솟구치는 의문, 의문들
무덤가를 돌다
인연의 바람은 어떤 모양으로 불어오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먼 지인의 소개로 그녀가 한 사내를 만났다. 나이차는 열 살 가까이 났지만, 성실하고 듬직해 보였다. 무엇보다 그녀를 마음에 들어 했다. 그녀를 보면 자꾸 히죽히죽 웃는 게 싫지 않았다. 주변에 결혼 안 한 친구가 없을 정도로 꽉 찬 나이였다. 남자 쪽에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한 가지 주저하는 게 있다면 농촌 사람이라는 것. 어려운 서울 살이지만 좋아하는 영화도 볼 수 있고, 친구도 다 여기 있으니까 타지에 가면 외롭지 않을까 먼저 염려되었다. 중매한 지인은 이런 사람 없다며 잘 생각해 보라고 거듭 권했다. 몇 달을 만나다 사내가 청혼을 했다. 언니들도 그만하면 괜찮다 하고, 그녀 역시 나이 차가 있으니 사랑받겠지 싶었다. 그래도 돌아가신 부모님께 상의하고 싶어 휴일에 부모님 산소를 찾았다. 찾아뵙지 못한 죄송함을 아뢰고, 무덤가에 소주를 뿌리면서 결혼해도 좋을지를 여쭈었다. 어떠한 답도 들을 수 없었다. 스산한 바람만이 울부짖을 뿐.
삯바느질하는 밤
딸아이를 데리고 셋방살이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첫딸이 태어나 입 하나가 는 덕분에 더 열심히 벌어야 했다. 그녀는 봉제공장에 다닌 이력으로 동네사람들의 일감을 받아 수선하고 옷을 만들었다. 새댁 손이 매워서 빈틈이 없고 일도 빠르다는 소문에 일감이 몰려들었다. 그녀의 고생을 아는지, 모르는 척하는 건지 사내는 건성으로 동네사람들의 농사일을 거들었다. 큰아이는 자그마한 소리에도 놀라고 밤새 울어대는 통에 아이 달래랴 일감 마감하랴 밤새우는 날이 잦았다. 바느질삯은 봉제공장에 비하면 적은 액수지만, 집에서 아이를 보며 일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가장 큰 문제는 사내의 경제관념이었다. 사내는 농사일로 받은 얼마 안 되는 품값도 술로 탕진하거나 노름하기 바빴다. 몇 번이나 이렇게는 못 산다고 엄포를 놨지만, 며칠 잠잠한가 싶다가도 어느새 노름판으로 돌아갔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그녀는 단호히 시가살이를 선언했다. 시가로 들어가면 셋방살이로 나가는 세를 절약하고, 네 식구의 식비를 아낄 수 있었다. 살림이 일어나진 못해도 축나지는 않으리라는 계산이었다.
자갈밭
시가에 내려온 사내는 노름판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육아에 농사일, 집안 살림까지 과중한 노동은 온전히 그녀 몫으로 돌아왔다. 낯선 곳에서 기댈 데라곤 사내 하나뿐인데, 사내는 연애할 때랑 딴판으로 데면데면 굴었다. 더욱 기막힌 건 그녀를 ‘잘난 아들 빼앗은 요망한 년’ 대하듯 괄시하는 시어머니 태도였다. 거친 자갈밭을 맨발로 딛는 심정이 이럴까 싶었다. 장가 못 간 두 시동생과 일꾼들의 매끼 밥상을 차리고, 늦은 밤까지 밀린 빨래와 설거지를 했다. 다 마치고 차가운 방에 들어서면 잠든 남매의 눈물자국이 남의 일인 양 생경하게 다가왔다. 심란한 마음도 가라앉히고 어디서 노름하는지 돌아오지 않는 사내를 기다릴 겸 외등 하나 없는 캄캄한 골목길을 나섰다.
사랑한다는 것은 엄청나게 으리으리한 것이고
회색 소굴 지하 셋방 고구마 포대 속 그런 데에 살아도
사랑한다는 것은 얼굴이 썩어 들어가면서도 보랏빛 꽃과 푸른 덩굴을 피워 올리는
고구마 속처럼 으리으리한 것1)
이라는데, 우리 집은 과연 '사랑의 전당'인가. 그녀의 내면이 고개를 빳빳이 들고 항의하는 건 누구를 이롭게 하는 희생인가. 자꾸만 자꾸만 솟구치는 의문, 의문들.
검푸른 바다
성냥을 켜고 또 켜도 어둠은 물러가지 않는다2). 시가살이는 고달팠고, 예상 난이도는 최상이었다. 진짜 그녀를 못 견디게 한 장본인은 단연 사내였다. 둘째가 태어났는데도 정신을 못 차리는 사내를 참아낼 재간은 없었다. 성실하고 듬직한 점이 좋아 결혼했지만, 실상은 거짓이었다. 마침내 비장의 카드를 그녀가 꺼내 들었다. 갈라설 거면 계속 그렇게 살고, 아이들 대학 보내려면 3년간 일본 배를 타러 가라고. 집 나갈 채비를 조용히 끝내놓고 최후통첩을 했다. 사내는 처음에는 농인 줄 알다 금세 그녀의 진심을 눈치채고 잘못했다며 싹싹 빌었다. 어린 남매를 3년간 못 본다고 생각하니 가슴 한편이 몹시 쓰렸지만, 사내는 지체 없이 검푸른 바다를 택했다. 학교 갈 형편이 못 돼 국민학교도 졸업 못한 설움을 자식에게 물려줄 수는 없었다. 3년만 고생하면 자식들 대학 보낸다는 말이 그렇게 안심이 되었다. 사내는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마음을 다잡으며 외항선에 올랐다.
1) 김승희, 단무지와 베이컨의 진실한 사람, 창비(2021), p.36.
2) 강은교, 풀잎, 민음사(2012), p.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