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나비
어느 해질 무렵, 슬픔에 잠긴 그녀 주변에 검은 나비가 날아와 한참을 위로하다 춤추듯 비상했다. 검정을 슬픔의 컬러로 부른 소설가가 있지만, 그녀는 위로의 컬러라 부르기로 했다. 둘째는 아빠 얼굴도 모른 체 뛰놀고, 첫째는 우리 아빠는 어디 갔냐며 찾았다. 사내 없는 3년을 어떻게 견뎠는지 모를 일이다. 밤새 삯바느질을 하고, 일감을 찾으러 온 이웃 아낙들과 수다를 떠는가 하면 두 아이의 뒤치다꺼리를 하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다수의 양육 돌봄이 필요한 시기에 독박육아는 무모함을 넘어 죽음을 경험한 순간도 꽤 있었다. 독박육아를 자처한 자신을 원망도 제대로 못한 채 꼬박 3년을 견뎠다.
엄마, 눈이 뻘게. 어디 아파?
라고 첫째가 물으면
어, 눈에 뭐가 들어갔나 봐. 엄마, 이제 괜찮아.
하며 얼버무렸다. 그런 다음 날이면 새벽 일찍 일어나 정화수를 떠놓고 간절히 천지신명께 빌었다. 어서어서 3년이 지나가기를, 제발 무사히 사내가 돌아오기를.
연탄불 함부로 대하지 마라
비쩍 마른 모습으로 3년 외항선에 다녀온 사내는 더 이상 예전의 철부지가 아니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그녀와 의논상대가 되는 사람으로 변모해 귀국했다. 사내가 보내온 돈은 그녀가 알뜰살뜰 모아 저축으로 불려놓았고, 자녀들의 미래 청사진도 어느 정도 세워둔 상태였다. 어느덧 아이도 3명이라 잘 방도 모자랐을뿐더러 자녀들 공부를 시키려면 대도시로 나가는 게 정석처럼 말하던 시절이었다. 큰 애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시가살이에서 벗어나 부산으로 올라왔다. 부산은 바닷바람이 유독 매서웠다. 추위를 많이 타는 그녀는 자녀들의 겨울철 장비를 단단히 챙겼다. 어릴 적부터 아이들의 필수 아이템은 당연히 목 폴라티와 장갑, 모자였다. 일본에서는 겨울에도 추위를 견디라고 반팔을 입혀 학교 보낸다는 뉴스라도 나오면 그건 그 나라 얘기고, 추운데 나갔다 감기라도 걸리면 다 내 고생인 걸 하며 입을 샐쭉하며 채널을 돌렸다.
셋째가 복덩인지 살림이 편다고 그녀는 좋아했다. 딸-아들-딸-아들 2살, 4살 터울로 출산했는데, 상가 건물을 친척과 나눠 사서 집짓기 전에 몇 달간 근처에 세를 살았다. 그녀는 이사 다닐 때마다 집주인에게 자녀가 둘이라고 들어가서는 두 명 더 있다며 사과했다. 그렇다고 쫓겨나지는 않았다. 주인집은 이층에 살고, 셋방살이하는 그녀는 일층을 사용해서 겨울에는 창고에 연탄을 쟁여놓고 살기 편했다. 연탄을 갈러 가는 곳은 한 명이 겨우 들어가는 좁은 통로였다. 밤새 연탄을 안 꺼뜨리고 자려면 불쏘시개로 번개탄을 써야 했다. 가끔 그녀가 새벽에 연탄을 갈러 나가는 일이 생겼다. 그럴 때면 첫째가 졸린 눈을 비비며 그녀 옆에 서 지켜도 보고, 거들었다. ‘연탄가스로 일가족 몰살’이라는 뉴스가 종종 충격을 주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에 연탄불을 피우고, 수시로 연탄이 꺼지지 않게 살피는 일은 언제나 긴장감을 동반하면서도 가족의 생명을 책임지는 중요한 일로 여겼다. 그 중대한 일은 또 사내가 아닌 그녀 몫이 되었다.
어둠 속에서 시를 퍼 올리다
그녀에게는 일상의 무거운 그림자에 쉽게 잠식되지 않고 자신을 지키는 보호 장비가 있었다. 다름 아닌 시였다. 사실 그녀는 ‘김소월 전문시인’으로 통했다. 어디서든 유창하게 김소월의 시를 읊었다. 진달래꽃은 물론이고, 그녀만의 독특한 감성으로 초혼을 멋들어지게 불렀다. 그녀는 공간을 장악하는 능력과 심장에 옹골찬 시를 시원스레 퍼 올리는 재주가 있었다. 누구에게도 침해받거나 뺏기지 않는 그녀만의 영토, 그것이 바로 시의 세계였던 것. 언젠가 그녀는 그녀만의 시를 쓰리라,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고유한 목소리와 삶의 곡절이 담긴 소박하고 구성진 시를 마음껏 쏟아 내리라 다짐했다.
검은 시체를 쏟던 날
그 주간은 늘봄보신탕에 유달리 단체손님이 많았다. 그녀 혼자 음식을 해내기에는 역부족이었지만, 웬일인지 주방직원을 뽑지도 않고 어리바리한 사내 동생 둘이 카운터와 서빙을 맡았다. 사내는 그녀의 음식 솜씨를 앞세워 집 한편을 식당으로 개조해 보신탕집을 냈다. 그 힘든 일을 왜 시작하고 허락했는지는 사내와 그녀, 둘만의 비밀일 것이다. 그날은 광견이 갑작스레 달려들어 막내아들의 볼을 물고, 보신탕을 만들던 그녀는 하혈을 쏟았다. 그녀와 막내아들이 동시에 병원에 실려 나가는 기이한 상황이 벌어졌다. 과로 탓인 줄 알았지만, 그녀도 모르는 새 자연 유산된 것이었다. 엎친 데 덮친 불행이었다. 그때였을 것이다. 그녀가 병원에서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던 건.
이제 그만! 죽이지 말아요!! 살인을 멈추라고, 제발!!!
그녀가 악에 받쳐 외친 소리는 즉각적인 효력을 발휘했다. 어떻게 장사 도구를 정리하고, 늘봄보신탕을 마무리했는지 모르지만.