 출판사, 2019.9.19.)의 시 제목을 차용했다. (“바위로 계란 깨기는 최영미 시인의 시를 그대로 옮김)


*** 완결합니다!

<<흰>>을 써주신 한강 작가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첫 오마주 소설입니다. 한강 작가님의 감정과 시선을 따라 써보려고 노력했습니다. 많이 어려웠고 때론 좌절의 늪에 빠져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한강 작가님과 독자님들을 떠올리며 끝까지 완주할 수 있어 기쁩니다. 그동안 읽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2024.12.25. 윤소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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